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직업 - 고통에 대한 숙고
알렉상드르 졸리앵 지음, 임희근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소수자로서의 체험이 우리가 지닌 조건을 넘어선 어떤 독특한 문을 열 수 있다. 존재 전체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 상태로 단련하기 위해 약자와 직면하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이 여정을 설명하는 근본적이고 무모한 직관이다. - p.20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이에게 운명이 부과하는 무게는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그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습관처럼 행하는 '옷 입기'. '볼일 보기'. '식사하기' . '대중교통 이용하기' 같은 소소한 일에서부터, 타인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하는 일까지 육체와 정신의 쉴새없는 전투로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맞이하고 또 마감합니다. 도전의 연속. 취업에 실패했다고 사랑에 상처받았다고 포기하는 정상인들의 그것과는 달리 포기가 곧 삶의 정지로 이어지고 마는, 이 사회의 소수자들. 이 책 <인간이라는 직업>은 선택받은 그들을 대표하여 장애인의 존재방식과 실존적 고뇌, 투쟁들을 절망이 아닌 기쁨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스위스의 작가 알렉상드르 졸리앵의 2002년 출간작입니다.


그는 태어나기 직전 탯줄에 목이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불행하게도 뇌성마비라는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의 어린시절은 또래 아이들과 자신이 '다름'을 인지하는 과정에서부터 숱한 시련의 연속이었는데요. 단어의 뜻을 익히고 셈을 하는 것보단 당장 생활 속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그에겐 살기 위한 급선무였지요. 성치 못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친구들과의 우정은 사지가 멀쩡한 친구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끈끈했음은 말할 것도 없겠죠. 17살의 어느 날, 그가 겪었던 한 책노인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그의 몸을 지배해왔던 고통에 대해 새로운 성찰과 자의식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태어나자마자 고통이나 통증과 만나는 사람은 일생에 도움이 되는 현실주의를 갖추고 실존을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인생이 어쩔 수 없이 고통과 함께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버린 그는, 남들보다 쉽게 낙담하지 않고 전투의 필연성을 잘 되새기면서, 잔혹한 맞수를 받아들이며 그걸 좀 더 수월하게 피해간다. - p.36~37


인격이 형성되는 독특한 출발점은 우리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이다. 즉 자신이 취약하며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고, 불확실한 땅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며, 왜 싸우는지, 왜 기쁘게 싸우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p.42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그 사람의 외관인 덕에 예쁘거나 잘나지 못한 사람은 인간관계를 쌓아가며 많은 애로사항을 느끼게 마련이죠. 흑인, 환자, 극빈층,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꼬리표는 본인이 어떠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기회조차 박탈해버리고 몇 가지 서류와 잠깐의 훑어봄으로써 한 존재를 일각에 판단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존재를 구별짓는 언어는 철저히 단순합니다. 신분증 뒷자리의 숫자 1과 2의 차이처럼 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무 자르듯 쉽게 나누어지는 게 아닐진대, 언어란 것은 미세한 존재들의 다름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역부족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육체만큼 '다름'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개인의 고유성을 부정하면서 인간을 규정하는 모든 축소는 본질과 우연을 혼동한다.(...) 청각장애인이나 다리를 저는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에티오피아인이나 언청이나 마찬가지고, 유대인이나 앉은뱅이나 마찬가지며, 맹인이나 다운증후군 환자나 마찬가지고, 이슬람교도나 노숙자나 마찬가지며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 p.50

 장애인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의 불편함이 아닌 정신적 수치와 고독, 일생을 겪어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타인의 편견에서 오는 상처입니다. 그리하여 정상인의 무리 속에 섞여들길 거부한 나머지 자신만의 공간에 둥지를 틀고서 세상과의 단절을 선포한 일부는, 마땅히 누려야 할 세속의 기쁨조차 함께 등지고 맙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은 혼자서는 존재가 불가능하며 타인이 있기에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도 가능해지며 수많은 이념과 가치의 분류도 말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들에게 '타인'​이란 살아가는 동안 무거운 짐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는 게 보통입니다.

주변인의 체험, 다름을 드러내는 자로 있어야 할 의무, 비정상으로 분류된 자로 살아야 할 의무, 이런 것은 복잡한 문제 제기를 축약한다. 일생 내내 그는 특수성을 받아들이려고 애써야 하며, 그 특수성을 하나의 장점으로 이용하려고 애써야 한다. - p.116 ~117


저자는 장애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그 독특함을 누리고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남다른 사색을 즐기는 것이 이 치열한 전투적 생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는 유일무이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단 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일반에게도 큰 깨우침을 얻게 하는 이 작은 책은 한 동안 베스트목록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두 마음 - 일 년, 열두 달, 365일의 느낌표
세상의 모든 명언.최재성 엮음 / 프롬북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나 명언집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요, 누구라도 살다 보면 이런 류의 힐링 서적에라도 마음을 의지하고플 때가 언제든 있게 마련이죠. 음악과 영화, 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속에서 만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는 희망, 용기, 사랑, 도전, 극복...이라는 밝은 미래와도 같은 상징임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대중가요나 미디어는 '남녀간의 사랑' 에 유독 그 스토리가 치우치고 있는 모습인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사나 스타에게는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았고 가난과 시련, 타인의 조롱과 비웃음이 종종 뒤따랐다는 사실이지요.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란 너무나 삭막해져버린, 지금 현 시대에 이 한 권의 책은 샘물과도 같습니다.


미래를 핑계로 몸 사리지 마세요. 우리에게 내일은 안 올 수도 있어요. 음악을 하는 제게 사람들은 물어요. '낭만적으로 사는 게 뭐죠?' 오늘이 내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 여러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세요. - p.51


언젠가 지난 날을 돌이키며 포스팅을 한 글이 문득 생각나는군요. 젊은 날 좀 더 열정적이고 무모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써내려간 그 글을 오늘 다시 보면서 그 땐 겨우 20대중반을 막 지나고 있었을 뿐인데 무에 그리 늦었다고 세상 다 산 것처럼 회한에 찌든 글을 썼던 건지 참 부끄럽기만 합니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남들과는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세상에 나온 이들이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보면 그에 비해 앞선 출발선상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제 자신이 별 것 아닌 이유로 꿈을 회피해 온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지요. 저의 나쁜 버릇은 지난 과거의 일을 애써 다른 길로 가정해서 상상해 보는 일인데요, 최근 보았던 대중매체에서도 타임슬립물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었었죠. 허나, 이런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 기획의도는 지극히 상업적일지 몰라도 그것을 시청하는 각 개인의 입장에선 좀 더 깊은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후회한다는 것은 지난 삶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정답이 아니었다고 분별하는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자리가 정확히 내 자리가 맞다. - p.76


비록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순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 엔딩을 만들 수 있다. - p.249 (칼 바드의 말 인용)


캐나다 출신의 테리 폭스는 어릴 적부터 탁월한 운동 신경을 발휘하며 또래 소년들에 비해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18살 때 골육종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고 한 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됩니다.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그는 세상 모든 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기 위해 정상인들도 힘들다는 마의 풀코스 42.195km를 매일같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끈기와 인내로 계속된 침묵의 땀방울은, 조롱과 비아냥으로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를 응원의 함성으로 돌려세웠고 지역 곳곳의 기부 릴레이로 점차 그 희망의 씨앗은 캐나다 전역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에 이릅니다. 누가 뭐래도 내 갈길을 묵묵히 가는 것, 포기를 모르는 7전8기의 성공 신화는 다름 아닌 인생의 장애를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역경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저의 그림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 p.98


'행복 강박증'이란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SNS와 같은 네트워크나 개인 홈피가 넘쳐나는 요즘 다들 하게 되는 착각이 자신 외엔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는 열등감이 아닐까 하는데요, 적어도 억소리 나는 재산과 지금 자신의 나이를 바꿀 마음이 없는 창창한 나이라면, 아직은 행복이란 지극히 본인의 선택 여부에 달린 의지적인 문제라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네요. 하지만 멋 모르던 어릴 때와는 달리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선택의 결과가 어떠할지 미리부터 걱정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계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갑니다. 단 10%의 생존율에 의지해 수술실로 들어가는 환자의 마음처럼, 절실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의 생은 지루함 그 자체의 연속이 아닐까요.


지금보다 절실한 나중이란 없다. 나중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 와있는 지금이 아닌 행여 안 올지도 모를 다음 기회를 얘기하기엔 삶은 그리 길지 않다. - p.175


저는 숱한 사랑 이야기보단 희망찬 내일을 얘기하고 용기를 주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내용의 가요를 즐겨 듣습니다. 스윗소로우의 <so cool>, 이승환의 <가족>,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등이 그것이지요. 이런 노래들은 반짝하고 뜨는 효과보다는 오랜 세월 대중의 꾸준한 관심을 받는 스테디 음반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힐링해 주고 다독여 주는 이와 같은 대중 가요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더불어 <열 두 마음>과 같은 책이 사람들에게 뜬구름잡는 얘기로만 읽혀지지 않는 세상이 되길, 누군가에겐 기적의 책이 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해당 서평은 반디펜벗 8월의 테마서평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배우고 익힘을 필요로 하는 기술과 다름은 또 무얼까요.

여기, 사랑받지 못해 사랑하는 법을 몰라, 소중한 사람을 놓쳐버린 안타까운 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유년기와 고향, 그리고 원죄로 남아 버린 아버지를 무한 부정하며 살아가는 고립된 존재 '박부길'. 소설 <생의 이면> 속 작가가 취재하며 탐구하는 액자 속의 또 다른 인물인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남과 다르고 자신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통속적인 관념이나 세인들의 가치관에도 쉬이 따라가지 못하는, 그야말로 독특한 인자죠. 그저 체계없는 독서에의 탐닉과 어딘가 있을 자신과 같은 부류를 찾아 끝없이 더듬이질을 멈추지 않는 그에게, 세상은 냉정하고 만만찮은 곳이기만 합니다. 자신과 맞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해, 자신과 다른 남들 편의 선 세상에 한없이 절망하고 고뇌하는 부길의 심정은 소설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불쌍한 어머니. 우리는 이 땅에 잘못 내려진 겁니다. 불시착한 겁니다. 이 곳은 나의 땅이 아니고, 당신의 땅도 아닙니다. - p.133


 아버지의 죽음 이후 친정으로 쫓겨나 재가한 어머니는 홀로 남겨진 그에게 죄스러운 자책감을 애써 평생 짊어지고 눈물로 살아갑니다. 그는 그렇게 부족한 모성결핍이라는 퍼즐을 맞추려는 듯, 숙명과 같은 연상에의 동지를 언제부턴가 자신의 동반자로 그리며 꿈꾸게 됩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치욕스런 밤, 고요한 예배당에서 그 운명적인 만남은 드디어 이루어지고 작가 이승우의 인물 내면묘사는 이 부분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그와 그녀는 뭇 연인들과는 다른 차원의 연애를 하는데요, 그것은 남녀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인간이 초월적 대상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기꺼이 헌신하는 모습 즉, 인간과 신의 수직적인 관계와도 같아 보입니다. 허나 소설 속에서 신격화(?)되고 있는 그녀는 그의 그런 태도가 무척이나 부담스럽습니다. 일찍이 사랑받은 적이 없고 그래서 사랑하는 법조차 몰랐던 그는 그녀를 자기만의 소유물로 간직하려 하고 심한 집착까지 보이며 그걸 사랑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잘못된 방법론 때문이었지요.


그녀는 그에게 하나의 여자일 수만은 없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의 그녀에 대한 묘사는 에밀 싱클레어의 에바 부인에 대한 숭배의 냄새가 난다. 에바 부인은 여성으로서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거의 신성으로서의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던가. (...) 박부길이 그녀에 대해 맺고 있는 관계가 그러하다. 성의 구별이 무색한 자리에 그녀는 있는 것이다. - p.218


 그렇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연인이기 이전에 자신과 같은 생각과 모습을 갖춘 동지이며 숭배의 대상, 곧 신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소설의 배경으로 줄곧 교회가 자주 비치는 것도 이러한 의미가 내포된 내용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는 골방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과거를 떠나, 그녀를 통해 빛을 보았고 새로운 세상을 맛보았다고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은 함께, 하지만 각자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 소설을 읽고 문득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남자는, 여자가 불면 날아갈까 어느 날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전전긍긍 불안해 하고, 여자는 잦은 불화와 헤어짐의 위기에도 다져진 신앙심과 모성본능을 발휘하여 그의 모든 걸 감싸안으려 하지만 자신만의 노력으로 역부족인 위태로운 이 사랑이 계속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지 심히 혼란스러워합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의미로 읽혀질 수 있겠는데요, 종교적인 의미로써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겠고, 단순히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하여 연애소설로도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유독 집중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고찰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때에는 그 배움이 필요한가. 소설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는가. (...) 인간은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습득하려고 한다. 그런데 왜 사랑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처럼 수월한 것은 없다거나 사랑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므로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따위의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랑에 대한​ 자신의 능력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을 유쾌한 감정 놀음이나 우연한 몰입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면, 사랑이야말로 그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 p.258


상대를 신격화하여 사랑하는 것,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뒤바뀔 만한 중대한 선택조차도 그 상대가 바라는 대로 아무렇지 않게 결정해버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더구나 주인공 박부길은 단순히 그녈 사랑해서가 아니라 완벽함의 이데아로 떠받듦으로써 자신과 그녀를 일체시켜버리는데요. 이런 사랑은 현실에서 지독한 사랑이고밖에 일컬어질 수 없을 듯 합니다. 결국 그는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골방으로 숨어 돌아가 글쓰기에 미친 듯 천착합니다. 그리고 그 결실의 산물이 <생의 이면>소설 속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유난히 감명깊고 여운이 긴 거장의 작품을 만날 때면 작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여태껏 보아왔던 책들 중 대단한 작품들의 작가들 다수가 이미 운명을 달리 해 버린 걸 너무 많이 목격해 와서 생긴 편견이라고나 할까요. 다행히 이승우 작가님은 지금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고 글꾼들을 많이 배출한 전남 장흥 출신이시라 반갑기도 했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지상의 노래>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해당 서평은 반디펜벗 8월의 자유서평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점 :
미출간


정말 이 책 왜 출간이 이리 늦죠?? 북펀드 참여하라고 한지가 언젠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과 악의 무의미함, 그 경계가 힘없이 무너지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장에서 이토록 담담하고 인간적이게 쓰여진 책이 있었던가. 책을 읽으며 상상을 해보았다. 먹을 음식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 없어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물에 입을 대고 삶을 갈구했던 이들을. 그리고 지금의 내 안락함을.


비극적 상황묘사나 역사의 참상을 증오하면서도 때때로 관련서적을 찾아보는 이유는 그것을 잊지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굳이 변명을 해본다. 저자 프리모 레비는 악명 높은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서 10개월여에 이른 감옥생활을 하며 이 책을 집필해 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독일군에게 포로로 끌려가 그 곳에서 유대인과 기타 정치범들을 고문하고 학대하는 현장에서 끝까지 인간성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사투가 눈물겹다. 배급된 빵 한조각과 죽 1리터, 닳아빠진 속옷이 그들을 구원하는 생명줄이며 때론 신경전의 원인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으려면 사회에서의 도덕성따윈 일치감치 버려야 한다. 전형적인 정신병자 혹은 범죄자의 교활한 수법이 하루를 견디고 생을 이어가는 지름길이다그 곳은 법과 질서가 존재치 않는 적자생존의 원시공간이며 약삭빠르고 먹잇감을 노리는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짐승의 눈빛을 가진자만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는 곳이었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잔인한 법칙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삶을 위한 투쟁이 원초적인 매커니즘으로 축소되어버리는 수용소에서, 이 불공평한 법칙은 효력을 발휘하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 p.134


수인들을 대하는 간수들이 그들을 대하는 눈빛을 설명한 대목에서 유대인을 경멸하다 못해 마치 생물학적으로 하등한 종을 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보복의 차원이 아니라 탐구와 호기심의 영역에서 그것을 탐구하고 분석해보고 싶어하는 저자의 관조섞인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 시선은 두 명의 인간 사이에 흐르는 시선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존재 사이에 놓인, 수족관의 유리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 같은 그 시선의 성질을 속속들이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제3제국의 그 거대한 광기의 본질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p.162


아우슈비츠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식량부족과 질병, 체력고갈 사망등은 물론이고 내일이라도 당장 선발대열에 휩쓸려 가스실로 끌려가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이유로 수인들은 먹을거리가 생기면 냅다 쑤셔넣기에 바빴다. 서로간에 경쟁과 모멸, 증오을 부추기며 수치심을 잃어가는 인간존엄의 바닥의 끝을 달리는 수용소에서 끝까지 체제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던 그의 동료 슈타인라우프의 메시지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큰 울림을 주었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가지 능력만은 남아있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 p.57 ~ 58


감옥 내에서도 '조직'이란 이름으로 비밀스런 행동이 이루어지는 마당에 왜 그들은 집단항거나 투쟁을 할 수 없었을까. 레비는 독자들의 한결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암묵적 경고로 가끔씩 눈앞에 펼쳐지는 공개처형은 일말의 탈옥 시도나 투쟁심을 일시에 잠재워버렸고 실체가 없는 듯한 나치즘의 공포세력은 그들의 무력감을 한층 더 돋구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련의 사회주의보다 몇 갑절 더 지독한 것이었다고. 이것이 인간인가. 고통을 가하는 인간도 그 고통에 무디어질대로 무뎌져 초점을 잃은 눈만 간직한 채로 짐승의 사체처럼 무력하게 놓인 수많은 인간에게서도 인간성은 불시에 자취를 감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독일인들이 만든 광적인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역설적이게도 균등한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 p.187


특이할 만한 점은 프리모 레비가 화학자로서 비상한 머리를 지녔었고 비교적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로서 생존자로 살아남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지녔던 건 사실이지만 글을 쓰는 직업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서술 방식이나 당시를 회고한 대목 하나 하나에 빨려들어갈 정도의 흡입력과 문장력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업성을 염두해 두고 출판한 다른 소설이나 유명작가의 글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피해자이며 생존자로써 처참했던 상황과 그 시대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무와 사명감이 그로 하여금 필사적인 진술과 같은 글력으로 발휘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 프리모 레비가 아니라 다른 누구였다고 해도 시대의 대변자가 되어 그의 역할을 대신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죽음에서의 사투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그는 자택에서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름없는 포로 '174517'이 아닌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자살이기에 더욱 우리에게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역사의 산증인으로, 증언문학의 한 획을 그은 이로써 그의 죽음과 남긴 저서들은 600만여명의 유대인의 혼을 기리며 이후로도 쭉 그 빛을 발할 것이다.



[해당 서평은 반디펜벗 7월의 테마서평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