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반양장)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11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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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유독 읽기 힘들었던 것은 정치, 윤리, 철학, 종교관을 아우르는 내용의 심오함도, 극 중 인물들에게서 오고 가는 치열한 가치관 투쟁 때문도 아니었다. 빽빽히 들어찬 작가의 문장을 통해, 난 오늘도 여전히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당신들의 천국'이란 의미의 이기적임이 현실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에 대한 한숨 섞인 통한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소설은 소록도의 새 원장 조백헌의 부임과 동시에 원생들의 탈출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느닷없이 막을 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사태에 섬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캐보지만 명쾌한 답을 얻긴 커녕 냉랭한 원생들의 시선과 보건과장 이상욱의 같은 태도에 의문만 더해 갈 뿐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낙원이 따로 없는 듯한 그 곳엔 과연 걸맞는 사연이 있었고 과거 섬을 거쳐간 일본인 주정수 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원장들에게서 행해졌던, 약속이나 한 듯한 똑같은 다짐과 동상들의 재현이 다시금 시작됐음을 직감한 나름의 반응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 원장은 동상은 물론, 자신만은 절대로 일전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과 그들만의 낙토인 천국건설을 약속하며 축구경기로 원생들의 집단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이어, 본격적인 오마도 간척사업 착수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순조롭던 공사 진행도 잠시, 더딘 일의 결과와 작업 중에 계속되는 사고와 재해에 따른 인명피해, 그리고 기대에 못 미치는 개발회의 평가는 원장과 원생들을 불신과 의구심에 빠뜨리게 되고 인근주민의 반발과 사업권 쟁탈에까지 휘말리게 되면서 결국엔 소원한 절강제도 보지 못한 채 원장은 섬을 떠나게 된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전 원장들처럼 야심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조백헌 개인의 실패가 아닐 것이다. 조 원장은 애초 섬을 들어올 때 벌어졌던 탈출극과 간척사업 도중에 행해진 원생들의 자살이 내포하고 있는 참뜻을 몰랐던 것이다. 장로회를 결성하고 건의함을 설치하여 원생들의 의견을 최대 수렴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를 다른 이의 그것들과 차별을 두려 했지만 그 역시 원생들 밑바닥부터의 의견을 무시한 조 원장 그 자신에게서 나온 명령에의 복종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끝까지 나환자들과 운명을 함께 할 수 없는 원장이 건설코자 한 낙토는 원생들의 자유를 억압케 하고 내일의 희망과 발전의 기대조차 없는 창살지옥과 같은 것 혹은 원장 자신만의 천국이었다.


조 원장의 입장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실천되던 문둥이들을 위한 낙토건설은, 지배자의 힘에 의해 그 사랑이 무조건적으로 피지배자에게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폭력의 일환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록 그 시작이 나환자들을 위한 진정한 천국을 빚어주고자 하는 선의의 동기에 의해서였다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생들의 탈출극이 멈춰지고,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동상이 지니어지게 되는 순간부터,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만재도 돌기둥과, 그 곳에 깃들어지길 원하는 조 원장의 메시지가 있는 한 이미 그 순결한 뜻을 침범해버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황 장로와 이상욱은 문둥이들 자체 집단에서 추대되는 대표가 아닌 외부인이 원장으로 부임되는 현행 관습으로는 원장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 천국이 건설될 날이 요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와 인간을 철저히 구분하고 환자들만의 천국을 명시해주고자 하는 지배자의 무모한 시도는 원생들이 지향하고 있는 자유로의 행함을 방해하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을 드높이는 결과만을 불러올 뿐이다. 이러한 황 장로의 조언과 훗날 받게 된 이상욱의 편지를 읽고 진정한 운명 공동체로서의 천국을 꿈꾸며 섬으로의 귀환을 해 오지만, 이미 섬의 원장이 아닌 일반인 조백헌은, 권위와 힘이 없는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섬의 마지막 희망인 윤해원과 서미연 두 미감아의 인연을 맺어줌으로나마 소설 밖 미래의 밝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은 쉽지 않다. 작가의 쉬운 문체와 이야기 전개방식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쉴새없는 가치관 대립과 사랑, 자유, 동상, 명예등의 추상적인 단어반복은 분명 지금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엔 모호하고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를 반영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이 사라진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빛이 바래지 않고 분명하다. 그것은 한 집단의 천국에 이르는 길은 개인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 특히 그것이 어느 하나 부족한 이들에겐 물질이나 돈, 건강등이 충족됨으로써 완연한 천국이 될 수 없음을,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부족한 존재로 보는 바탕에서부터 뭔가 크게 잘못된 윤리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아쉽게도 서두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소설에서 다뤄지고 있는 문제는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크게는 정치판에서 작게는 개개의 집단에서까지. 이런 끝나지 않은 물음에 속시원한 대답이며 해결책인 '우리'들의 천국'건설은 요원한 것일까.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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