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저자인 아멜리 노통브의 젊었을 적 모습인데 그걸 알면서도 작품 속 크리스타와 자연스레 겹쳐 보였다. 요즘 말로 인싸. 그 중에서도 대학 내 열 일곱 또래들의 꽃. 자칭 아싸인 블랑슈가 봐도 그랬다. 인기 많은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어 말을 걸어 볼까 했는데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새 방은 크리스타의 물건들로 점령됐고 부모님은 새 식구가 된 그녀의 매력에 빠진지 오래. 모사꾼에게 제대로 구워 삶긴 두 창조주는 야속하게도 집안에서조차 블랑슈를 아싸로 만들고 말았다.

가증스러운 것! 책에 심취한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게 첨부터 집에 데려와 재워준다는 둥 쓸데없는 호의를 베풀지 말았어야지, 통학 거리가 멀든 말든 그게 블랑슈 너랑 무슨 상관이지? 저런 계집애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구. 이 오지랖 넓은 호구같으니. 하지만 내 충고완 반대로 이 한량없는 소녀의 자의식은 대단했다. 상대를 골라가며 갖은 아양을 떨고 관종에 허언증으로 무장한, 이 강력한 적에게 살의에 가득찬 증오를 느끼다가도 한편으론 십 수년의 고독에 잠긴 자신을 꺼내어 신세계의 쾌락을 맛보게 해준 것에 대해 구원자로써 고마움을 느낀다.

넌 너무 예민해! 맨날 방구석에 쳐박혀서 책만 읽고 몽상따위만 하니 친구가 있을 턱이 없잖아? 그렇다고 저런 친굴 원한 건 아냐! 멈출 수 없는 자기혐오와 머릿 속 대 혼란. 그 와중에도 침입자의 추종자와 노예들은 늘어만 간다.

분명 현실에서도 이런 배은망덕함으로 똘똘 뭉친 맹랑한 것들은 어디든 존재한다. 특히 어린 여자들 무리 속에서. 그래서 더 화가 나고 몰입이 된다. 내 학창 시절을 조금만 더듬어 봐도 내 자신이 블랑슈였던, 혹은 또 다른 블랑슈와 크리스타들을 관조한 경험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내가 아끼던 펜자루가 어느 날 그 아이의 필통에 들어가 있던 날,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엄친딸의 뜻밖의 도벽에 난 그걸 모두에게 공표하는 대신 조용히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내 것으로 만들었다. 왜? 그 부모는 같은 일이 생겨도 매번 감싸기 바빴으니 미칠 노릇이었거든.

복수해버려! 속 시원한 사이다는 아니었지만 자기도취에 빠진 족속들에겐 역시 무반응이 답이었다. 그리고 속속 밝혀지는 진실들. 아냐!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허언증 환자의 벗겨진 가면을 보고도 그녀를 끝까지 대변하려는 속터지는 블랑슈의 부모들. 당신들과 당신 딸이 그동안 악마에게 농락당한거라구, 이 답답한 양반들아. 아직도 모르겠어? 난 절대 블랑슈 쪽에 감정이입이 됐다고 하지만 확신할 순 없다. 누구에겐 크리스타였던 적이 있을지도. 혹은 그 중간 어디쯤이었나. 그건 나의 블랑슈만이 알 수 있을 테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 크리스타가 휘젓고 간 집과 블랑슈의 공간엔 많은 균열이 남았지만 그것은 얼마전까지 그녀가 누리고 있던 고요함과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심해 속 모든 것이 뒤집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한 일상으로 복귀한 후, 블랑슈의 마음 속 깊숙이 오래 자리해왔던 지독한 자기혐오와 바닥치던 자존감이 조금은 회복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세번째 재독.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처음인데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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