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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 '골라 사는 인생'을 살고 있다. 모태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 생명의 덩어리로 잉태되어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나뉘어진 열차의 지선을 따라 온 것처럼 그렇게 생을 이어왔다. 어떤 지점에서 선로를 바꾸었다면 일생일대의 참사를 겪었을 수도, 인생의 동반자나 평생을 함께 갈 친구를 만나거나 잃었을 수도 있다. 나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면서도 지금의 부모 자식간으로 당신 두 분과 내가 만나게 된 것을 신기하게 여길 때가 많고,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삶을 180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한탄하는 날이 많다.
기욤 뮈소의 타임 슬립 로맨스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외과의사인 주인공 엘리엇이 캄보디아 구호활동 중 언청이인 아이를 치료해 준 뒤 노인에게 보답으로 받은 신비한 알약의 힘을 빌어 30년 전의 자신과 대면하며 벌어지게 되는 초현실적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인간적 유대관계인 사랑과 우정도, 병이 생기는 원인도, 사고가 나는 불씨조차도 시간을 거슬러 조종, 혹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뜻대로 모든게 그리 순탄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몸소 가르쳐 준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행으로 얼룩진 가족사. 그것은 젊은 시절 엘리엇이 아빠가 되길 두려워하고 진정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게 된 근원이었다. 사실, 시간 여행 자체를 좀 더 먼 곳으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의 잠재의식 속 상처를 지워서 행복한 삶을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는 유년시절로 회귀하는 설정도 그려볼 만하지만 영화 <나비효과>에서처럼 모든 인생사는 장담할 수 없는 거니까.
시간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재미, 교훈, 감동의 삼박자를 갖추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적절하고 구조상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 옮겨 담는 것도 수월한 편이다. 그래서 예전 <백 투 더 퓨쳐>, <프리퀀시>와 같은 영화부터 최근 드라마 <나인>, <인현왕후의 남자>, <신의 선물>등으로 '시간여행' 붐이 확대되었다.
어릴 땐 시간이란 개념 자체를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이 지나면 자연히 내일이 오고 올해 후엔 내년이 있겠지 하고 막연히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돌이켜 봐야 할 날들이 많아지고 기억과 추억이 층층이 쌓여 후회와 회한만을 낳아갔다. 지식과 지혜로 인해 넓은 시야로 예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나이가 될수록 이전보다 모든게 망설여지는 당연한 이치앞에서도 어쩔 수 없이 때론 그 아이러니함에 쉬이 수긍할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이 의사라는 직업 설정,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적잖은 죽음과 고통을 목격했을 법한 예순이라는 나이에 자신 또한 폐암이라는 병이 덮친 상황이 소설에 힘을 더해 주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세상 모든 '나'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어느 시점이 있을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날들은 늘어만 간다. 소설 속 젊은 엘리엇의 상상대로 '다중세계'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많고 많은 세상들 중 한 곳을 살아간다는 것인데 그럼 과연 최선의 선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란 뭘까. 인생에서 행복을 누군가의 존재에 따라 결정지을 수 있다면 나는 과연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읽었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책이 문득 떠오른다. 마치 당장 내가 해야 할 자잘한 선택이 훗날 커다란 후폭풍이라도 불러올 것처럼 강박스런 집착을 보이는 행동들도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금은 이해가 갈 법도 하다.
나는 꿈을 거의 매일 꾸는 편인데 내가 모르는 나인 경우는 거의 없고 매번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거나 헤어졌던 친구와 재회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소를 나누곤 한다. 그리고 곧 꿈에서 깨면 밀려드는 허망함과 함께 드는 생각은 늘 후회와 자책뿐이다.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깨달음이 아침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늘 과거에 머물러 있어 그것을 돌이키고자 하는 갈망이 꿈에서나마 이렇게 발버둥쳐 내게 찾아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미스테리지만 오늘도 난 내 선택에 의해 정해진 '나만의 시간길'을 살아가고 있다.
[반디앤루니스 펜벗2기 5월의 테마서평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