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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간혹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곤 합니다.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인데요. 별안간 느닷없이 물어올 때를 대비해서 소설, 인문, 역사 등 분야별로 누구나 읽으면 좋을 책을 목록으로 작성해 놓곤 합니다. 제 추천으로 읽은 책이 정말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일 년에 150권 읽기가 목표입니다. 대개 150권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머릿속은 텅 빈 듯 어느 책을 읽었고 어떤 내용을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는지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래서 읽은 책에 번호를 매겨서 목록을 작성하고 떠오르는 단상들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가끔은 질보다 양이 우선시되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독서법 때문에 고민되기도 합니다. 읽을 때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소설보다는 인문, 사회 분야의 책이나 곱절의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인문고전을 읽는 게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붙잡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육체는 슬프다. 아아, 나는 만 권의 책을 읽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나는 과연 죽기 전 만 권의 책읽기를 달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 『책에 미친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선비가 있습니다. 일생을 오직 책을 대하는 일에 전념했기에 평생 읽은 책이 2만 권이 넘고, 스스로 베껴둔 책만 해도 수백 권에 이른다(p22)고 합니다. 닮고 싶고 앞으로 내가 닮아가야 할 인물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와 꽂힙니다. 그는 바로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입니다.
《책에 미친 바보(2011.7.1. 미다스북스)》는 책 한 권만 있으면 행복했던, 청렴하고 맑은 조선의 선비 이덕무의 산문집입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자신을 두고 사람들이 ‘책에 미친 바보’라 불렀지만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관심은 뒤로한 채 단지 책상 앞에서 책장만 넘기는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군자와 선비의 도리를 지키면서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평생 학문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이덕무의 글을 통해 그의 독서법과 문학관과 학문적 성격을 살필 수 있으며, 그의 편지글과 에세이에서는 이덕무의 소박하지만 진중한 개인적인 감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책에 미친 바보》를 읽으면서 이덕무의 깨끗하고 반듯한 성품에 반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넘치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마음이 움직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덕무가 이야기하는 독서법도 배우고 익혀야할 것들이기에 머릿속에만 쌓아두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