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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역사서를 읽다 보면 조선 후기 힘없이 기울어져간 우리의 역사가 너무도 안타까워 이른 죽음을 맞이한 왕(세자)이 조금 더 오래 생존했더라면 500년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의 마지막이 그렇게 허망하진 않았으리라는 추측을 해 보는 글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한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서양 문물과 지식을 접했던 소현세자가 보위에 올랐다면 조선의 역사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는 글을 접하곤 한다. 귀국 후 2달 만에 세상을 뜬 소현세자의 죽음이 너무나 갑작스러워 더욱 더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져 그러했을 터이고, 게다가 아버지인 인조가 아들을 독살했다는 소문부터 인조와 소현세자와의 관계, 당시 조선 정치세력의 배청관계 등 모든 주변 상황이 불리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아서이기도 할 터이다. 죽은 사람과 흘러간 과거는 말이 없기에 우리는 답답할 뿐이다.
《소현(2010.3.8. 자음과모음)》은 소현세자가 적의 나라에서 그리고 그의 나라에서 느꼈던 비애와 고독을 그렸다. 알고도 모른 척하면서 살아냈던 시간, 하고 싶은 말도 꿀꺽 삼켜야만 했던 치욕의 시간을 그렸다. 조선으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소현,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하는 소현, 다시 돌아올 때는 부강해져서 돌아오리라는 의지를 뼛속 깊이 새기는 소현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바로 그 곳 조선이 자신의 뜻과 마음을 몰라주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었기에 답답하고 애가 타는 심정을 보여준다. 소현은 청나라에서 명나라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조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광해군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세워진 자가 바로 그의 아비이기에 명분을 중요시하는 성리학에 등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과 조선 사람이 원하는 것은 같다고 여겼기에 환국하게 될 날만을 기다린다. 그가 져야했던 고된 짐을 느낄 수 있었고, 외로움과 고독을 느낄 수 있었기에 소현세자가 더욱 가여워졌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점은 소현세자가 바라보는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소현세자의 꿈과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기에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이 가슴에서 출렁였다.
저자는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의문점, 인조가 아들을 독살했는지의 여부는 관심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던 부분은 저자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밝힌 그곳에 있을 터,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슬픔과 고독이 그리고 조선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치게 깊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 보다 더 소현세자가 안쓰러워졌다. 이제는 고독하지 않기를,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7년이 흐른 지금, 임금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다시는 울지 않을 듯했다. 세자의 이름만 듣고도 눈이 붉어지던 심약한 임금은 이제 당신을 대신하여 눈시울을 적시는 늙은 대신들에게 노엽고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진다고 했다. 세자가 적의 땅에서 무엇을 하느냐. 그가 누구를 만나느냐.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일일이 말로 되어 나오지 않는 임금의 불안이 오히려 대신들을 두렵게 만든다고 했다. p26
세자는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 누구도 더는 세자를 세자로서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 적의 땅으로 끌려간 세자가 적의 나라에서 돌아오기까지의 세월, 그 긴 세월동안 세자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자는 다 알지 못했다. 다만 세자가 아는 것은 그것이 돌아오기 위해 가까워져가는 세월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가는 세월이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p151
임금이 그들에 의해 임금이 되었으니, 세자도 그들에 의해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 세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