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이란 낯설고 새로운 것에 관한 동경, 한편으론 정치권력, 부의 편중, 배제원리가 냉철하게 작용하는 도시사회의 대표격으로 환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60여년 동안 엄청난 발전과 변혁이 일어난 본산이기도 하다. 인구 천만이 넘은지 오래, 거리마다 높은 빌딩과 저마다의 브랜드와 가치로 무장한 상업적 공간이 즐비한 이 곳, 서울이 돌아가는 작동 원리는 과연 무엇일까. 부산 태생인 저자는,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며 느꼈던 과거 자신의 시절을 회상하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건물들과 집들이 지어지고 뜯기며 또 다른 무대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공간이 충돌하거나 공감되거나 혹은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서울은 냉정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능력이 있고 돈 있는 사람들과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하여 상위층에 머무르며 인서울 생활을 즐기겠지만 지방으로부터 부푼 꿈만을 안고 올라온 이들은 도심 속에서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기 일쑤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인들을 보는 시선부터 배제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처럼의 이벤트 행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게 일반이고 대학과 일자리를 구하려면 서울로 가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다. 이러한 배제원리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대학, 주거지역, VIP서비스, 교육현장등이 그 예일 것이다. 요즘엔 웬만한 고급아파트나 신축 빌라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경비도 삼엄하다. 대학졸업장만 따면 그만인 시대는 갔다. 서열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대학에도 순위를 매겨 철저한 등수논리에 의해 누구는 좌절하고 누구는 우월감에 젖는다. 이런 네임밸류는 대학에 한정되지 않고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 강남 어디 어디 학원이 잘 가르친더라~ 또는 어디 병원이 시술을 잘 한다더라~ 하는 사교육과 성형열풍에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되는 자유가 오히려 빈곤층과 서민들을 최상위계층과 구별짓게 하는 역효과는 낳은 셈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든가~'라는 말이 더욱 더 그 힘을 발휘하는 현대사회가 때로는 각박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커피는 스타벅스, 대학은 인서울 중에서도 스카이, 아파트는 최소 몇 평은 되어야 하고 취직 후 월급은 얼마 이상. 주부나 회사원, 입시생들이 모이면 주로 올리는 화제거리가 아닐까.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브랜드를 소비하고 고급적인 생활공간을 지향한다. 이러한 욕구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자기투자 즉, 자격증 취득이나 여가, 외모관리등 '자기경영'에 소비하는 행위조차도 점점 차별화와 럭셔리화의 대세를 따라간다. 결국, 이렇게 이룬 모든 것을 그것을 이루지 못한 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자신들만을 위한 특별한 대우를 원하게 되는데 최근 생겨난 코스트코나 롯데월드, 백화점 명품관, 주상복합아파트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공성이 비공공성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있는 자들만의 소유가 된다. 열려진 공간, 누구에게나 개방적이었던 공간이 점점 입장권이나 멤버십등의 제한으로 차단되는 요즘,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젠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할 듯 싶다. 어쨌든 소비사회에서 물욕의 노예인 우리들은 가지지 못하면 부러워 하거나 따라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엇비슷하게 따라하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짝퉁명품을 사거나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 질투심을 달랜다. 나처럼 마음을 비우고 아예 시도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편할텐데 사람 맘이 다 같지 않으니 '죄수의 딜레마'같은 너도 나도 현상이 일어나나 보다. 하긴 그래야 시장도 돌아가고 먹고 사는 거니까.


그런데 이런 사회계층을 구분짓게 되는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간의 의미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4-50년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예감할 수 없었던 강남 지역은, 정부의 각종 정책 단행이나 제3한강교 건설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여 땅값 상승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됐고 그 후로 지금껏 건물 조성과 재개발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끼리의 숱한 갈등이 불가피하게 이어져오곤 했다. 익숙한 공간을 허물고 낯선 공간의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공간재편이 아닌, 때론 소수의 의지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말살되는 현장 혹은 시초축적의 현장일 것이다. 우리는 늘 불안 속에 살아간다. 가진 자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을, 뒤따르는 자는 끝없는 추격을, 경쟁하는 사람들은 뒤쳐지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안고 매일을 살아낸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 물질은 그 고유의 실용가치를 잃고 상징성만을 띠게 된다. 당신이 사는곳, 당신의 품격, 당신의 이름이라는 등의 유려한 선전구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마케팅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개미와 베짱이 이론을 믿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순수했던 10대에는 일한 만큼 돌아오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이고 논리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때가 묻어 그런지 세상이 변해 그런지 올바른 방식으로 대자본을 쌓기에는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팍팍한 세상살이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과 정보사회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한 말단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온 몸으로 일하는 정직한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