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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껏 살면서 기적을 체험한 적이 없다. 기적이라고 느낄만한 일을 경험한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매일 기적을 체험하고 사는 이들이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다섯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에서는 매일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아니, 그곳에는 매일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바람을 담은 책이 있다. 삼성출판사에서 출간된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2009.11.01)》이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의 저자 조병국은 홀트 아동병원 원장이시다. 우선 솔직히 말하자면, 홀트 아동병원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른다. 홀트라는 이름에서 고아들을 위한 병원인가보다 짐작할 뿐이다. 조병국 원장은 작년 10월, 75세의 나이로 퇴임을 하셨다니 50년의 긴 세월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정정하고 열정적이어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병원에 계셨던 게 아니라, 후임자를 찾지 못해서였다는 머리말을 읽으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22개의 에피소드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남녀의 사랑 이야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코끝이 짠해지고 목줄대가 먹먹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읽을수록 깊게 빠져드는 마력을 지닌 이야기이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에서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던 아이가 가까스로 살아난 이야기,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의 이야기, 탯줄을 매단채로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 등 믿기 어려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내가 그(혹은 그녀)가 되지 않는 한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조병국 원장이 이 책을 쓴 이유는 버리는 사람들을 탓하기 위함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고아들, 버려진 아이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알리기 위함이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 중에서 마음 아프지 않은 아이가 없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힘겨운 사투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버린 아이들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하다는 부분이다. 아이들의 짧은 생이 서럽지 않게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얼굴이 예쁜 아기만 좋아하는 철없는 사람이었다. 아기는 모두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곳에 생후 한 달을 채 넘긴 아기가 들어왔다. 돌이 지나고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뱉고 젖니가 나기 시작하는 아기를 보면서, 그동안 어른들이 하셨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기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없이 아껴주어야 할 아이들이 고통 받고 상처받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마음만 무거워진다.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을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면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