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ㅣ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연민(2008.12.)>을 읽었을 때도 지금과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정확한 감정을 얘기할 순 없지만, 뭐랄까,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은 안타깝지만 그 감정에 대해서 충고하거나 혹은 조언할 자신은 없는 답답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허무한 것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가슴이 텅 빈 느낌이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2011.11.1. 이숲에올빼미)》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 클라인-라이플링 우체국에서 여직원으로 근무하는 크리스티네 호프레너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활기, 열정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피곤한 표정의 크리스티네에게 한 통의 전보가 도착한다. 전보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모가 알프스 최고급 휴양지에서 2주간의 휴가를 함께 보내자고 크리스티네를 초청한 것. 병이 깊은 크리스티네의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지만, 기쁜 내색은커녕 불안한 빛이 역력한 딸의 표정을 보면서 이번 기회가 시골 마을에서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는 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일깨우며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휴가를 떠나도록 부추긴다.
여자의 몸은 새들이 떠나간 숲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스물여덟 살의 여자는 행복하다는 것이 어떤 상태를 뜻하는 것인지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은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2
크리스티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다. 그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명백히 드러난 차이를 의식한 순간 자기가 신고 있는 신발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아무도 자신의 우산을 보지 못했으면 하고 바랐고, 자신의 낡은 등나무 가방을 숨기고만 싶었다. 촌스럽고 괴상한 차림새로 호텔에 들어서는 조카딸의 모습에서 클레르 반 볼렌 부인은 과거 자신을 떠올리고 연민을 느낀다. 반 볼렌 부인은 조카딸인 크리스티네에게 옷과 속옷, 화장품을 선물하고 미용실로 데려가 머리 모양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크리스티네가 변신을 시작한 것. 크리스티네는 거울에 비친 날씬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숨이 멎는다. 이후 아흐레 동안 크리스티네는 팰리스 호텔에서 가장 인기 있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대접받는다.
드디어 여자는 변신에 도취하기 시작했다. p99
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크리스티네에게 불행이 찾아온 건 순식간이었다. 호텔에 크리스티네의 출신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반 볼렌 부인은 조카딸 때문에 자신의 과거가 들어날까 두려워 약속한 날짜보다 앞당겨 휴가를 끝내버린다.
아흐레 동안 ‘크리스티아네 폰 볼렌’으로 살았던 여자는 ‘크리스티네 호프레너’로 돌아왔을 때 충격에 휩싸인다. 혐오스러운 원피스와 블라우스, 추레한 레인코트를 걸치고 낡은 우산을 든 여자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호텔을 나온다. 그리고 클라인-라이플링으로 돌아온 여자는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절망에 빠져 기회만 생기면 분노를 터뜨리는 여자로.
스위스 호텔에 있을 때에는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고, 여기저기서 그녀를 원하는 남자들이 널려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화를 내거나 미미한 공적 권위라도 휘두르지 않고서는 주목받을 수 없었다. p278
빛나지도 돋보이지도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내린 크리스티네의 결정은 충격적이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던 여자는 스위스에서 보낸 구일 동안의 기억만이 행복이라고 굳게 믿게 되고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만 동경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1차 대전으로 황폐하고 피폐해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지만 크리스티네의 방황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안타까운 것일 게다. 그들의 방황은 무엇으로 끝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