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2 -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뚫고 피어난 불멸의 예술혼 살롱 드 경성 2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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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을 읽다 보면 드는 감정은 부끄러움이 반, 신선함이 반이다. 서양 미술에는 오히려 더 익숙하고 관심도 많아 늘 찾아 보면서 우리 작가들과 작품에는 무지함이 부끄럽고, 몰랐던 우리 작가들과 그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 받으며 신선함과 반가움을 느낀다.

 

그림을 볼 때 나의 직관적인 감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화가의 생애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보려고 하는 편이다. 마냥 밝고 예쁘게만 보였던 그림이 화가의 삶을 안 뒤에는 조금 슬퍼 보이기도 하고, 화가가 그림에 담은 그리움이나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김인혜 작가가 직접 모은 근대 화가들의 자료에 유족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며 얻은 지식과 생생한 경험들이 같이 녹아있는 《살롱 드 경성》은 매우 귀한 책이다.


이번 2권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작품은 권옥연 화가의 1957년작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 파리를 좋아해 그림이 눈에 들어왔지만, 권옥연과 부인 이병복이 살아간 시간들을 알고 나니 파리에 도착해 저 그림을 그릴 때 그 부부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헤아려 보게 된다. 

보수적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 남았던 어린 장손. 권옥연은 외로웠던 어린시절을 '비극적'이었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양반 체면에 '환쟁이'가 될 순 없다고 반대하던 할아버지를 미워할 수도 없고 꿈을 포기할 수도 없던 그는 전쟁을 계기로 월남하여 피란지 부산에서 이병복을 만나 결혼한다. 두 명문가의 만남이었지만 전쟁통이라 양반도, 지주도, 가졌던 부도 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본인 역시 양반 가문의 엘리트였던 이병복은 남편 권옥연을 '한국의 피카소'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부는 파리로 떠났지만,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설적인 비평가의 극찬을 뒤로 하고 귀국한다.

사람들은 권옥연을 유쾌한 인물로 기억한다지만, 늘 마음속에 돌아갈 수 없는 함흥 고향집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그가 외로움과 슬픔이 많았던 사람이었을 것 같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까지, 주요 활동 시대가 격동의 시대였던 만큼 화가들의 고뇌는 더 깊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려운 시기와 고단한 삶을 겪어내면서도 남긴 대단한 성취를, 그 작품들을 멀지 않은 때에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해냄)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hain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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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 - 우리는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는가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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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는가.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

영화 국제시장에 고등학생들이 외국인 커플을 조롱하는 장면이 있죠. 나라가 못 살아서 다른 나라에 일하러 온 주제에 커피를 사 마시냐며 시비를 겁니다. 그걸 보고 있던 노인 덕수는 학생들을 심하게 나무라요. 덕수는 한국전쟁 이후 6, 70년대 파독 광부로 일하다 파독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현재 경제·문화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외국인 커플이 당하고 있는 멸시와 괴롭힘은 수십 년 전 자신도 직접 겪었던 인종차별이었죠.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일어서지 못한 내 나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 먼 곳까지 가서 파견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그 나라에서 보기에는 '돈이 없어 아시아 작은 나라에서 빌어먹으러 온 노동자' 였을지 모르지만 결코 빌어먹지 않았고 그곳 사람들이 회피하는 광산 일에서 제 몫을 했습니다. 그는 그곳의 산업역군이었어요.

책은 '차별받는 사람들과 이들의 고통으로 이득을 향유하는 집단이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소수자 집단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차별로 이득 보는 사회를 돌봄, 이주노동자, 학살, 정화, 낙인, 여성혐오로 이득 보는 사회로 6개 장에 나누어 설명해요. 각 장마다 차별의 형태가 유사한 집단끼리 짝을 짓고 그 각각의 차별을 통해 이득 보는 사회를 분석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저는 6개 장을 읽어 나가며 짝지은 집단들이 겪은 차별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장이 반, 이들을 유사하다고 보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장이 반이었어요.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저 사실을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펼쳐 놓을 뿐 이것이 맞다, 이것이 정답이다, 라고 하는 듯한 느낌은 크게 주지 않아 잘 읽혔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수자에 속했다는 이유로 사회와 제도가 가져다주는 '차별 이익'의 수혜자가 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하진 않지만, 차별이 주는 이득과 평온은 누린다" 는 것에는 이제 조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네요.



출판사(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wisdomhouse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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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해도 되는 타이밍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황영미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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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죽어버릴 수는 없으니 딱 십 년만 잠들었다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홍지민, 열다섯 중학생입니다. 십 년 후에 깨어났을 땐 같이 밥 먹을 친구 하나 없어서 혼급식 방법을 연구할 일도 없겠죠. 그냥 보통의 어른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냥 불편한 순간을 어물쩍 넘겨 보려던 건데 어쩌다 보니 재벌집 손녀라고 거짓말을 한 게 되어버렸어요. 성적도 외모도 집안도 별로인데 어느새 ‘허언증 환자’까지 되어 버린 나만 쏙 빼고 몰려다니는 반 여자 아이들 앞에 당당히 혼자 밥 먹을 용기가 없네요. 지금보다 좀 편하게 점심시간을 보내보려 찾게 된 도서관, 책이라는 게, 읽다 보니 재미있구나.

그러다 동아리 부원 모집 중이던 현서의 권유로 고전 읽기 동아리에 함께하게 됐어요. 부회장인 현서는 누가 봐도 인정할 엄친딸입니다. 빠지는 것 없이 잘나기만 했는데 성격까지 솔직하고 털털해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몇 번 마주치다 동아리에서 가까워진 태오, 나는 태오가 좋아요. 태오의 모습도, 그 아이의 생각도 너무 이상적이에요. 태오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언제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거예요? 태오도 나를 좋아해 줄까요? 현서만큼 잘난 게 하나 없는 나라도?


친구도 많지 않고 딱히 잘하는 것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는 지민은 자신을 ‘사람에게도 급이 있다면 나는 중간 이하’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른인 제가 보아선 너무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대단한 아이예요. 힘들다고도 느낄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의연하며, 다른 친구의 고민까지 꿰뚫어 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눈도 마음도 넓은 아이.


열다섯의 지민은 자신의 강점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자기 긍정과 당당함과 편견 없는 생각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그럴 수도 있다’는 이해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 삶의 뿌리인지 지금의 저는 잘 알지요.
사람의 모습과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기에, 나에게 향하는 세상의 어떤 부정적인 말들이 반드시 나를 탓하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불안하지 않을 거예요. 덜 상처받으며 살아갈 거예요.


이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얼마나 재미있게 살아갈지, 얼마나 괜찮은 어른으로 자랄지 기대가 되어 책을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출판사(우리학교)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woori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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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남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오정화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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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요이치와 여동생 유카리는 요이치 엄마와 유카리 아빠의 재혼으로 만난 의붓남매예요. 길쭉하고 멀끔한 외모는 친남매처럼 비슷하지만 성격은 그리 닮지 않았습니다. 나이는 열한 살이나 어려도 유달리 야무진 유카리와 함께 있으면 안그래도 어벙하고 어설픈 요이치가 더 실없이 보이죠.

남매는 오년 전 사고로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며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식구가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유카리를 맡아 키우겠다는 친척도 있었지만 요이치는 당연히 오빠인 자신이 동생을 보살피겠다고 했고, 유카리도 오빠와 함께 살기를 택했어요. 그렇게 요이치는 학교도 그만두고 취업하고, 중학생 유카리는 집안일을 싹싹하게 해내며 부모님의 구축 가옥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소설은 남매가 사계절을 보내며 마주한 이야기들을 그려냅니다.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고양이는 ‘다네다 씨’라는 그럴 듯한 이름까지 얻고 남매의 가족이 되지요. 어떤 대단한 절차 없이도,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요. 한여름 열사병이 난 옆집 할아버지의 밭을 남매와 친구들이 함께 돌보며 ‘곧 아빠가 될 손자에게 좋은 농산물을 전하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에 또 한번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새깁니다. 어릴 적 유카리를 두고 떠났던 친엄마는 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며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고 싶어하지만, 유카리는 결국 오빠 곁에 남기를 택해요.

스스로 ‘모조품 남매’라고 느끼던 그들은 세상의 기준대로 혈연으로 이루어져야만 가족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들도 모조품이 아니라 진정한 남매, 분명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 가요. 의붓남매가 서로를 의지해 살겠다는 게 쉽지도 일반적이지도 않았을 결정이었지만, 그들이 함께 살기로 했던 데에는 사실 어떤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가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시간을 담은 소설, 《모조품 남매》입니다.


매우 잔잔한 일본 가족영화를 한 편 본 느낌입니다. 

일상에 치여 많이 놓치고 있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남에게는 좀 덜 착한 사람이더라도) 내 가족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그들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더 잘해야겠습니다.


출판사(문예춘추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moonch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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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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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소설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지만, 책은 가볍고 쉽게 술술 읽힙니다. 번역도 매끄럽고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느낌입니다. 읽어나갈수록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볼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건강식품 회사에서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 내털리와 돈은 나이만 또래일 뿐 도무지 비슷하거나 통하는 구석이 없어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외모에 밝은 성격, 대단한 영업 수완으로 회사 동료와 상사뿐 아니라 고객들까지 모두가 좋아하는(듯했던) 내털리. 그녀의 판매 실적은 사내 탑으로 꼽힙니다. 그렇기에 내털리가 영업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금액 상관없이 용인될 만큼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을 정도죠.

거북이를 심각하게 좋아하고 식사는 한 가지 색으로만 구성해 먹는 조금은 별난 취향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조금 음침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돈. 아무도 그녀와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람 말고 숫자를 상대하는 회계 일을 하는 게 본인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다행한 일인 듯해요. 돈은 내털리와 가까워지고 싶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일인가 봐요. 내털리는 도무지 돈에게 마음을 내어 주지 않거든요.

이야기는 평소 강박적이라 할 만큼 시간관념이 철저한 돈이 출근시간이 지나서도 출근하지 않은 날, 내털리가 돈의 자리 전화를 무심코 당겨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끊어질 듯 겨우 이어지는, 도와달라는 여자의 목소리. 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봐요.

돈이 출근하지 않자 걱정이 된 내털리는 기억을 더듬어 전에 한번 가 보았던 돈의 집을 찾아가요. 그런데, 사건 현장이라 보일 만큼 흐트러진 집안 모습에 피까지...
경찰에 신고한 내털리, 신고는 당연한 선택 같았는데 한 발짝 떨어져 보니 스스로가 돈의 실종과 관련된 용의자가 된 듯합니다.

실종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내털리는 자기 집 빨래 바구니에서 피가 묻은 묵직한 거북 장식물을 발견해요. 존재 자체도 몰랐던 이 물건이 왜 집에 있는 걸까요. 설상가상으로 '내털리와 돈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동료들의 증언들로 나탈리는 피의자가 되어버립니다. 정말 사무실 안에, 돈의 동료 중에 범인이 있을까요. 내털리가 돈을 죽이고 숨긴 걸까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던 여자, 돈의 실종 사건 전말이 밝혀지고 나서도 또 다른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실, 책을 덮을 때 전 맥이 탁 풀렸어요. 권선징악이 절대 취향이라 그럴까요.

'부디 늦은 밤 《더 코워커》를 펼치지 않길 바란다. 해가 뜨는 것을 보게 될 테니.' 라던 책 홍보 문구가 매우 적절히 맞아떨어지네요. 재미를 떠나서, 뒤가 너무 궁금해서라도 누구든 한자리에서 다 읽을 듯해요.



출판사(북플레저)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_book_ple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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