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수 십 년전 어려운 어른들 시절 얘길 듣다 보면 지금처럼 풍요한 세상에 태어난 게 다행이라 여겨지면서도, 정치적 이념대립과 민중의식이 들끓던 예전엔 있었고 지금은 없어진 뭔가가 그립기도 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취직과 스펙쌓기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대부분이라면 베이비붐 세대들의 그것들은 좀 더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와의 갈등이 많았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버킷리스트나 20-30대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주로 거론되는 것 중 여행과 독서가 빠지지 않는데 이번 책 이문열의 소설집 <젊은 날의 초상>을 읽고 나서 특히 느낀 바는 인생에 공부가 전부인 양 책 한권 제대로 보지 않고 교과과정에만 매달렸었던, 그래서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열정을 쏟아보지 못했던 나의 20대가 그토록 후회스러울 수 없는 것이다.


대학진학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될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 '나'의 경우처럼 우리 역시 그런 착각 속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지 않은가. (현재 진행중인가?) 좀 더 넓은 의미의 지적탐구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담론보다는 당장에 먹고 살기 바쁜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버린 현실이 안타깝지만 가난과 술에 찌들어 살면서도 인생의 답을 찾고자 허우적거림을 멈추지 않았던 영훈의 방황과 좌절이 또한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주인공 영훈은 때론 지적허세와 괜한 자존심에 호기도 부려보고 유복했던 연인과의 헤어짐과 친한 동무의 죽음에 깊은 상실감도 느끼지만 그것은 절망과 허무로부터 그를 더욱 뜻깊은 순례와도 같은 길(바다)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 그의 젊은 날은 유적(流謫)의 연속이다. 강진 하구에서 서울로의 대학생활로 옮겨 가서도, <그 해 겨울>의 영락의 시간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기 직전까지도.



그래 이제 너는 까닭 없이 너를 몰아낸 그 허무와 절망의 실체를 파악했는가. 그렇게도 열렬하게 도달하고자 했던 이른 바 그 '결단'이란 것에 조금이라도 접근했는가. 혹 너는 너 자신의 비겁과 우유부단을 피상적인 자기학대로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직 네가 안주하고 있는 것은 회피나 유예에 불과하지 않은가. - p.199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며, 우리의 삶도 외재적인 대상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인하고 채워가야 할 어떤 것이었다. - p.235



수첩 속 빼곡이 새겨 놓았던 지난 날 그의 다짐과 포부는 소설 속 서른이 넘은 현재의 시점에서 회고적 서술기법으로 유의미하게 쓰여지는 반면, 지나치게 고상한 말투에 이해불가한 명언집 모음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보인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져도 20대란 각기 다른 모양새로 청춘의 번민과 고뇌로 가득찰 시기이기에 낯선 시대배경과 현학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밤늦도록 '나'와 그의 동무들이 단골 술집에서 벌였던 심각하고도 유쾌했던 모임의 광경도 이젠 철지난 소설과 영화로밖에 추억할 수 없고, 대중가사와 문학의 소재 역시 언젠가부터 '사랑'이라는 개념하나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이 시대에 남은 정신 역시 '치열함'이지만 그 대상이 입시와 경쟁으로 바뀌어버린 것에 아쉬움과 허무함이 함께 밀려온다.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 많아 배경지식 없이는 읽기 어려운 소설이지만 완전한 지식의 체득 후 읽는 것과 그게 아닌 것과는 또 다른 맛과 느낌이 있을 것이니 작가에 대한 편견과 지식의 두려움 없이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