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 - 늘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꿈꿨던 17년 파리지앵의 삶의 풍경
이화열 지음 / 에디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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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생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방학이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이모할머니 댁에서 식물채집을 하고 서울 이모 집에서는 서울구경을 했더랬다.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본 건 아마도 그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가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들로 한쪽 벽면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파리 에펠탑을 보았다. 집채만 한 배낭을 지고 있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지만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활짝 미소 짓고 있는 모습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보았던 건 바로 청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청춘의 시간 말이다.


사진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오빠의 모습과 겹쳐서 일까. 내게 에펠탑은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에는 노트르담 대성당, 샹젤리제 거리,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등등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명소가 있었지만 내게는 단연 에펠탑이 최고였다. 그래서 에펠탑을 지척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파리지앵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도 무척 궁금했다.


《그 남자 그 여자의 파리(2011.6.15. 에디터)》는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 아예 정착하게 된 저자 이화열의 17년의 흔적이 담긴 에세이다. 이 책은 저자를 포함해서 파리에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기를 잘못 맞춰 따버린 포도주에 빗대어 사람들 간의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언어적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심리적 소통은 벽이 없다는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프랑스에는 우리나라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엄청나게 많은 설탕 종류가 있고, 이혼율은 50퍼센트가 넘고, 자동차 창문을 부수고 아파트 문을 부수는 실력이 형편없는 도둑이 존재하는 나라다. 또한 낡은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기도 하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바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시종일관 여유로운 분위기만을 발산하는 파리지앵의 모습에서 삶의 목적과 동기를 무엇으로부터 찾아야하는지를 새삼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에펠탑을 특별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파리지앵도 특별한 인생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책 속의 파리지앵의 평범한 모습에 살짝 실망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선망하는 파리지앵도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행복은 특별한 게 없다는 공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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