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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2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아무것도 미리 간파하지 못한다. p23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이 소설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지, 또 다른 결말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디 피콜트의 전작 〈쌍둥이별(2008.11.17. 이레)〉에서도 그랬었다. 결말을 예상하고 안도하는 동시에 또 다른 결말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이 마른다.
뉴스를 통해 미국에서의 총기사고 소식을 간혹 전해 듣는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왔던 뉴스는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2007년)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 사건의 주인공인 조승희가 한국인이어서 더욱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작년 「조승희 프로파일」이란 부제가 달린 책 〈매드무비(2009.3.10. 꾸리에)〉를 읽었었다. 이 책을 읽고서 그동안 뉴스를 통해 들었던 단편적인 정보 - 완전히 외톨이였고 철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는 등 - 로 단순히 정신이상자의 행동으로 판단했던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가 무차별 공격으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매드무비〉 덕분에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그의 상황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조디 피콜트의 소설 《19분 1,2권(2009.12.21. 이레)》은 고등학교에서 발생했던 실제 총기 사건을 소재로 다루었다. 《19분》에서는 주인공 피터가 총을 난사한 19분을 보여주는 것보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17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뉴험프셔 주의 스털링은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가 깨지고 시끄러워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스털링 마을에는 폭풍우가 몰려온다. 범인은 17살 소년 피터 호튼으로 체육관 라커룸에서 체포된다. 라커룸에서 피터와 함께 발견된 조지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고 조지의 남자친구 매슈는 사망한 채 발견된다. 피터는 왜 총을 들고 학교로 들어갔을까.
피터는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첫날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피터에게는 유일한 친구 조지가 있을 뿐이다. 조지는 피터와 사이좋게 지낸다. 그와 친구여서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피터와 함께여서 조지 역시 친구가 없다. 피터는 운동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남학생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왕따를 당하지만, 조지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 그런데 조지마저 피터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무리로 들어가 버리면서, 피터는 완전히 고립된다.
《19분》은 400페이지가 넘는 1권과 350페이지에 달하는 2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던 2007년 3월 6일 당시 상황은 잠깐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대신 피터의 17년 전, 12년 전, 6년 전, 1년 전, 한 달 전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 시간 속에서 피터를 스털링 고등학교 여덟 명의 학생을 살해한 살인자가 아닌 관심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평범한 소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죄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하도록 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처럼 피터 호튼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든다.
《19분》은 살인자 피터 호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피터와 더불어 그의 단짝 친구인 조이까지 그들이 겪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학교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준다. 피터의 변호를 맡은 조던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 따돌림과 괴롭힘이 그를 살인자로 만든 원인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피터의 죄는 분명히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역시 희생자의 일부라고 말하려고 한다.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한 후 피터의 부모는 충격에 빠진다. 그들이 피터에게 어떤 실수를 했었는지 뒤돌아보면서 후회하고, 그들이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에 자책한다. 소설의 시작은 19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나열한다. 19분은 하루 24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고, 피터 호튼의 17년생에 비하면 극히 미약한 시간이다. 하지만 피터와 부모, 피터와 형 조이, 피터와 단짝 친구였던 조지, 피터와 그를 괴롭혔던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던 것처럼 19분이란 짧은 시간은 남겨진 자들을 평생 무겁게 짓누르게 되리라.
조디 피콜트는 피터가 바라보는 세상과 피터의 부모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으로 소설 《19분》을 채웠다. 어느 한 사람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피터를 판단하지 못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주면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는 등장인물의 시선이 자주 바뀌는 탓에 집중력을 떨어뜨리게도 만든다. 작가는 전작 〈쌍둥이별〉에서처럼 《19분》에서도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그 결말은 누구에게 잘잘못을 물어야하는지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 소설이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부디 현실에서는 이런 불행하고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기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