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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1 ㅣ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사회 과목 수행평가로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턱대고 책을 사서 읽은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때는 김훈이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고 이 책이 유명한 스테디셀러가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난 김훈의 문체와 그의 글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건 매 한가지라는 것이다.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전국을 여행한다는 것. 어찌 보면 무모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한 일을, 추우나 더우나 하루 최소 6km에서 최고 70km까지 내달렸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그의 글은 중독성이 있다. 강과 산천을 떠돌며 1년여의 유랑을 기록한 이 책에서 나는 농민의 삶을 알았고 역사의 진실과 대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과 땅에서 생명이 움트고 스러져가는 모습에서 작가는 우리네 인생과 덧없음을 겹쳐보였다. 드넓은 숲을 마주한 지점에서 한 때 불길의 고통을 겪은 산의 자생력에 놀라워했고 인간의 무지한 경각심에 안타까워했다.
강이 흘러가고 머무는 것은 시간과 같다는 그의 말에서 순리를 따르지 못하는 어떤 이들이 생각났고 자연의 무심함에 한 해 수확를 망친 농사꾼의 사연에 대해선 맘 속으로 위로를 했다. 죽음에 관한 그의 철학도 엿볼 수 있었는데 땅을 일구고 산 농부가 흙으로 돌아가고 고기를 잡던 어부가 물가에 묻히는 것을 보고 죽음의 평안함과 그 역시 순리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선암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괜한 서글픔과 비애를 느꼈다던 부분에서는 고등학교 때 그저 웃어넘기기만 했던 그것이 이제 나에게도 공감이 되는 걸 보니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또한 서러움이 밀려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퇴계 이황, 충무공 이순신, 의상과 원효대사에 관한 역사적 일화도 여행 경로의 에피소드 못지 않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의 역사적 지식과, 예의 위인들의 검소하고 올곧은 생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곤 했다. 영일만 오징어잡이 배들의 새벽 출어는 삶을 이어간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눈물겨운 사투와도 같아 보였다. 또한 소금이 '오는'것을 기다리는 옥구 염전의 염부들의 지난한 노동은 햇빛과 바람과 물의 도움이 절실한 삶의 현장이었으며 한 마을을 오랜 세월 지키며 상여 드는 일을 자처해왔던 노인의 얼굴에선 담담함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산맥을 넘으며 길을 헤쳐 나갈 때 글은 그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나가기를 수 천번 반복했다. 풀, 물, 불, 바람, 노동, 역사등 그의 여행에서 깨우친 모든 것은 생태와 종교, 역사, 철학 그리고 인간의 삶이었다. 아직은 농사일에 서툰 어린 소와 힘겨운 오르막길 끝에서 박수쳐 준 어떤 성실한 근로자를 뒤로 하고 그의 여행은 풍륜에 발을 걸고 몸을 맡기는 것으로 다음 여정에 박차를 가했다.
분교 아이들과 함께 놀던 김훈 작가는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것 같았다. 에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은 달필의 경지에 다다른 그의 무심한 듯한 문체와 앉아서 전국여행을 순식간에 한 듯한 기분과 유익한 독서를 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느껴지는 읽기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