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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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작품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글 혹은 영상으로 이미 보고 들은 역사라서 낯설지는 않지만 내가 직접 체험한 역사가 아니기에 간절한 감정은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로 그려진 역사와 마주치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책 속에서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과 주인공이 겪는 상황이 마치 내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지금의 풍요로움을 우리 민족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만들어냈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건전하고 정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우리는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와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이 느낌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70년대의 서울 거리를 걸은 것과 같다고 할까.  아마도 누군가는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에서 너무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찾으려 한다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정래의 작품은 우리 민족의 삶과 한을 고스란히 되살려 낸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비탈진 음지(2011.7.27. 해냄)》는 서울에서 칼갈이 장사를 하는 복천 영감이 주인공이다.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물 한잔 얻어 마시려고 들어간 구멍가게에서 공짜 물은 줄 수 없다는 계집애의 모진 말에서 서울 냄새를 맡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는 복천 영감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마누라의 병 수발 때문에 논, 집 모두 팔아버리고 나니 죽을 때까지 머슴살이를 해도 갚을 수 없는 빚만 남았다.  마누라는 죽고 큰아들 영기는 돈 벌러 서울로 떠난 뒤 소식이 끊긴지 오래, 복천 영감은 건넛마을 홍 씨네 소를 빌려 장에 나가 판돈을 가지고 고향 마을을 도망 나온다.  서울로 올라 온 뒤 돈벌이 할 일거리를 찾으러 다니면서 복천 영감은 두려움을 느낀다.  집 짓는 곳에서 등짐 하는 사람들도, 시장에서 지게로 짐 나르는 사람들도 모두 패거리로 뭉쳐 자신들의 구역에 복천 영감이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력에 복천 영감은 난생 처음 등골이 오싹해진다.  복천 영감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렵사리 다시 시작한 땅콩 장사에서 리어카를 통째로 도둑맞은 것이다.  훔친 소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시작했던 장사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복천 영감은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 뒤 시작한 칼갈이 장사로 세 식구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매정하고도 쌀쌀맞은 서울 사람들에게 당하기 일쑤다.  다른 날보다 배 가까운 수입을 올린 재수 좋은 어느 날 복권을 사고 셈을 치르다가 돈을 빼앗긴 복천 영감은 도둑을 뒤쫓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비탈진 음지》는 다섯 개의 소제목으로 나뉜다.  ‘서울 냄새’로 시작해서 ‘그래도 내일’로 끝나는 소설은 복천 영감의 고단하고도 쓸쓸한 삶을 오롯이 보여준다.  또한 복천 영감의 삶 속에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상경할 수밖에 없었던 서민의 서글픈 삶이 투영되었다.  모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니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 할 수 없는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생각할수록 서럽고 원통한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은 죄진 일이 없이 어쩌면 그리도 가혹한 벌을 받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닌데도 가난한 사람은 그리도 모진 설움과 학대를 벌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p247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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