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 '골라 사는 인생'을 살고 있다. 모태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 생명의 덩어리로 잉태되어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나뉘어진 열차의 지선을 따라 온 것처럼 그렇게 생을 이어왔다. 어떤 지점에서 선로를 바꾸었다면 일생일대의 참사를 겪었을 수도, 인생의 동반자나 평생을 함께 갈 친구를 만나거나 잃었을 수도 있다. 나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면서도 지금의 부모 자식간으로 당신 두 분과 내가 만나게 된 것을 신기하게 여길 때가 많고,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삶을 180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한탄하는 날이 많다.


기욤 뮈소의 타임 슬립 로맨스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외과의사인 주인공 엘리엇이 캄보디아 구호활동 중 언청이인 아이를 치료해 준 뒤 노인에게 보답으로 받은 신비한 알약의 힘을 빌어 30년 전의 자신과 대면하며 벌어지게 되는 초현실적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인간적 유대관계인 사랑과 우정도, 병이 생기는 원인도, 사고가 나는 불씨조차도 시간을 거슬러 조종, 혹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뜻대로 모든게 그리 순탄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몸소 가르쳐 준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행으로 얼룩진 가족사. 그것은 젊은 시절 엘리엇이 아빠가 되길 두려워하고 진정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게 된 근원이었다. 사실, 시간 여행 자체를 좀 더 먼 곳으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의 잠재의식 속 상처를 지워서 행복한 삶을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는 유년시절로 회귀하는 설정도 그려볼 만하지만 영화 <나비효과>에서처럼 모든 인생사는 장담할 수 없는 거니까.


시간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재미, 교훈, 감동의 삼박자를 갖추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적절하고 구조상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 옮겨 담는 것도 수월한 편이다. 그래서 예전 <백 투 더 퓨쳐>, <프리퀀시>와 같은 영화부터 최근 드라마 <나인>, <인현왕후의 남자>, <신의 선물>등으로 '시간여행' 붐이 확대되었다.


어릴 땐 시간이란 개념 자체를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이 지나면 자연히 내일이 오고 올해 후엔 내년이 있겠지 하고 막연히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돌이켜 봐야 할 날들이 많아지고 기억과 추억이 층층이 쌓여 후회와 회한만을 낳아갔다. 지식과 지혜로 인해 넓은 시야로 예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나이가 될수록 이전보다 모든게 망설여지는 당연한 이치앞에서도 어쩔 수 없이 때론 그 아이러니함에 쉬이 수긍할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이 의사라는 직업 설정,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적잖은 죽음과 고통을 목격했을 법한 예순이라는 나이에 자신 또한 폐암이라는 병이 덮친 상황이 소설에 힘을 더해 주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세상 모든 '나'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어느 시점이 있을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날들은 늘어만 간다. 소설 속 젊은 엘리엇의 상상대로 '다중세계'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많고 많은 세상들 중 한 곳을 살아간다는 것인데 그럼 과연 최선의 선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란 뭘까. 인생에서 행복을 누군가의 존재에 따라 결정지을 수 있다면 나는 과연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읽었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책이 문득 떠오른다. 마치 당장 내가 해야 할 자잘한 선택이 훗날 커다란 후폭풍이라도 불러올 것처럼 강박스런 집착을 보이는 행동들도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금은 이해가 갈 법도 하다.


나는 꿈을 거의 매일 꾸는 편인데 내가 모르는 나인 경우는 거의 없고 매번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거나 헤어졌던 친구와 재회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소를 나누곤 한다. 그리고 곧 꿈에서 깨면 밀려드는 허망함과 함께 드는 생각은 늘 후회와 자책뿐이다.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깨달음이 아침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늘 과거에 머물러 있어 그것을 돌이키고자 하는 갈망이 꿈에서나마 이렇게 발버둥쳐 내게 찾아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미스테리지만 오늘도 난 내 선택에 의해 정해진 '나만의 시간길'을 살아가고 있다.




[반디앤루니스 펜벗2기  5월의 테마서평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 극심한 한계상황에 다다르게 되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포악해지고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가. 정의와 도덕성 따윈 기대할 수 없는 사회. 그것은 과연 천재지변으로 법과 질서가 무너지거나 혹은 문명을 따라온 인간이란 존재가, 처음부터 법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이 백지상태였던 구석기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일까.


1930년대 초 우크라이나 대기근 중, 한 마을에서 두 형제가 마침 눈에 띈 고양이를 좇아 사냥을 나선다. 형 파벨의 실종을 부른 그 일을 뒤로 시간은 20년을 점프한다. 왠지 모르게 책을 쓴 톰 롭 스미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레오는 전쟁영웅이자 촉망받는 국가의 기대주 MGB요원이다. 구소련 체제의 스탈린 정부와 그에 대한 절대복종이 당연시되던 그의 임무, 그리고 확고했던 신념을 흔들게 한 계기는 부관 표도르의 아들 아카디의 의문사고였다. 또 서방 스파이의 누명을 쓴 채 끝내 처형을 면치 못한 아나톨리 브로츠키의 초연하고 인간적인 면면은 그에게 왠지 모를 죄책감과 직업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개의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레오 역시 사건의 미스터리함에 이끌려 연쇄살인의 의심을 품고 집중수사를 시도해 보지만 진술확보는 커녕 아내 라이사의 반역 혐의와 그녈 감쌌다는 이유로 모스크바를 떠나 지역 민병대 말단직으로 좌천되고 만다. 전화위복일까. 차라리 시선의 집중이 덜한 그 곳에서 레오의 사건수사는 활기를 띠고 마침내 상관 네스테로브도 그의 일에 적극 협력하여 가족과 동료 모두를 건, 국가에 대항하는 비밀수사를 대대적으로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범인의 발자국을 쫓는 순간에도 쉼없이 희생자는 늘어나고 거기엔 마치 유명했던 화성연쇄살인을 연상케 하는 범인의 난자와 물욕따위의 목적이 아닌 듯한 공통된 표시들이 있었다. 


급기야 수사상황이 노출되어 도망자 신세로 쫓기는 신세가 된 레오와 아내는 요원 시절 발휘했던 비상함을 그들의 목숨을 건 탈출과 도주에 써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숨가쁘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절정으로 치닿는다. 기찻간에서, 그리고 농가의 마을에서 그들을 도왔던 죄수와 농민들이 마음을 열고 그들 내외를 적극 돕는 장면을 마주할 때 위험한 상황에서도 뼛속까지 그릇된 이념으로 물들진 않았음을 확인했던 이들의 진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입장에서 '좋은 사람'이란 대의에 봉사하고 충직하며 명령에 순응하는 효율성 있는 젊은 남자들이었다. 출산, 결혼, 교육, 취업등 어느 것에서도 당시 이념과 떼어 생각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보다 나은 미래, 재산, 신임, 안전을 위해 예의 모든 것을 국가의 원칙에 따라 배우고 순응하는 인생. 그것은 개인의 행복은 일절 배제되고 국가 대 개인의 관계만을 허락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역죄의 연결고리는 즉시 처단되는 악명높은 사회였다.


그들의 도덕적인 나침반은 너무나 오랫동안쓰지 않아서 통제력을 잃어버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면 답이 없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런 불안한 시기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행동 방침은 가능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p.200 - 201


소설은 MGB요원이던 레오가 도리어 반역죄로 붙잡혀 고문과 협박을 당하면서 과거 자신이 '대의'란 명분으로 저질렀던 숱한 행적들을 돌이켜 반추해 보는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으로 사는 것이며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대기근에서 먹을 것이 없어 오물을 뒤지거나 흙과 나무를 갉아먹는 행위가 그저 순수한 야만이라면, 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조종하고 공포정치로 모두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던 당시의 맹목적 이념추종은 문명에 눈 뜬 인간의 이성 잃은 야만이 불러온 참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발달된 시대와 환경이 낳는 각종 범죄도 어찌보면 구소련 체제의 불운이 원인이었던 범인의 애처로움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년전, 누군가가 열심히 읽었던 손 때 묻은 책이 지난한 여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온 건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책의 임자는, 내지에 읽었던 날짜를 서두로 짧은 글귀 하나를 적어 두었더랬다. '가만히 책을 덮고 善과 惡을 생각하노라'고.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르며 좋고 나쁜지에 대해 십수년, 혹은 그 이상을 갈고 닦으면서도 우린 그 정석대로 살기가 쉽지 않은 걸 하루가 다르게 느낀다.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내가 살아보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 - p.160


요즘, 태어나 보니 누구누구의 딸이더라, 혹은 아버지가 유명한 누구더라 하는 부러움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한다. 또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상상도 못할 부를 누리거나 성공을 쟁취한 이들을 보면 흔히 느끼게 되는 자괴감. 그것은 가까운 친척이나 남매간에는 후광효과를(같은 남매나 지인이란 이유로) 낳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얼굴을 한 엄마와 이모의 같은 날 결혼. 아슬아슬하게 운명이 비껴간 안진진의 인생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화려하고 풍족해보이는 이모네 부부와 사촌들. 그에 반해 콩가루 집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바람 잘 날 없고 궁핍한 그녀의 집안. 거기다 그녀의 마음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저울질 하게 만드는 장우와 영규가 그 심란함에 한 몫한다. 헌데 얄궂게도 낭만적이며 감상에 곧잘 젖는 장우는 그녀의 아버지를, 한치의 어긋남과 실패도 허락치 않는 인생의 계획표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영규는 이모부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다.


자연히, 앞이 뻔하고 도무지 '돌발변수'나 이벤트하곤 거리가 멀어야 했던 삶을 강요받아온 이모는 행복하지 않았고 놀랍게도 그녀의 어머니를 시종 부러워했다고 훗날 고백한다. 그 시기 결혼 적령기의 진진이 고민한 것은 단순히 결혼상대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서, 완전 대조적일 것으로 짐작되는 인생의 두 갈림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알콜 중독의 아버지에게서 오랜 불행을 겪어야 했던 어머니를 지켜본 그녀에게, 안정되고 보장된 인생의 상징인 영규는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왔으나 이미 사랑의 감정은 장우를 향하고 있는 진진이었다.


치밀하리만치 밀당의 선수로도 보이는 그녀의 행동과 말투는 때로 얄밉게도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시대의 '사람 만나면 사람만 보지 않는' 계산적인 연애과정과는 다른 '고뇌'의 다른 표현이기에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폭풍은 커녕, 한 점의 바람조차 없는 심심한 바다와도 같은 인생을 산 이모와 가난하지만 불행을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했던 그녀 어머니의 인생과의 비교를.


때론 이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고 도통 어울리지 않는 남녀 한 쌍이 굳이 한 평생을 맹세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끌리게끔 태어난 것이 인간이란 존재요, 그런 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삶의 모순을,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형태를 빌려 구체적으로 보여준 이 소설은 차라리 인생지침서라고 해야 할만큼 무겁고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 p.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 십 년전 어려운 어른들 시절 얘길 듣다 보면 지금처럼 풍요한 세상에 태어난 게 다행이라 여겨지면서도, 정치적 이념대립과 민중의식이 들끓던 예전엔 있었고 지금은 없어진 뭔가가 그립기도 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취직과 스펙쌓기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대부분이라면 베이비붐 세대들의 그것들은 좀 더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와의 갈등이 많았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버킷리스트나 20-30대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주로 거론되는 것 중 여행과 독서가 빠지지 않는데 이번 책 이문열의 소설집 <젊은 날의 초상>을 읽고 나서 특히 느낀 바는 인생에 공부가 전부인 양 책 한권 제대로 보지 않고 교과과정에만 매달렸었던, 그래서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열정을 쏟아보지 못했던 나의 20대가 그토록 후회스러울 수 없는 것이다.


대학진학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될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 '나'의 경우처럼 우리 역시 그런 착각 속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현재 진행중인가?) 좀 더 넓은 의미의 지적탐구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담론보다는 당장에 먹고 살기 바쁜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버린 현실이 안타깝지만 가난과 술에 찌들어 살면서도 인생의 답을 찾고자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았던 영훈의 방황과 좌절이 또한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주인공 영훈은 때론 지적허세와 괜한 자존심에 호기도 부려보고 유복했던 연인과의 헤어짐과 친한 동무의 죽음에 깊은 상실감도 느끼지만 그것은 절망과 허무로부터 그를 더욱 뜻깊은 순례와도 같은 길(바다)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그의 젊은 날은 유적(流謫)의 연속이다. 강진 하구에서 서울로의 대학생활로 옮겨 가서도, <그 해 겨울>의 영락의 시간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기 직전까지도.



그래 이제 너는 까닭 없이 너를 몰아낸 그 허무와 절망의 실체를 파악했는가. 그렇게도 열렬하게 도달하고자 했던 이른 바 그 '결단'이란 것에 조금이라도 접근했는가. 혹 너는 너 자신의 비겁과 우유부단을 피상적인 자기학대로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직 네가 안주하고 있는 것은 회피나 유예에 불과하지 않은가. - p.199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며, 우리의 삶도 외재적인 대상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인하고 채워가야 할 어떤 것이었다. - p.235



수첩 속 빼곡이 새겨 놓았던 지난 날 그의 다짐과 포부는 소설 속 서른이 넘은 현재의 시점에서 회고적 서술기법으로 유의미하게 쓰여지는 반면, 지나치게 고상한 말투에 이해불가한 명언집 모음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보인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져도 20대란 각기 다른 모양새로 청춘의 번민과 고뇌로 가득찰 시기이기에 낯선 시대배경과 현학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밤늦도록 '나'와 그의 동무들이 단골 술집에서 벌였던 심각하고도 유쾌했던 모임의 광경도 이젠 철지난 소설과 영화로밖에 추억할 수 없고, 대중가사와 문학의 소재 역시 언젠가부터 '사랑'이라는 개념하나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이 시대에 남은 정신 역시 '치열함'이지만 그 대상이 입시와 경쟁으로 바뀌어버린 것에 아쉬움과 허무함이 함께 밀려온다.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 많아 배경지식 없이는 읽기 어려운 소설이지만 완전한 지식의 체득 후 읽는 것과 그게 아닌 것과는 또 다른 맛과 느낌이 있을 것이니 작가에 대한 편견과 지식의 두려움 없이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 - 마음을 다잡는 특별한 이야기들
서주희 지음 / 샘터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때 tv로 방영되어 시리즈 책으로 출간해 온 국민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TV 동화 행복한 세상>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집 책장 구석에도 10년째 자리하고 있는 이 책은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보는 힐링북 역할을 하곤 했는데 파스텔 색상으로 그려진 정감있는 삽화와 함께 우리 일상에서 이웃들이 겪은 감동적인 사연과 팍팍한 삶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짤막짤막한 구성으로 엮어진 그 책을 샘터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출간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분위기의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상쾌한 새 아침을 떠올리게 만드는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라는 에세이다.


 탐욕과 이기심, 성공을 향한 채찍질, 그리고 무한정보의 바다 속에서 진정성과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가는 지금, 다시금 이런 에세이류가 흐름을 탄 대세가 된 것 같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둥,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들은 이제 너무 식상하고 캐캐묵은 교훈같기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 본인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등 쉬운 일부터 시작해보라고 말한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고 대세에 휩쓸리는 군중이 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들과 람보르기니 사장과 같은 세계적인 사업가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과 수모 끝에 결실을 맺은 후 기부와 근검절약등 사회봉사에도 모범이 되고 있다는 얘기는 무작정 부자가 되려는 우리들에게 목표를 향한 올바른 동기와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듯 하다.


요 사이 습관이라는 말이 자기계발서류등의 책 제목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그 말인 즉슨, 좋은 습관 하나 둘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모여 좋은 삶과 인생의 일부가 돤다는 뜻일 것이다. 남의 약점을 찌르는 말투나, 버릇처럼 내뱉는 한숨과 냉소적 시선들이 잦아지고 벼락맞을 확률보다 희박한 복권의 한탕주의는 늘어가는 반면,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여 안될꺼야, 설마..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신마비의 몸으로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펴낸 엘르의 전 편집장 얘기는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감동실화다. 저자는 우리는 그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많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존재이며 기회를 잡을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면 우연은 어느 날 갑자기 필연처럼 다가온다고 말한다. 저니의 보컬 아넬 피네다의 인생역전이 재능과 노력, 행운이 따른 당연한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이런 힐링서적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지식 위주의 주입식 인문도서류를 주로 보는 편인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이런 책들을 백날 봐봐야 누굴 가르칠 것도 아니고 논문을 쓸 것도 아닌데 너무 빨아들이기식의 독서를 해치우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인생에 대한 지침서같은 이런 책이 가끔은 딱딱한 지식만을 담은 텍스트들보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붐비는 막차는 가끔 타는 편인데 첫차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는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그만큼 내가 아침을 잃어버린 생활을 해왔고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 또한 없어진 것 같아 반성도 된다.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로 주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