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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유형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승호 옮김 / 책만드는집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있었고 그 이전에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인 관계, 그리고 책 좀 읽는다는 분들에게는 '국화와 칼'이 필독서로 여겨진다는 게 괜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와 그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해 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한데, 종종 일본 문학이나 대중문화를 접할 때에도 흔히들 얘기하는 '일본적'이라는 느낌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것들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다소 역부족이었다는 게 구체적인 이유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반일 감정이라는 것을 제쳐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도 역시 일본은 이상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일본이란 나라는 왠지 모를 모순과 기묘함으로 가득찬 곳이었다. 그것은 정확한 관찰과 예리한 분석으로 이 책을 집필한 루스 베네딕트 여사에 의해 그러한 이질감과 괴리감이 한국인만이 가졌던 감정이 아님을, 세계 속의 일본은 확실히 독특한 나라임을 확인하게 해 준 증거 같은 것으로 내게 다가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저자는 일본 땅을 밟지 않고 순수 문헌연구와 재미 일본인의 협조만으로 이 책을 전시중에 연구용으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맥상에서 다소 구전으로 전해들었다는 느낌과 추측성이 다분한 문장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 아쉽지만 방대한 역사적 사료근거와 인터뷰등을 통해 일본 문화 속 깊이 침투해 있는 정서적 특징을 놀라운 글솜씨로 가독성 있게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솔직히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골적인 성(性)문화, 다혈질, 전쟁. 순종적인 여성상, 절도있는 예의등인데 좋은 이미지가 별로 없다. 역사적 편견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장담은 못하겠지만 단점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본의 교육 과정은 서구의 다른 나라들와 한국에 비해 특별하다고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달콤한 맛을 먼저 보인 후에 그것을 금기시하며 차츰 속박해나가는,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불가능한 방식인데 쾌락과 자유, 예의범절등에 있어서 다소 윤리적으로 관대한 유년기와는 달리 훗날 성인이 되어 그것을 철저한 규칙으로 금하고 다스려서 위반한 자에게는 극한의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한다. 이는 절제와 정신수양을 중시하는 그들의 사상과도 상통하며 한 사람의 전 인생에 걸쳐서 바탕이 되는 가치관과 행동의 토대를 마련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신중에 자중을 거듭하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는 집단으로부터의 소외, 놀림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으로서 더욱 자세히 나타난다. 어려서부터 남녀 각자의 차이와 역할, 계층제도 및 예의 범절, 주, 고, 기리, 기무, 온 등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적 의무에 대해 빈틈없이 주입식 교육을 받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당황스러운 건 '메뉴얼'에 없는 돌발 상황 즉, 학습되지 않은 조건에서의 행동 지침일 것이다. 일본인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 수십가지 상황과 대하는 상대방에 따라 -들에도 일일이 정답과 오답을 제시하고 거기에 맞는 올바른 행동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것은 때로는 이상하리만치의 침착함으로도 보여지곤 하는데 바로 지진발생시에 대피요령이 그것이다. 타국민의 입장에서 본 일본인의 지나치게 차분한 질서정연함은 마치 법과 도덕을 너무나도 잘 지켜내는 모범적 시민의 사례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 곳엔 잦은 지진 발생에 대비해, 철저히 교육받은 '메뉴얼'에 입각한 행동들의 군체만이 있을 뿐이다.
어디선가 일본인은 이유 모를 과도한 친절에 불편해 한다는 것과 반면, 타인에 대해 지나친 배려심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약간은 모순적이란 느낌을 받았는데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다. 우리와는 달리 받으면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인 일본은, 받은 친절과 모욕을 수치화하여 정확하게 되갚아주는데 이런 관습은 우리와 비슷한 악습인 '군대문화'를 조장하고 때론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오명을 씻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계층적 사회구조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나라이다. 그 때문에 국민들 대부분의 머릿 속엔 각자의 신분에 맞는 '제자리를 찾는 것'에 대한 당연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 부자와 서민, 남자와 여자, 선진국과 후진국등을 엄격히 구분하여 그들의 기준에 맞는 대우를 함으로써 계층 사회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계층적 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이 알맞은 위치 지정의 행위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대동아의 사명'이었던 그들의 외세 침략 또한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든지 제국주의의 땅따먹기 싸움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오직 일본만이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다는 그들만의 잘못된 우월의식과 군국주의 사상이 결국에는 패전으로 종식될 운명이었던 2차 대전의 발원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그들 일본인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줏대있게 행동하기 보다 천황에 대한 주를 지키는 것, 이름에 대한 기리를 지키는 것, 부모 자식 간의 온을 다하고 그것을 갚는 것 등 도덕적인 관념에 앞서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행동에 옮김으로써 타국민의 입장에선 가끔 이해 불가한 상황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그야말로 특이한 민족이라는 걸 저자는 강조한다.
물질보다 정신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모든 것에 간섭적으로 통제된 규율은 현지 일본인이 아닌 유학 생활 등으로 잠시 본국을 떠난 일본인에게서 그 진상이 밝혀지곤 한다. 그들을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온갖 사회 규범이나 윤리적 의무등은 정작 그러한 생활에서 해방된 타국의 일본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 자신의 생활에 치를 떨며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비정상적인 일본의 제도들과 사고방식이 고발된다. 우리는 이제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일이, 지구편 반대쪽의 이름 모를 미개 부족의 생활 습관과 전통적 문화를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수도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역사에 식민지라는 불운한 과거의 참상을 남긴 것 만으로도 그 민족에 대한 혐오와 환멸로 가득찰진대, 가해자였던 일본이라는 민족은 이렇게, 평범하지도 않은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였으니 그 불 붙은 감정에 석유을 끼엊은 결과로 나타난게 아닌가 싶다. 패전 후의 일본인과 지금의 일본인은 세대가 바뀌었고 그 생각과 이데올로기 또한 예전처럼 극단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잔재는 아직 여전히 일본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 일간 국민들의 관계 및 간극들을 좁히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인의 장점 즉,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상대를 존중하며 외래의 문물과 사상을 적절히 일본적인 것으로 융화하여 고유한 자신들만의 것으로 받아들인 점 등은 단기간에 선진국이라는 대열에 합류하는 위엄을 이룬 업적의 초석이자 여러 나라가 본받아야 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