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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읽을 책을 선택할 때 대부분 작가의 이름보다 작품에 담겨진 내용을 더 유심히 본다. 흥미로운 내용이나 관심 있는 내용을 다룬 작품을 선택해서 읽다보니 가끔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었을 당시 읽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하지만 몇몇 작가는 새로운 작품의 출간소식이 언제 들려오나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린다. 그들의 책은 내용을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읽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내가 무조건 좋아하는 작가에 포함되는데 일본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내 취향을 볼 때 참 신기한 부분이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으로 유명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플래티나 데이터(2011.1.25. 서울문화사)》는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플래티나 데이터’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플래티나 데이터’가 살인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모두 해결될 의문이지만 급한 성격 탓에 조바심이 인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시부야 변두리에 있는 러브호텔의 한 방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 살해당한 채 쓰러져있는 현장을 수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과 음모가 발견된다. 아사마 반장은 이것을 특수해석연구소로 옮기는 임무를 맡게 된다. 아사마 반장은 대체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지만 가구라 주임으로부터 DNA를 해석한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리고 이틀 후 회의에서 놀라운 결과를 듣게 된다.
범죄 예방, 범죄 방지를 목적으로 DNA를 이용한 범죄 수사를 하는 특수해석연구소의 ‘DNA 수사 시스템’ 법안이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통과된다. DNA 수사 시스템 덕분에 검거율도 향상되었다. 그런데 DNA 수사 시스템에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특수해석연구소 측은 DNA 수사 시스템은 완벽하다고 자부하면서 데이터가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기에 전국적으로 DNA 등록에 박차를 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DNA 수사 시스템 개발자가 살해당하고 미국에서 DNA 수사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건너온 리사까지 살해당한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세상이건 신분은 존재해.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있을 수 없어. p493
최근 저축은행 사건이 터지면서 참으로 분통터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축은행을 이용하는 최우수 고객들은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듣고 거액의 돈을 무사히 인출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한푼 두푼 모아 목돈을 마련한 서민들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는 현재 돈이 권력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양반제도가 우리 땅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지만 엄연히 신분은 존재하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소설 《플래티나 데이터》는 역시 탁월했다.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과 살인 사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점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 사회의 비틀어진 자화상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언제나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린 적이 지금까지 없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으로 놀래 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