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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올해 초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와 같은 인물들을 뇌과학 분야로 이해해 보려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범죄와 뇌손상의 관련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특정 부위의 뇌손상이 범죄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뇌과학의 주요 연구 결과를 제시하였습니다. 뇌손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충동적인 감정과 욕구를 제어하기 힘들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도 서슴없이 실행에 옮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책도 고민을 갖고 있었습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뇌손상을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하는 윤리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뇌손상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테러리스트 등의 잔인한 행동은 이성과 지성을 총동원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소설 《비스트(2011.8.4. 검은숲)》에서도 여자 아이 둘을 잔인하게 성폭행하고 죽인 죄로 복역하다가 탈옥한 상습아동성폭행범 벤트 룬드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 이유는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차원이니까요. 그 인간도 자신이 왜 죽은 여자아이들의 발을 핥는지 모를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소지품들을 각각 2센티미터 간격으로 늘어놓는지도 모를 겁니다.(p147)”
소설 《비스트》의 시작은 충격적입니다.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하는 장면이 너무 사실적입니다. 또한 인간이 같은 인간을 상대로 내뿜는 잔혹성과 잔인함이 지나치게 극단적입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 더 자세하게는 어린 여자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인 연쇄 성폭행 살인범 벤트 룬드가 탈옥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탈옥 사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벤트 룬드가 어느 어린이집 앞에서 목격되었고,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행방불명(p199)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는 이혼남 프레드리크가 홀로 애지중지 키우는 마리입니다. 프레드리크는 유치원에서 사라진 마리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지만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자 경찰도 잡지 못하는 벤트 룬드를 직접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비스트》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딸을 살해한 연쇄 성폭행 살인범에게 총을 겨누는 것으로 복수하는 아버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프레드리크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공방이 펼쳐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슬쩍 보니 남은 페이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무척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결말은 어떤 단어로 감정을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게 만듭니다.
소설 《비스트》에서는 프레드리크가 벤트 룬트를 죽인 것으로 딸아이의 복수를 한 사건을 놓고 찬반여론으로 나뉘면서 소아성애와 관련된 범죄 혐의자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가해자들은 모두 정당방위를 주장합니다. ‘정의’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또한 어린 시절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한 릴마센이 어떤 성인이 되었는지를 보는 것도 아동성폭행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두려움과 고통에 떨었을 어린 생명과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단순히 가엽다, 슬프다, 안타깝다 등의 단어로 표현하는 게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프레드리크와 앙네스 부부가 마리를 잃은 것과 같은 사건은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스트》는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이 개운하지 않은 기분은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