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반양장)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11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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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유독 읽기 힘들었던 것은 정치, 윤리, 철학, 종교관을 아우르는 내용의 심오함도, 극 중 인물들에게서 오고 가는 치열한 가치관 투쟁 때문도 아니었다. 빽빽히 들어찬 작가의 문장을 통해, 난 오늘도 여전히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당신들의 천국'이란 의미의 이기적임이 현실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에 대한 한숨 섞인 통한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소설은 소록도의 새 원장 조백헌의 부임과 동시에 원생들의 탈출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느닷없이 막을 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사태에 섬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캐보지만 명쾌한 답을 얻긴 커녕 냉랭한 원생들의 시선과 보건과장 이상욱의 같은 태도에 의문만 더해 갈 뿐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낙원이 따로 없는 듯한 그 곳엔 과연 걸맞는 사연이 있었고 과거 섬을 거쳐간 일본인 주정수 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원장들에게서 행해졌던, 약속이나 한 듯한 똑같은 다짐과 동상들의 재현이 다시금 시작됐음을 직감한 나름의 반응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 원장은 동상은 물론, 자신만은 절대로 일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과 그들만의 낙토인 천국건설을 약속하며 축구경기로 원생들의 집단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이어, 본격적인 오마도 간척사업 착수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순조롭던 공사 진행도 잠시, 더딘 일의 결과와 작업 중에 계속되는 사고와 재해에 따른 인명피해,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는 개발회의 평가는 원장과 원생들을 불신과 의구심에 빠뜨리게 되고 인근주민의 반발과 사업권 쟁탈에까지 휘말리게 되면서 결국엔 소원한 절강제도 보지 못한 채 원장은 섬을 떠나게 된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전 원장들처럼 야심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조백헌 개인의 실패가 아닐 것이다. 조 원장은 애초 섬을 들어올 때 벌어졌던 탈출극과 간척사업 도중에 행해진 원생들의 자살이 내포하고 있는 참뜻을 몰랐던 것이다. 장로회를 결성하고 건의함을 설치하여 원생들의 의견을 최대 수렴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를 다른 이의 그것들과 차별을 두려 했지만 그 역시 원생들 밑바닥부터의 의견을 무시한 조 원장 그 자신에게서 나온 명령에의 복종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끝까지 나환자들과 운명을 함께 할 수 없는 원장이 건설코자 한 낙토는 원생들의 자유를 억압케 하고 내일의 희망과 발전의 기대조차 없는 창살지옥과 같은 것 혹은 원장 자신만의 천국이었다.


조 원장의 입장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실천되던 문둥이들을 위한 낙토건설은, 지배자의 힘에 의해 그 사랑이 무조건적으로 피지배자에게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폭력의 일환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록 그 시작이 나환자들을 위한 진정한 천국을 빚어주고자 하는 선의의 동기에 의해서였다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생들의 탈출극이 멈춰지고,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동상이 지니어지게 되는 순간부터,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만재도 돌기둥과, 그 곳에 깃들어지길 원하는 조 원장의 메시지가 있는 한 이미 그 순결한 뜻을 침범해버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황 장로와 이상욱은 문둥이들 자체 집단에서 추대되는 대표가 아닌 외부인이 원장으로 부임되는 현행 관습으로는 원장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 천국이 건설될 날이 요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와 인간을 철저히 구분하고 환자들만의 천국을 명시해주고자 하는 지배자의 무모한 시도는 원생들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로의 행함을 방해하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을 드높이는 결과만을 불러올 뿐이다. 이러한 황 장로의 조언과 훗날 받게 된 이상욱의 편지를 읽고 진정한 운명 공동체로서의 천국을 꿈꾸며 섬으로의 귀환을 해 오지만, 이미 섬의 원장이 아닌 일반인 조백헌은, 권위와 힘이 없는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섬의 마지막 희망인 윤해원과 서미연 두 미감아의 인연을 맺어줌으로나마 소설 밖 미래의 밝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은 쉽지 않다. 작가의 쉬운 문체와 이야기 전개방식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쉴새없는 가치관 대립과 사랑, 자유, 동상, 명예등의 추상적인 단어반복은 분명 지금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모호하고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를 반영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이 사라진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빛이 바래지 않고 분명하다. 그것은 한 집단의 천국에 이르는 길은 개인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 특히 그것이 어느 하나 부족한 이들에겐 물질이나 돈, 건강등이 충족됨으로써 완연한 천국이 될 수 없음을,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부족한 존재로 보는 바탕에서부터 뭔가 크게 잘못된 윤리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아쉽게도 서두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소설에서 다뤄지고 있는 문제는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크게는 정치판에서 작게는 개개의 집단에서까지. 이런 끝나지 않은 물음에 속시원한 대답이며 해결책인 '우리'들의 천국'건설은 요원한 것일까.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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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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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사회 과목 수행평가로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턱대고 책을 사서 읽은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때는 김훈이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고 이 책이 유명한 스테디셀러가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난 김훈의 문체와 그의 글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건 매 한가지라는 것이다.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전국을 여행한다는 것. 어찌 보면 무모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한 일을, 추우나 더우나 하루 최소 6km에서 최고 70km까지 내달렸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그의 글은 중독성이 있다. 강과 산천을 떠돌며 1년여의 유랑을 기록한 이 책에서 나는 농민의 삶을 알았고 역사의 진실과 대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과 땅에서 생명이 움트고 스러져가는 모습에서 작가는 우리네 인생과 덧없음을 겹쳐보였다. 드넓은 숲을 마주한 지점에서 한 때 불길의 고통을 겪은 산의 자생력에 놀라워했고 인간의 무지한 경각심에 안타까워했다.
강이 흘러가고 머무는 것은 시간과 같다는 그의 말에서 순리를 따르지 못하는 어떤 이들이 생각났고 자연의 무심함에 한 해 수확를 망친 농사꾼의 사연에 대해선 맘 속으로 위로를 했다. 죽음에 관한 그의 철학도 엿볼 수 있었는데 땅을 일구고 산 농부가 흙으로 돌아가고 고기를 잡던 어부가 물가에 묻히는 것을 보고 죽음의 평안함과 그 역시 순리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선암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괜한 서글픔과 비애를 느꼈다던 부분에서는 고등학교 때 그저 웃어넘기기만 했던 그것이 이제 나에게도 공감이 되는 걸 보니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또한 서러움이 밀려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퇴계 이황, 충무공 이순신, 의상과 원효대사에 관한 역사적 일화도 여행 경로의 에피소드 못지 않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의 역사적 지식과, 예의 위인들의 검소하고 올곧은 생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곤 했다. 영일만 오징어잡이 배들의 새벽 출어는 삶을 이어간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눈물겨운 사투와도 같아 보였다. 또한 소금이 '오는'것을 기다리는 옥구 염전의 염부들의 지난한 노동은 햇빛과 바람과 물의 도움이 절실한 삶의 현장이었으며 한 마을을 오랜 세월 지키며 상여 드는 일을 자처해왔던 노인의 얼굴에선 담담함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산맥을 넘으며 길을 헤쳐 나갈 때 글은 그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나가기를 수 천번 반복했다. 풀, 물, 불, 바람, 노동, 역사등 그의 여행에서 깨우친 모든 것은 생태와 종교, 역사, 철학 그리고 인간의 삶이었다. 아직은 농사일에 서툰 어린 소와 힘겨운 오르막길 끝에서 박수쳐 준 어떤 성실한 근로자를 뒤로 하고 그의 여행은 풍륜에 발을 걸고 몸을 맡기는 것으로 다음 여정에 박차를 가했다.

분교 아이들과 함께 놀던 김훈 작가는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것 같았다. 에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은 달필의 경지에 다다른 그의 무심한 듯한 문체와 앉아서 전국여행을 순식간에 한 듯한 기분과 유익한 독서를 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느껴지는 읽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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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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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이란 낯설고 새로운 것에 관한 동경, 한편으론 정치권력, 부의 편중, 배제원리가 냉철하게 작용하는 도시사회의 대표격으로 환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60여년 동안 엄청난 발전과 변혁이 일어난 본산이기도 하다. 인구 천만이 넘은지 오래, 거리마다 높은 빌딩과 저마다의 브랜드와 가치로 무장한 상업적 공간이 즐비한 이 곳, 서울이 돌아가는 작동 원리는 과연 무엇일까. 부산 태생인 저자는,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며 느꼈던 과거 자신의 시절을 회상하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건물들과 집들이 지어지고 뜯기며 또 다른 무대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공간이 충돌하거나 공감되거나 혹은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서울은 냉정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능력이 있고 돈 있는 사람들과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하여 상위층에 머무르며 인서울 생활을 즐기겠지만 지방으로부터 부푼 꿈만을 안고 올라온 이들은 도심 속에서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기 일쑤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인들을 보는 시선부터 배제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처럼의 이벤트 행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게 일반이고 대학과 일자리를 구하려면 서울로 가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다. 이러한 배제원리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대학, 주거지역, VIP서비스, 교육현장등이 그 예일 것이다. 요즘엔 웬만한 고급아파트나 신축 빌라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경비도 삼엄하다. 대학졸업장만 따면 그만인 시대는 갔다. 서열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대학에도 순위를 매겨 철저한 등수논리에 의해 누구는 좌절하고 누구는 우월감에 젖는다. 이런 네임밸류는 대학에 한정되지 않고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 강남 어디 어디 학원이 잘 가르친더라~ 또는 어디 병원이 시술을 잘 한다더라~ 하는 사교육과 성형열풍에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되는 자유가 오히려 빈곤층과 서민들을 최상위계층과 구별짓게 하는 역효과는 낳은 셈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든가~'라는 말이 더욱 더 그 힘을 발휘하는 현대사회가 때로는 각박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커피는 스타벅스, 대학은 인서울 중에서도 스카이, 아파트는 최소 몇 평은 되어야 하고 취직 후 월급은 얼마 이상. 주부나 회사원, 입시생들이 모이면 주로 올리는 화제거리가 아닐까.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브랜드를 소비하고 고급적인 생활공간을 지향한다. 이러한 욕구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자기투자 즉, 자격증 취득이나 여가, 외모관리등 '자기경영'에 소비하는 행위조차도 점점 차별화와 럭셔리화의 대세를 따라간다. 결국, 이렇게 이룬 모든 것을 그것을 이루지 못한 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자신들만을 위한 특별한 대우를 원하게 되는데 최근 생겨난 코스트코나 롯데월드, 백화점 명품관, 주상복합아파트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공성이 비공공성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있는 자들만의 소유가 된다. 열려진 공간, 누구에게나 개방적이었던 공간이 점점 입장권이나 멤버십등의 제한으로 차단되는 요즘,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젠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할 듯 싶다. 어쨌든 소비사회에서 물욕의 노예인 우리들은 가지지 못하면 부러워 하거나 따라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엇비슷하게 따라하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짝퉁명품을 사거나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 질투심을 달랜다. 나처럼 마음을 비우고 아예 시도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편할텐데 사람 맘이 다 같지 않으니 '죄수의 딜레마'같은 너도 나도 현상이 일어나나 보다. 하긴 그래야 시장도 돌아가고 먹고 사는 거니까.


그런데 이런 사회계층을 구분짓게 되는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간의 의미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4-50년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예감할 수 없었던 강남 지역은, 정부의 각종 정책 단행이나 제3한강교 건설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여 땅값 상승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됐고 그 후로 지금껏 건물 조성과 재개발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끼리의 숱한 갈등이 불가피하게 이어져오곤 했다. 익숙한 공간을 허물고 낯선 공간의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공간재편이 아닌, 때론 소수의 의지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말살되는 현장 혹은 시초축적의 현장일 것이다. 우리는 늘 불안 속에 살아간다. 가진 자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을, 뒤따르는 자는 끝없는 추격을, 경쟁하는 사람들은 뒤쳐지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안고 매일을 살아낸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 물질은 그 고유의 실용가치를 잃고 상징성만을 띠게 된다. 당신이 사는곳, 당신의 품격, 당신의 이름이라는 등의 유려한 선전구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마케팅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개미와 베짱이 이론을 믿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순수했던 10대에는 일한 만큼 돌아오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이고 논리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때가 묻어 그런지 세상이 변해 그런지 올바른 방식으로 대자본을 쌓기에는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팍팍한 세상살이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과 정보사회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한 말단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온 몸으로 일하는 정직한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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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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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장을 열고 복잡한 이론들로 대부분 가득차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만 해도 난 몰랐었다. 설마 철학서를 보고 눈물을 훔치게 될 줄은. 저자 마크 롤렌즈는 확실히 괴짜였다. 젊은 시절, 철학자이면서도 방탕하기 짝이 없는 여자 관계와 파티문화, 오랜 시간 술에 기대어 지낸 생활, 그러면서도 몸짱이며 핸섬한 만능스포츠맨인 그가 어느 날 새 식구로 맞아들이게 된 늑대 '브레닌'은 그의 삶과 의식에서 조용하면서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보통 일반인들이 개나 고양이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게 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과 깨달음을, 철학자이기에 아니 어쩌면 애초에 인간에 대한 왠지 모를 비관적 시선을 지니고 있던 그였기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모든 이론과 주장, 그리고 체험을 통해 습득한 인생관은 우리에게 어렵지만 공감과 반성, 감동까지 느끼게 한다.


철저한 계약으로 맺어진 '영장류'과인 인간과 늑대와의 동거는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늑대를 '늑대답지 못하게' 키운다는 주변의 시선을 타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호기심 많은 야생의 습성 덕에 온 집안을 어지럽혀 놓는 일 등, 웃지 못할 온갖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저자 특유의 시크한 유머와 재치있는 글솜씨로 잘 그려져 있다. 보너스로 은연중에 슬쩍 슬쩍 내비치는 스펙과 꿀릴 것 없는 자기 과시는 좀 참아주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의 '형제' 브레닌과 함께 했던 시간을 회고록 비슷하게 엮어낸 이 이야기는 사실 부록에 불과하다. 책의 절반 지점이 지나고 브레닌과 작별하는 순간 이 후에는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느꼈던 '인간의 의미'와 삶의 목적'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우월함에 빠져 사는 존재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는데에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언젠가 보았던 '윤리적 행위 및 이타주의는 어느 선(종)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실에 이용된 개와 근친상간의 사례는 악행이 허락되는 상황과 동기라는, 되도 않는 근거를 들이대고 무력한 존재에 대해 한없이 사악한 인간의 단면을 보며 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과연 도덕성 운운하며 완벽함을 자부하는 인간이, 늑대라는 본능에 충실한 야생동물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밀란 쿤데라의 시험'에 양호한 성적을 보인 브레닌은 인간의 도덕성에 비해 꿀릴 건 없는 것 같았다. 거짓말과 속임수, 계략에 능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인간의 입장에서, 늑대는 악의 없고 뒤끝도 없는 비계산적인 순수한 존재일 뿐이었다. 브레닌과 함께 하는 동안 그는 오랜 기간 채식주의자의 길을 걸었고 그의 '형제' 역시 페스카테리언이 되는 것으로 '동물권 윤리계'와의 협의를 봤다. 또한, 문명세계에 속한 늑대개의 운명을 알기에 번식본능도 참아내게 한 마크의 선택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애처로운 브레닌의 운명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와 늑대'의 동거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들판과 숲, 강의실을 거쳐 미국, 아일랜드, 영국, 남프랑스를 거쳐 한 시도 떨어질 새가 없었던 둘의 동반여행은 오히려 훗날 브레닌의 슬픈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서글프게도 보였다. 이 또한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감정일 것이다.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이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인간과 달리 늑대 브레닌은 순간의 행복을 즐겼고, 고통스럽지만 병의 치유과정에서도 자연히 초연해하는 익숙함을 보였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삶과 죽음 중 어느 쪽이 더 숭고한지에 대해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순간을 살다간 브레닌에겐 후회도 아쉬움도 억울함도 없었고 삶의 목적과 의미 또한 인간보다 더 나은 철학관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가진것이 많고 앞 길이 구 만리 같은 가능성을 가진 인간은 세월의 흐름과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없다.

브레닌이 죽고 난 후, 마크의 비통한 심정을 묘사한 부분과, 죽은 그의 형제에게 보내는 짤막한 편지를 읽은 나는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인간과 동물의 유대와 삶의 여정을 그린 여타 작품이 주는 감흥들처럼, 이 책 역시 나에게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었다. 서두에서 마크 롤렌즈는 자신이 집필한 이 책이 철학서가 아니라고 했지만 철학적인 메시지는 물론, 에세이, 자기계발서의 성격까지 지니고 있고 심지어 한편의 소설과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은 때론 그 존재만으로도 오만함으로 가득찬 인간에게 본보기가 된다. 일상의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늑대 브레닌에게 순간 순간은 그 자체가 행복이고 보람이었다.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지향하며 현재를 즐기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에 비해, 비록 짧은 생이지만 많은 행복의 순간을 맛보고 후회없이 떠난 늑대의 삶은 인간의 그것보다 가치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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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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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80년대에서 90년대 초 '국딩'이던 내게 점빵이란 곳은, 세 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50원짜리 오락기를 한 켠에 둔 없는 거 빼곤 다 있는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였다. 생각해 보면 오락실, 완구점, 식료품점, 부식가게까지 겸한 나름의 멀티스토어였던 그 자리를 지금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저마다의 간판을 달고 깨끗한 인테리어와 발랄한 분위기로 무장한 편의점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편의점 인구 대비 밀집도는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를 자랑하는 수준으로, 그 발상지인 미국에서 건너와 일본을 거쳐 상륙했던 1980년대부터 급상승가도를 타며 현재도 멈출 줄 모르는 개점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편의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종업원의 기계적인 인사, 협소한 공간이지만 거의 모든 생필품과 서비스를 구비하고 있는 완벽한 장소라는 것이다. 이렇게 편리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편의점이 한편으론 거래 관계에 종속된 모두를 감시하고 최근 예능프로나 개그코드의 소재로 사용되는 '갑을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좀처럼 입밖에 내기 껄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일단 일반 슈퍼와는 다른 몇가지가 눈과 피부로 느껴진다. 최소한의 대화로 물건 구입이 이루어지는 쿨한 손님과 알바생, 그리고 상품들이 일렬종대 앞을 보고 구매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한 정갈함은 매대에 내팽개쳐져 있는 다른 가게의 그것들과 확실히 구분된다. 사실 편의점의 상품 배치와 구성, 재고관리, 직원교육등은 그 수익 증대를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치밀하게 계획되어지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이다. 냉장시설로 대변되는 신선함과 점차적으로 더해진 은행, 우편, 복지, 치안, 금은방, 복지센터의 기능부터 고차적인 상품 취급까지 이러한 모든 서비스와 생활 집결지의 장소라는 점이, 편의점이 다른 유통업체들과 일렬 선상에 있을 때 선택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편의점은 24시간 오픈이라는 강점을 무기로 전국 구석 구석 다양한 형태로 그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다. 땅끝 마라도에서부터 군대, 학교, 교도소, 한 때는 북한의 금강산에까지. 그 끝을 모르는 질주는 사람이 살고 소비가 가능한 지역이라면 어디서든 이어질 기세다. 편의점은 대개 대기업 산하의 프랜차이즈 형태로 존재하는데 본사와 가맹주 그리고 점원의 고리로 연결된 갑을 종속관계의 불편함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업계 폐단일 것이다. X세대로 일컬어지던 지금의 30-40대들은 한 때 자신의 젊은 시절, 돌연 나타난 '편의점'이라는 이국적 소비자본주의의 아이콘을 열렬히 환호하며 선망했다가 현재는 창업의 한 형태로 눈길을 돌려 사업에 뛰어들게 되면서 '갑'이면서도 '을'의 입장에 놓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스스로 몸을 던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선진문화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편의점은 지금, 독거노인과 88원 세대의 한끼 식사를 판매하고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를 방관하며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와 인격적 모독도 감내하며 참아내는 직원들의 답답한 속을 대변하는 등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편의점이 의미하던 서구문화와 편리성은 저자의 사회학적 측면에서 관찰되고 파헤쳐지길,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장점보다 간과되고 있는 단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편의점이 지역화와 토착화를 거쳐 현지인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경쟁력있게 다가선 것은 사실이나, 1인 가구와 핵가족의 확산으로 인한 소비 주체의 개인화는, 쉽고 빠르게 쓰고 버리는 소비 문화를 조장하고 그것은 자연히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체제의 필요악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통치 장치로서 편의점이라는 만능 복합 생활 거점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편의점을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발견 장소로서 각자가 어떠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이용해야 할지에 대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마인드가 새삼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핵심이다. 또한 그것은 '편의점 사회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편의점의 온갖 혜택과 안락함에 길들여진 우리로서 다시금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위를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답에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지금도 우리 나라 3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g25, CU는 자체 개발 브랜드 및 고객 만족 응대로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그 들만의 전쟁터에서 오늘도 24시간 소리없는 싸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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