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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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인문학적 접근이라니 꽤나 신선한 발상이다. 바야흐로 '1인1닭' 시대에 이보다 맞춤인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전후 한국에 상륙한 서구음식들 중 유일하게 토착화에 성공하여 긴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그 인기 또한 단연 최고였던 것이 근래 들어 더욱 뜨겁게 몰아치는 열풍의 주인공 바로 '치느님'. 국물을 우려 먹는 한국 음식의 특성상 백숙과 삼계탕의 전통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에 풍요로운 기름진 입맛을 심어준 치킨이란 녀석은, 사실 영양학적으론 빵점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바삭한 식감과 축제의 음식으로 각인되어 전국민이 사랑해마지 않는 대표외식메뉴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이제는 국민소득수준이 높아져 특별한 날에만 국한되지 않고 남녀노소를 불문, 입맛없는 주말저녁이나 가벼운 술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소환되는 치킨은 어느새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치킨을 먹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꼭 닭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비싼 고기를 사먹자니 허락치 않는 주머니사정에, 가성비 최고인데다 요즘엔 입맛대로 후라이드, 양념, 간장, 불닭등등 메뉴개발도 가지각색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이겠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치킨에 대한 취향이 갈리는 기준을 보면 정작 주객인 닭은 온데간데 없고 어떤 소스냐 튀김옷의 상태는 어떠하냐로 나뉜다는 것이다. 피자가 토핑이 중요한 이유와 같다고 하기엔 너무나 본질을 벗어나 있는 치킨의 오묘한 세상이다. 최근엔 각종 프랜차이즈점이 우후죽순 생겨나 그 브랜드만도 맛집책자 한켠을 가득 채울 지경인데 대체 그들이 튀겨내는 닭들은 어디서 자라고 유통되며 우리 입까지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


개인점이 아닌 프랜차이즈점이 주류를 이루는 치킨업계는 양계부터 도계, 가공, 유통, 판매까지 국내 대기업 몇몇을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가 이루어져 있다. 굴지의 기업 '하림'을 비롯한 육계기업들은 그들과 손을 잡은 농가와의 계약으로 신선하고 품질 좋은 닭으로 발빠른 수급을 약속하는데 여기서부터 시작된 불편한 '갑을'관계는 최종 납품지인 치킨가맹점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갑의 횡포에 더해 최근엔 조류독감과 배달앱 서비스의 등장까지 가세해 점주들의 근심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진다고 하니 우리가 즐기는 먹거리 문화의 어두운 단면을 그저 듣고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치킨업계에서 소스와 염지비법은 결코 만만찮은 가격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닌 게 되었고 타업종과의 견제도 늦출 수 없는 지경에 말 그대로 전쟁터가 따로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쯤되면 저자의 말처럼 '이도 저도 안되면 치킨집이나 차리라'는 말은 자칫하다간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로 치부될 판이다. 한편, 치킨하면 맥주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는 KFC가 한국에 건너옴과 동시에 파트너가 된 맥주회사와의 만남, 그리고 느끼함을 달래줄 짜릿한 마실거리의 필요성이 더해져 환상의 궁합 '치맥'이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그 옛날 전기구이통닭에서 후라이드,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다시 '치콜'과 '치맥'으로 귀결되는 이시대 먹거리 문화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당당히 한국인만의 것으로 온국민이 불금에 영접하길 원하는 메뉴 1위가 된 것이다.


월드컵과 프로야구 시즌이 되면 북새통이 되는 건 경기장만이 아니다. 거리의 응원과 함께 매장 내 스크린 경기를 보며 뜯는 닭다리가 없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은, 맨손 응원이 면구스러운 요즘이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팀과 나라와 국민과 치킨집 사장도 함께 울고 웃는 것이다. 연예인의 인기척도마저 언젠가부터 치킨광고의 출연유무로 판가름나게 된 것이 이젠 직접 치킨사업에 몸소 뛰어들어 짭짤한 부수입을 노리는 연예인까지 제법 생겨난 걸 보니 치킨 열풍이 당분간은 가라앉지 않을 음식문화의 대세가 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즐거울 때 먹는 음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윤리적으로 생산, 유통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을 살펴보면 유독 통일되는 키워드가 노동, 도덕, 윤리, 자본, 소비인데 이 <대한민국 치킨전> 역시 이들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돈을 주고 즐기는 외식문화에 노동문제와 윤리, 도덕성이 긴밀하게 얽혀있어 소비자로써 간과하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와 있는 사실이란 것이다. 갈 곳없는 퇴직자들의 마지막 선택지가 치킨점 창업이라는 어떤 이의 사례에, 까다로운 고객의 입장에서 물러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공감되어지는 슬픈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의 미각을 지배하고 회식을 주도하는 닭들의 향연은 좁디좁은 양계장에서 재촉전화에 도로를 질주하는 알바생들을 끝으로, 사연 많고 길고 긴 여정을 지나 오늘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해주고 한덩이의 살점이 되었으니 이것 참 살풍경한 과정이라 아니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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