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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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죽음은 가장 높은 스트레스 지수를 나타낼 만큼 생애 큰 사건 중 하나이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구조와 일상, 정체성 전부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흔히들 시간이 해결해준다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깊이의 스트레스라고 배웠다. <바움가트너>는 바로 이런 깊은 상실감을 다루고 있었다.

첫 장면부터 뭔가 짠하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가 다 타들어 가는 것조차 모를 만큼 그는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재에서 거실로 가는 길에서야 냄새를 맡고 그제야 냄비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지금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아내의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정신은 현재보다 기억 속을 배회한다.

바움가트너는 오래전 아내를 잃었다.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내의 부재는 그에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기억하고 여전히 그립다. 어떤 이에게 이미 지나간 일이고, 누군가에겐 오래된 상실로 보이지만 그에게 아내의 상실은 현재를 잠식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읽는 내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외로움과 쓸쓸함, 더 나아가 완숙미를 더한다. 배우자의 흔적을 살아가는 내내 되뇌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심장은 온전하기나 할까.

애나의 방에는 그녀가 쓰던 타자기와 연필, 펜, 문진, 암모나이트 화석 조각, 빨간 전화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상실 이후의 삶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며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을 곱씹게 한다. 슬펐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이. 그걸 바라보는 바움가트너의 시선 하나하나는 얼마나 조용한지. 그 사실 자체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이동하곤 한다. 그 기억은 현재를 재구성하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대신 증명해주는 것만 같다. 그저 상실을 안은 채 삶을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는 채워지지 않지만 삶은 계속 흐른다.

나는 이 책에서 글쓰기로 인한 자기 성찰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바움가트너는 기억을 끌어내 글로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배열한다. 자신이 쓴 글이 완전한 복원이 되지 않을지라도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사랑도, 자기 자신도, 기억하려 애쓰는 그 기억마저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전제적인 분위기는 느리게 흐른다. 감정은 보다 절제적이며 상실은 담담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그저 머물러있음으로 지금을 견딜 뿐이다. 글을 쓰는 나이기에 글은 기억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는 아직도 생각할 수 있고 또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쓸 수 있고, 이제는 문장을 마루리 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결과는 대체로 같다. 좋다.’ p134

상실과 노화 속에서도 여전히 생각할 수 있고, 여전히 쓸 수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을 때 S.T.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P245

폴 오스터의 마지막 유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이 마지막 문장은 더 깊이 다가온다. 그에게 해결된 것은 없었다. 상실의 고통도 글의 완성도. 그러나 그는 글을 계속 썼고 삶을 지속했다. 여전히 아프지만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써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열린책들 @openbooks21에서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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