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자
배수아 지음 / 열림원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인의 강력한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독학자’라는 제목이 주는 고독하고도 왠지 모르게 알차 보이는 첫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초기의 배수아의 작품 스타일에서 많이 달라져있었다. 초기작에서 그녀가 낯선 감각을 잘 환기시켜내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그녀는 진지한 사유의 방랑자로 변모해있었다.

 스물 두 세살 쯤인가 어느 겨울, 나는 세상이 내게 부여한 가치들을 전부 세척하고 나만의 가치로 다시 세상을 정립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작업은 매우 지지부진하긴 해도 오늘날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긴 하다- 이제 대학생이 된 스무살짜리 주인공 역시 당시의 나와 조금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다. 물론 나보다 더 진지하고 과감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것은 80년대라고 하지만 배수아가 이 책에서 냉소하고 있는 ‘군중 속에 편입하려 드는 유치한 낭만주의자’들을 나 역시 내가 스무살이던 시절-90년대-에도 본 것 같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 기억 속에서 실재하는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으니까. 아마도 그런 종류의 인간 유형은 어느 시대고 존재하는 것이겠지. 왜 그들은 ‘얽매여 있지 않는 상태’를 못 견뎌하는 것일까. 그런 유형의 인간들이 주종을 이뤘던 동아리에서, 내가 느꼈던 이질감이나 어긋남의 원인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마도 배수아도 그녀의 책에서 말했듯이 스무 살이란 읽을 수는 있어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는 없는 시기였기 때문일테지.


 스무 살 주인공이 스스로 세운 대학에서 마흔 살까지 ‘오직 공부’만 하려는 준열한 정신은 그 마음가짐만으로도 이미 감동적이다. 정신을 단련시켜 자신만의 언어를 소유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욕망은 나 역시 오랜 기간 품고 있던 간절한 소망이기도하다. 그리고 주인공이 유토피아로 설정하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없는 도시, 거의 어느 곳이든지 걸어가야 하므로 사람들이 멀리 사는 곳, 오락거리도 없고 대중적인 문화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밤새  책을 읽는 곳’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대중교통 수단의 발달이 미비하고 작은 숲과 호수가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소리가 가장 큰 소음인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 사람들이 밤새 책을 읽는 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인공이 그토록 염원하고 은둔하고자 하는 장소와 비슷한 곳에 현재 나 역시 은둔(?)중이니 이 시간을 소중하고 알뜰하게, 품속에 꼬옥 안았다가 아끼듯 꺼내어 써야만 할 것이다.


 내게는 이 책이 결코 쉽거나 재미있게 읽히지 않았다. 가끔씩 눈에 띄는 비문과 현란한 사색의 물꼬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배수아의 소설은 날렵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을 종종 손에 쥐게 하는 것은 그녀만의 단호한 어조랄지 -‘나는 이제 네가 지겨워’ 같은- 비문과 낯선 감각이 빚어내는 그녀만의 독특한 울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분명,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작가 중 하나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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