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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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그들의 자동차와 함께 저수지에서 발견된다. 단순 교통사고였을까, 장례식장에서 어떤 이들이 수군대던 것처럼 자살이었을까. 죽은 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정환은 한순간에 부모 모두 잃고 혼자가 되어 버린 열다섯 살 다경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정환과 그의 아내 세라, 아들 민규와 선규는 그동안 다경의 가족과 매년 여름휴가를 같이 보낼 정도로 가깝게 지냈기에 다경이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만이라도 왕래 없던 친척들 대신 그들 가족이 아이를 품는 게 나을 듯하다.


정환은 다경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지만 늘 딸을 바랐던 세라는 다경이 그저 안쓰럽고 기특하다. 큰아들 민규는 다경과 허물없이 지냈었지만, 사춘기를 겪으며 이제는 다경에게 거리감이 들고 그녀가 그저 불편하고 신경쓰인다. 다경과 동갑내기인 작은아들 민규는 제 방을 내어 주며 터뜨렸던 불만을 다경이 들은 것에 대해 미안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건 그냥 늘 형만 우선시하는 엄마에 대한 가벼운 반항이었을 뿐인데.


다경과 가족들은 서서히 서로가 함께하는 일상에 적응해 간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다경, 사실은 부모의 죽음에 커다란 의혹을 품고 있다. 장례식 도중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었던 조문객들의 대화, 그것이 아이를 이 집으로 이끌었다. 부모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다경, 범인을 밝히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을 조금씩 압박하기 시작한다


정해연 작가 이전에 이름을 기억하는 우리나라 추리소설가 서미애 작가. 신간도 궁금했다. 열다섯 살 다경, 영리하고 영악하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바로 상대에게 울고불고하며 묻고 따지지 않고 생각을 정리해 차근차근 사실 확인 후에 용의자가 막연한 불안을 느끼도록 만든다. 벗어날 수 없도록 코너로 몰고 간다.

읽고 나니 이게 여우누이인가 싶지만... 굳이 연결 지은 제목 덕분에 더 궁금증을 유발했던 듯하다.



출판사(한끼)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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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
플로랑스 멘데즈 지음, 임명주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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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 아버지가 휘둘렀던 가정폭력의 트라우마와 만성 우울증으로 도무지 삶에, 사회에 발붙여 살아가기 힘든 여자.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자살 시도에 번번이 실패한다. 죽고 싶은 것은 사실이므로(그렇게 믿으므로) 자신을 대신 죽여 줄 사람을 찾다 결국 다크웹에서 청부살인업자를 구한다.


마르탱. 다프네의 촉탁살인 의뢰를 받아들인 청부살인 조직의 애송이 킬러. 권위적이고 마초 같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남성성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아왔다. 포르노와 폭력에 중독돼 스스로를 사회 '부적격자'로 생각한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능력도 없지만 강한 남성상에 대한 갈망 때문에 직업이라고 선택한 것이 킬러.


모나. 의사-환자로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던 이가 저지른 살인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심리치료사로 일하는, 한때 전도유망했던 전직 정신과 의사. 최근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치료 없이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인생 참 파란만장하다.


달리는 열차로 다프네를 밀어 죽여주겠다던 마르탱은 당일 약속 시간에 선로 가까이에 서서 자신을 보고 웃는 여자를 다프네로 착각해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여자를 밀어버리고 임무 완수에 안도하던 마르탱 앞에 진짜 다프네가 나타나고, 자기 대신 죽어 버린 여자의 처참한 시신을 본 다프네는 자신이 정말 죽고 싶었던 것이 맞는지, 죽고 싶은 것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미션은 반드시 처음 계약 내용대로 실행돼야 한다고, 열흘 안에 다프네를 죽이지 않으면 다프네도 자신도 조직에서 살해당할 거라 말하는 마르탱. 그들은 엉뚱하게도 심리상담사 모나를 찾아 상황을 털어놓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다프네가 진정 죽고 싶은 게 맞는지, 그녀를 죽이는 게 맞는지를 묻는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모나의 별장에서 함께한 열흘 간의 이야기.


길지 않은 소설. 잘 읽힌다, 소재에 반해 시종일관 유쾌하다, 하는 평들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글쎄 나는 모르겠다. 가슴이 아파서, 혹은 분노해서, 끔찍한 상상 때문에 몇 번이나 멈춰 가며 읽어야 했다.

결국 다프네 마음의 소리는 '나를 죽여줘'가 아니라 '제발 나를 살려줘'였는데... 책을 읽고 나면 프랑스 독자의 '생존이 평생의 과제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뼈아픈 유머'라는 평이 깊게 와닿는다.


다프네의 모든 시간에 모든 선택과 감정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누구나 일면 이기적이고 대개 자기중심적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그저 그렇게 흘러버린 거겠지 한다. 그래도 결말 그 이후의 이야기는 희망적이었다. 고통 속에 살아 본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본 이가 타인을 잘 도와줄 수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같다.

모든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를 많이 사랑했으면.



출판사(반타, 오팬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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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링 이펙트
무정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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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

사전에서는 ‘(엄격한 규칙이나 규제로 인한) 사기 저하, 의욕 상실이라 풀어내고, 책 소개에서는 과도한 외부 압력으로 인해 의견 표출이 억제되는 현상이라 말한다.

 

태산자동차의 회장 차동주와 그의 외동딸이 탄 차에서 급발진 현상이 발생한다. 2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러 가던 길, 태산의 신차 페스티나에서. 시속 180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카레이싱 대회 우승자 출신 기사인 한태수라는 것이 이들에게 다행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상황을 전달받은 태산자동차 내부에서는 사실 은폐와 수습에 여념이 없다. 차동주의 아버지, 초대 회장 차강태의 스카우트로 태산자동차에 입성해 오랜 시간 진실보다는 태산을 위하는 거짓에 더 가치를 두고 일해온 커뮤니케이션센터장 박준필은 협박과 회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건을 은폐하고 언론을 입막음하려 애쓴다.

 

하지만 박준필의 노력이 무색하게 익명의 유튜버를 통해 급발진 차량의 상황이 생중계되는데, 그는 어떻게 경찰 교신 내용, 차량 탑승자들 간의 대화 내용 등을 빠짐없이 알고 있는 것일까. 공장 준공식 기자회견 취재를 위해 모였던 기자들에게 메일로 차량 내부 상황이 전달되었다. 일단은 유튜버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사실을 부인해야지 여기서 진짜 상황을 들켜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동안 수많은 급발진 의심 사건들을 모두 운전자 과실로 몰아붙이느라 들인 공과 돈이 얼마인데, 회장이 타고 있는 신차에 급발진이라니. 알려지면 끝장이다.

 

기업, 경찰, 언론... 각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협하는 와중에 무고한 이들의 대가 없는 희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둡고 추악한 면면이 크게 보이는 가운데 양심을 지키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선택이 더 빛이 난다.

 

엄청나게 색다른 스토리는 아니지만(영화 발신제한이 떠올랐는데 발신제한도 스페인 영화가 원작이라네.), 사람 목숨 사라지는 게 왜 이리 쉽나 암울하지만, 빠르게 쉽게 읽힌다. 급발진 자체가 없으면 좋겠지만 실제 급발진일 때 차량 문제라는 판결이 어렵지 않게 나는 날이 올까?

 


출판사(나무옆의자, 픽셀앤플로우)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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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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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등장인물 모두에 대해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기대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젊은 부부 파커와 루나. 그들이 파티에 간 동안 손자 바니를 맡아 돌보고 있던 파커의 엄마 니콜라는 아들과 며느리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향한다.

긴급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는 파커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루나는 일반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들, 며느리가 입원해 있는 동안 바니를 한동안 데리고 있어야 할 테니 손자의 짐을 챙겨오겠다는 생각으로 아들 집을 찾은 니콜라. 언제 집을 매물로 내놓은 걸까. 파티에 다녀와서 아버지 모르게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다던 파커, 이 얘기를 하려 했던 걸까? 며느리가 내놓았을 쓰레기봉투는 온통 쓸만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스카프는 왜 버린 거지? 이 스카프, 왠지 낯이 익은데... 경찰이 찾고 있다며 몇 주째 뉴스에 등장하고 있는, 살인 사건의 결정적 증거물이다.

 

파커와 루나 부부, 그리고 각각의 부모. 살해된 젊은 여자. 그리 많지 않은 인물들 속에서 쉴 틈 없이 머리를 굴리게 된다.

 

서로가 운명의 반쪽이라 믿고 결혼했지만, 상대의 매력이라 느꼈던 부분들이 이제 꼴 보기 싫다. 부족함 없이 가장 좋은 것을 주겠다며 베푸는 부모의 사랑이 자식에게 족쇄가 된다. 다정했던 아들인데, 결혼 이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며느리 탓이겠지, 매주 처가에만 간다. 남편과 아들과의 갈등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의 결혼 이후 그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것 같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돈, 위기 시에는 손자 양육권까지 당연히 가져간다는데, 절대 빼앗길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살인 증거물에서 출발해 살인 사건의 원인과 진범을 찾아가는 가운데 부부간, 부모·자식 간, 고부 간, 장서 간, 사돈 간 갈등, 의심, 관계 균열의 모습과 개개인의 심리가 빽빽하게 그려진다. 읽다 보면 인물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비정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막판에는 나름 순리대로 흘러간 듯하다.

끊었다 다시 읽기 어려울 만큼 잘 읽히고 다음 페이지가 궁금한 소설. 영화화된다면 그것도 시간 내어 볼만하겠다.



출판사(반타, 오팬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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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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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유령 콘텐츠가 필요한 편집자, 유령 스팟 순례 영상들로 채널을 운영하지만 유령을 믿지 않는 유튜버, 유명 신사 집안의 딸로 원하지 않아도 유령을 보는 여자. 이들 셋은 돈이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뭉친다. 변태 오두막, 천국 병원, 윤회 러브호텔이라 불리는 버려진 장소들에 얽혀있는 소문을 각색해 마치 그것이 그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들에게는 각자 타인을 저주했거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타인을 죽게 만들었던 과거가 있다. 그 사연을 서로에게 털어놓지는 않지만 인물들의 과거를 모두 알고 책을 읽어나가는 우리에게는 그들이 드러내지 않는 생각과 내면의 공포 역시 버려진 장소들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일본에는 '로쿠부 살해' 이야기가 있단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자식으로 환생해 결국 자신을 해한 자를 단죄하고 복수한다는 이야기. 카르마, 윤회와 업보는 나라와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지역에서 민담 형태로 내려오고 있을 듯한데, 설화 속 큰 구조는 작품 속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 그들이 탐방하는 버려진 장소에 대한 소문과 이질감 없이 이어진다.

 

탐욕, 질투와 집착 등으로 남을 해롭게 하고 그 죄를 돌려받는 것, 완벽하게 나 아닌 타인의 이야기 같지만 저주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괴롭게 하는 타인을 미워하고 때로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일은 모두에게 흔하지 않은가.

장소에 대한 공포로 시작해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말, 행동의 무게에 더 공포를 느끼게 한 책.

 

범죄 스릴러는 즐겨도 진짜 호러는 무섭다. 당분간은 멀리하겠지만 작가의 다음 책이 나오면 또 한 번 기웃거려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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