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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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이란 제목으로 크게 다섯 파트로 나누어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역사 속에서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힌 인물들로 현대에 와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책을 받아 들고서, 저자는 가슴에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들을 어떤 모습으로 되살렸을지 궁금해서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패자와 승자를 나누는 경계는 무엇인가.  질문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역사 속에 패자로 남느냐 또는 승자로 남느냐는 행위의 정당성, 논리의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승리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누가 되었건 싸움에서 이겨 살아남은 자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자신과 반대편에 있던 자들의 기록을 왜곡시키거나 아예 삭제해 버려 후대에 어떠한 평가도 받을 수 없도록 해버릴 수도 있다.  역사야 말로 정말 냉정하고 냉혹한 세계가 아닌가.

 

이 책에 소개된 패배자들은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이라 기록이 남아있지 않거나 혹은 왜곡된 기록만이 남아있어서 자료가 부족해서인지, 중간 중간에 저자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적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한 부분은 역사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260페이지 가량의 분량에 많은 인물을 담으려고 하다 보니 한 인물에게 할애할 수 있는 지면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듯 보인다.  보다 깊숙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약간 실망스러울 듯하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면서 가볍지 않으면서도 무겁지 않은 역사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 책은 적당할 듯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을 패배자라고 볼 수 있을까.  저자 역시 제목에서 '위대한' 패배자라고 칭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패자가 없다면 승자도 존재할 수 없기에 역사 속에서도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라 불리는 이들의 위치도 새로이 보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인물들은 패배자가 아니다.  비록 그들이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나 신념에 따라 행동하였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패배자라 불리지만 부끄럽지 않은 패배자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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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지 못한 비즈니스 명저 8
시부이 마호 지음, 황혜숙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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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읽기로 결정한 이유는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여덟 권의 책 중 세 권 즉, <The Goal>, <블루오션 전략>, <부의 미래>를 마지막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덮어버렸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읽기를 마치지 못한 책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듯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책을 받아 들고선 책꽂이로 가서 옛날에 꽂아두었던 책을 찾아보았더니 그마저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키우던 강아지가 집을 나가도 계속 기다려지는 게 사람 마음이지 않은가.  누구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집나간 아이를 찾아와야 할지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답답해져 온다.  이 책을 만난 후 본의 아니게 마음이 무거워져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조차 천근만근 무겁게 여겨졌다.

 

경영, 경제 관련 서적들을 읽기 힘든 경우는 엄청난 두께에 주눅이 들어서 일수도 있고,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진도까지 쑥쑥 빠지지 않을 때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즈니스 명저라 불리는 8권의 책을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한 분은 이 한 권으로 마스터할 수 있다.  저자는 8권의 책에서 독자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내용만을 뽑아서 이 한 권에 담고 있다.  요약본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책의 내용만을 요약해 놓은 단순한 요약본이라고 말하면 이 책의 가치를 지나치게 떨어뜨려 보는 것 같아 적당한 단어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 책의 저자 '시부이 마호'는 각 권의 특징을 자신의 관점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독자에게 전달한다.  비즈니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선뜻 펼쳐지지가 않은 분들에게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총 8권의 책 <NEXT SOCIETY>,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블루오션 전략>, <The Goal>, <행동경제학>, <웹 진화론>,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부의 미래>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보았기에 원작의 깊이 있는 내용을 잘 전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8권의 책을 각각으로 보았을 때보다 연결 지어 보았을 때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듯, 이 책의 가치는 8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어 독자가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볼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찾으면 될 듯하다.  예전에 <부의 미래>를 읽으면서 지겹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떠오른 걸 보면 저자의 말은 일리 있는 말인 듯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8권의 책을 읽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아깝지 않다.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비즈니스 명저 8권은 이 책을 통한다면 한결 쉽고 덜 지루하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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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 한 권으로 끝내는 서양철학 이야기
강성률 지음, 반석 그림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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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각하면 언제나 목마름을 느끼는 분야 중 하나가 철학이다.  잘 알기를 원하고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원하는 만큼 아니 내가 만족할 만큼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지식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노력한 만큼 발전이 없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는 내 자신을 알기에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항상 느끼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느껴오던 목마름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독자를 청소년이라고 한정지어 놓았다.  그래서 일까.  철학을 생각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지루하고 이해하기 힘든 학문이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철학 사상이 변천하여 온 역사를 단순히 나열하는 방법을 벗어나 철학의 흐름을 설명하는 중간 중간에 철학자들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철학은 인간의 삶 그리고 정신 등과 관련이 깊은 학문이니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철학자들이 실제 삶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함께 알려주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쳐다보지 못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 우러러 봐야만 했던 철학자들 역시 나와 다름없는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표면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고 정하여져 있다고 해서 꼭 청소년만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청소년이 아니지만 이 책을 읽은 시간이 유익했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학업을 목적으로 하는 청소년을 비롯하여 고대 철학부터 현대 철학까지의 흐름을 정리하고 싶은 성인에게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집중해서 읽다가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 제공함으로써 지루하게 느낄 겨를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고 저자의 노력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 역시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을 수가 있었다.  철학과 친해지고 싶은 분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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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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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세이를 좋아해 즐겨 읽는다.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묻어있지 않은 작품은 없겠으나 특히 에세이가 다른 영역의 작품보다 어떤 방패막이로도 가려지지 않은 투명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일까, 어릴 때 동생 일기장을 훔쳐볼 때처럼 긴장하면서 읽게 된다.  다른 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기에 - 행운이라고 하면 병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자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사하라 이야기>는 저자 싼마오가 남편 호세와 함께 사막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에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는데 간혹 호기심 많은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우왕좌왕 정신없는 모습, 따뜻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껏 살아온 환경과는 다른, 생소한 문화 속에서 적응하여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녀는 그 모든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 호세가 항상 곁에 있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이야기는 유쾌하고 발랄하게 시작한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보니, 내가 처음 읽었던 부분은 사막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외로운 사하라 사막에서 시작하는 초보 주부가 온갖 불편함과 어려움을 헤치고 남편 호세와 사막의 생활을 즐기며 알콩달콩 생활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독특한 사하라 사람들과 당당하게 이웃이란 관계를 맺게 되기까지, 한 마디로 간 큰 주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운 시간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독특한, 아니 어이없게도 막무가내인 사하라 이웃들과의 마찰이 짜증날 법도 한데 재미있는 그림을 보는 듯 웃음이 터지도록 표현해 놓은 싼마오는 분명 인생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티격태격하고 옥신각신하면서 정 들고, 그러면서 힘들 때 위로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이로 발전해 가는 것, 그게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닐까.  싼마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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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집 1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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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껴 울었다.  꿈을 찾아 떠난 길목에서 꿈은 찾을 수 없고 고통과 혼란만이 나를 기다린다.  아니, 내게 꿈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서글프고 허무하다.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울었다. 

 

지금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기 위해 살고 있는 건지, 죽기 위해 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내 인생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비어있는 삶의 중심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아니 화가 난다.  치열하게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그 어떤 것도 버리려고 하지 않는 나는, 지금의 나를 잃어버릴지언정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그리움을 찾아 떠날 용기가 없다.  내가 내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를 다시 살릴 용기가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은 처절할 정도로 슬프고 괴롭다.  그들의 여로가 힘들어질수록 나 역시 힘들어졌고, 그들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나 역시 죽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다.  너무나 힘들어서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게 내가 찾길 원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챈 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가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너무 빨리 가지 말라고,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을 추스를 여유를 달라고 말이다.

 

<침묵의 집>은 실존의 위기감을 느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중 어떤 이는 일탈의 긴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  그 여행이 자멸로 가는 길임을 이미 알지만 두려워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다.  이와 반대로 다른 이는 젊음 뒤에 바짝 다가와 있는 죽음을 알아보지만 죽음의 그늘을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일상의 탐욕을 쫓는 관습적 삶을 거부하고 실존적인 자유를 찾아 떠날 용기가 없음에 절망감을 느낀다.  여행을 떠나는 이와 떠나지 못하는 이, 모두에게 연민을 느낀다. 

 

박범신의 소설을 읽으면 울적해진다.  그와의 만남은 촐라체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그의 글과 대면하는 순간 애써 마음 한구석에 쳐 박아 두며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늙음과 죽음, 자유와 자아 등의 명제가 눈앞으로 둥실 떠오른다.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나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계속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의미일까.  

 





박범신의 소설은 중독성이 있다.  읽는 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다시는 그의 작품은 가까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눈길이 가는 건 분명 중독되었기 때문이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이 그리워질 듯하다.  그리움에 이끌려 또 다른 작품을 손에 들었을 때 다시 힘들어지더라도 나는 그 힘듦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또 만나자고 조용히 읊조려 본다. 



 

 

 

 

 

 

1권

할 수만 있다면 소주의 독한 화살로 심장을 찔러 나를 죽이고 싶었다.  (...)  소주 한 병 더 줘요.  나는 소리쳤다.  (...)  실존의 위기감이 나를 사방에서 옭아매고 있었다.  나는 발 밑을 보았다.  내 발 밑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갈 곳도 죽을 수도 없는, 통나무다리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서워졌으며 또 비참했다. p172

 

아버지라는 이름이 가진 두 가지 얼굴이 있다면 책임과 권위일 터였다.  사람들은 우리의 아버지들이 무뚝뚝하고 비민주적이며 독선적인 권위주의 망토만을 걸치고 있다고 말했다.  (...)  내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큰애도 딸애도 나를 보는 기본적 인식은 그것이었다.  아내를 중심으로 두 아이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가도 내가 들어서면, 지금 들어오세요... 인사 한마디로 끝이었다.  애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말이 안 통해... 라고 그들은 말했다.  말해보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의 권위는 인정 안 하는 그들이 아버지의 책임만을 무한 강조한단 말인가. p202-203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이 글을 쓰는게 아니었다.  이야기의 끝물쯤에 이르면 아버지의 참된 정체성에 도달하게 될까.  아버지의 정체성이 확인되고 나면 그렇게, 이 불온한 21세기의 벽두에 선 나의 정체성도 아마 확인될 것이었다.  내 작업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p225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속에 등장하는 하이에나는 곧 킬리만자로 그 자체였다.  일상의 탐욕이나 쫓아다니는 관습적 삶을 헤밍웨이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 마리 하이에나는 거부했던 것이었다.  p319

 

2권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침묵 안을 꽉 채우고 있지만, 핑갈의 동굴에 이르러 내가 만난 것은 바로 그것, 원형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부드럽고 단단한 고요였다.  (...)  삶과 죽음이 아퀴를 지어 만나는 고요라고 하면 과장일까.  일찍이 천예린이 말한 바 있는 우리의 중심, 북극해 수심 수천 미터 바다 밑의 단단한 고요, 지상의 삶에선 도달할 수 없는 부드러운 침묵의 집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우리 삶이 얼마나 잡다한 소음에 둘러싸여 있는가 하고 나는 느꼈고, 소음이 없으니 원형을 보게 되는구나 하고 또한 나는 느꼈다. p129

 

스카이 섬을 여행하며 아버지가 스스로 외치기를, 사랑을 좇아온 것이 아니라 사랑 너머의 참다운 자유를 좇아 당신이 여기 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눈시울을 붉혔다.  사랑은 자유를 향한 여로였던 셈이고, 참된 자유는 참된 자아의 동의어일 터였다.  아버지의 모든 걸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 본래의 의도가 무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내 영혼이 아버지를 통해 인생의 바다로 나아갔으므로. p153

 

청춘은 자기에게 모반하고 싶어하는 것.  (...)  그것은 아버지를 비유한 대사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오십대에 마침내 자기 인생에 대한 극적 모반의 찬스를 잡았으나, 젊은 우리들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결단코 그런 찬스를 잡지 못할 것만 같았다.  (...)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잎지듯 너무도 뻔한 일상의 순환이 계속되리라는 거.  반란과 모반은 죽을 때까지 절대 불가능하리라는 거.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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