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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ㅣ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2010.8.23. 시공사)》은 매년 초에 나 홀로 작성하는 「꼭! 읽어야 할 책!」목록에 몇 년 동안 빠지지 않고 등장한 책이다. 올해는 꼭 읽어야지! 다짐만 여러 차례 해 오다 드디어 이번에 읽게 되었다.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1948년 급류에 스스로 몸을 던져 3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작가의 불행한 이력이 궁금증을 자극하기도 했고, 《인간실격》이 작가의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정도로 작가를 고통에 빠지게 만든 원인은 무엇인지를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작품을 읽고 반드시 이해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인간실격》이라고 붙여진 책 제목이 내포하는 의미였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자격’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어 세상으로 나온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명명되는 인간에게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격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자격을 잃었다는 의미의 《인간실격》에서 인간과 실격은 함께 사용할 수 없는 단어인 것이다. 그런데도 저자가 《인간실격》으로 제목을 붙였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시공사에서 <세계문학의숲>이란 타이틀로 다섯 번째로 출간된 이 책은 『인간실격』을 표제작으로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인간실격』을 비롯해서 여섯 편의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가 15년 동안 작가로 활동했던 시기인 1933년부터 1948년까지의 작품 경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실격』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편의 소설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고 담백했다. 『인간실격』이 작가의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드러운 작품보다 차가운 작품이 대표작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작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p20)’라고 말한다. 그렇게 된 원인을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도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 같은 난해한 인간(p27)’이 두려워서 그들과 섞이지 못한 성격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두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비합법의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이윽고 죽음에 이르는(p51)’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조는 고향을 떠나 도쿄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술, 담배, 매춘부, 전당포, 좌익사상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탐닉하면서 안식을 찾는다. 그러던 중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순결을 지닌 요시코와 결혼을 하고, 자신도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겠다는 달콤한 생각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간다. 그런데 장사꾼에서 요시코가 강간당하면서 큰 충격을 받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한 뒤 정신병원에 갇히면서 스스로를 인간실격자라고 칭한다.
『인간실격』은 작가를 배제하고 오로지 작품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요조가 인간을 두려워하는 성격이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쁜 짓만 골라했다는 건 주인공의 행태를 설명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를 알고 난 뒤 작품을 읽으면 완전히 다른 소설로 읽히게 된다. 문학평론가 오쿠노 다케오는 ‘쓰가루에서 태어나 성장했다는 것, 생가가 대지주였다는 것, 여섯째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이 세 가지 점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와 문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p238)’고 말할 만큼 『인간실격』은 작가의 경험과 감정을 모조리 토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의 생애가 불안과 공포로 가득했듯이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또한 인간사회의 삶에서 소외되어 인간을 믿지 못하고 인간에 대해 깊은 공포감을 품고 있지만,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싶고 인간을 신뢰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던 요조처럼 다자이 역시 그러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스스로를 인간실격자라고 칭할 수밖에 없었던 요조와 다자이가 애처롭다.
문학평론가 오쿠노 다케오는 ‘다자이에 대해서는 전면 긍정 혹은 전면 부정밖에 허락되어 있지 않다(p249)’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서야할까. 선택 가능한 길이 두 갈래라면 나는 전면 부정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