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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10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신문에서 「남한산성 행궁, 10년 만에 복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것이 말이다. 그 기사는 ‘굴곡진 역사의 현장인 남한산성 행궁 복원사업이 10년 만에 끝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였다. 굴곡진 역사란 들여다볼 것도 없이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 안에서 청나라와 대치하던 중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아가 삼전도에서 머리를 숙였던 치욕의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기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 일제가 남한산성을 불 지른 후 오랫동안 잿더미로 방치되어 왔다는 것이었다.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라는 단어가 새삼 가슴에 와 콕 박혀 쓰라려왔다. 나는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항상 내 무지함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리더라. 가까운 시간에 남한산성을 한 번 둘러보러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신문을 덮었는데, 이번에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2007.4.14. 학고재)》으로 그곳에 미리 가볼 수 있게 되었다. 400년 가까운 세월을 가볍게 넘어, 나는 1636년 병자년 겨울 남한산성 서장대 위에 올라갔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었다.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남한산성 안에서 삶과 죽음의 길을 놓고 말과 말이 싸우고 다투었던 고통스런 기록을 담았다. 소설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다. 격정적이거나 불안한 기색은 없다.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고립의 마지막이 어떤 모양새가 될지를 예감하는 데서부터 오는 무력함이 이유임을 느낄 수 있었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갑갑했다. 글 읽는 자들이 성 안에 갇혀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싸우기를 주장하는 쪽과 화해를 주장하는 쪽 간의 불필요한 다툼뿐이었다는 건 소설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한심한 행태가 아님을 알기에 안타까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올라오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쏟아내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견디고 버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정녕 없었던 것인지. 급기야 최명길이 역적이 되길 각오하고 칸에게 보낼 국서를 쓸 때, 나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그 때,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성에 갇힌 후 제일 먼저 말들이 죽어 나갔다. 질기게 숨 쉬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죽어가는 말들을 보면서 임금을 모시고 성 안으로 들어온 자들의 운명도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만 같았다. 성 안에는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을 놓고 고뇌하는 자와 마음 속 깊은 곳에 진심은 숨겨둔 채 앞뒤를 재고 망설이는 자가 함께 있었으니 그들의 비극은 시작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임금이 성을 떠나야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배고픈 백성들의 처지와 성 안에서 살 방법을 찾아야만 살아서도 사는 게 되는 임금, 글 읽는 자들의 처지가 너무나도 달라서 가엽고 불쌍했다. 슬프고 쓸쓸한 역사의 중심, 남한산성에 임금이 있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1636년 겨울이고, 공간적 배경은 남한산성이다.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무고한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소설은 임금이 있는 고립된 성만을 보여주기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지도 않고 적의 공격을 받아 수세에 몰리는 긴박한 순간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47일 간의 지리멸렬하고 지겨웠던 견딤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역사는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서 이어 내려온 것일까. 외롭고 고단했던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었다.
나는 김훈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 유명한 김훈 작가의 책이 처음이라니, 놀랄 분도 계실게다. 어째서 이제야 처음이냐에 대한 대답은 여기서 하지 않겠다. 다만 처음 느낌이 괜찮았다는 정도에서 멈추련다. 남한산성에서 지치고 피곤했을 임금이 떠오르고, 성 안에서 굶어간 백성들의 생활고가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무겁고 몸이 천근만근이다. 4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가볍게 올라갔던 남한산성의 서장대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