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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나는 내 삶이 퍽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인자하신 부모님과 귀엽고 듬직한 동생이 곁에 있어 행복하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계속 더 좋아만 지는 책으로 둘러싸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맞는 몇몇 지인들과의 만남도 즐겁고 회사 생활도 만족스럽다. 크고 비싼 차를 타지도 않고 명품 옷을 걸치지도 않지만, 이 정도면 행복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책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 타인의 삶을 훔쳐볼 기회가 있다. 나는 누리지 못한 시간과 경험을 하면서 세계를 누비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타인을 볼 때면 내 삶은 그에 비해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 어깨에 짊어진 듯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타인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에 저절로 쯧쯧 혀를 차게 된다. 평범한 일상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가장 평범한 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느낄 때도 있듯이,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의 가치가 하늘 높이 치솟을 때도 있고 지하로 하염없이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잔잔한 일상에 큰 불평불만은 없다.
《두근두근 내 인생(2011.6.20. 창비)》은 가끔은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나의 평범한 일상을 부러워할, 열일곱 살 사내아이 한아름이 주인공이다. 세 살 부터 아프기 시작한 아름이의 병명은 희귀병인 조로증. 이 소설은 응애 울음을 터트리며 첫 숨을 내쉬기 시작하면서 엄마 젖을 빨고 두 발로 걷고,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말문을 트고 똥오줌을 가릴 수 있게 되고 유치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게 되는 등 누구에게나 허락된 그 평범함을 누리지 못한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평범함을 누리지 못하는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열일곱 살에 특별한 아이의 부모가 된 어느 젊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근두근’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몹시 놀라거나 불안하여 자꾸 가슴이 뛰는 모양’이라고 적혀있다. ‘두근두근’은 병 때문에 유독 약해진 아름이의 심장 뛰는 모양새를 나타낼 수도 있겠지만,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경험하는 첫사랑으로 설레는 시간을 보낸 아름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겠다. 아름이가 그토록 원하던 평범함은 바로 이 단어 ‘두근두근’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애란 소설가의 작품은 최근 읽은 단편이 전부이고 그 작품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터라 그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도 며칠을 계속 읽어야 하나 읽지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더랬다. 프롤로그에서 밝히는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p7)’라는 문장도 이상하게 마뜩잖았다. 선뜻 읽고 싶다는 호기심이 동하지 않았던 게 이유라면 이유랄까. 하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을 알고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지금 나는 처음 이 책을 두고 망설였던 마음은 모조리 잊었다. 김애란 소설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김애란 소설가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몸을 가볍게 만든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두근거리는 일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에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두근두근’ 그 자체이길, 조심스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