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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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색맹인 유고, 소년의 세상은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유고의 곁에서 말로써 계절의 빛, 자연의 색,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려 늘 애쓰던 소꿉친구 가에데.


유고는 가장 가까웠던 존재이자 유일했던 친구 가에데가 병으로 떠난 뒤 곧 '무채병' 으로 시한부 1년을 선고받는다.

눈에 보이는 색을 하나씩 잃어가는 게 일반적인 무채병의 증상이지만, 날 때부터 색을 보지 못한 유고는 반대로 죽음에 다가갈수록 볼 수 있는 색이 하나씩 늘어간다. 그렇게 색을 알려주고 싶어 하던 가에데를 잃었는데 이제 색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친구의 죽음을 깊은 슬픔이나 마음의 동요 없이 그저 어떤 사실로만 받아들였던 유고는 가에데가 병상에서 작성했다는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대신 하나씩 실행해 나가며 무기력했던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비로소 세상의 색을 알아가고, 자기 안의 여러 감정을 깨닫는다. 반향이 없어도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던 가에데의 다정함은 '남과 다름' 때문에 세상에, 타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유고를 숨 쉬게 한 원동력이었다.


아, 아깝다. 소년 소녀의 삶이 너무 짧다. 리스트를 작성할 때 가에데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생각하면, 그 마음을 알아버렸을 때 유고의 심정을 헤아리면 참 애틋하고 슬프다.


2000년대 중반 일본 청춘 멜로영화를 한편 본 느낌. 뻔하더라도 몰입해서 읽을 만했던 이야기.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지워나가며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색을 하나씩 볼 수 있게 되면서 가에데가 이 아름다움을 얼마나 자신에게 전하고 싶어 했는지, 자신의 행복을 얼마나 바랐는지를 새삼 느끼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유고. 치유와 성장의 시간 끝에 남은 삶이 더 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먹하다.


남은 삶이 딱 1년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뭘 해야 할까.



출판사(모모, 오팬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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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 - 컨디션 난조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법
야마자키 아쓰코.도리이 린코 지음, 원선미 옮김 / 마인드빌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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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몸이 전투 모드'. 지난 여름 등허리 통증으로 찾은 한의원에서 식적(食積) 진단을 받던 날 맥을 짚던 한의사가 하던 말. 표현만 바뀌었을 뿐 처음 듣는 내용은 아니었다. 교감·부교감신경 얘기 섞인 설명보다는 조금 신선했지만.

특별히 어딘가가 아프다기보다는 체력이 약하고 기력이 달리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노력으로 조금씩 컨디션을 개선해 가며 지낸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책 제목 너무 잘 지은 듯하다. 얼마나 많은 여자가 저 문장에 공감할까.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신체적 특성(자궁-호르몬) 때문에 남성과 비교하면 몸이 더 약하고, 몸과 마음은 결국 연결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며 컨디션 난조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 모두 편해질 방법들을 제시한다.

어차피 사람 상대하고 대화하고 돕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며 교사에서 침구사로 직업을 바꾸었다는 특이한 이력의 여성 침구사와 자율신경 균형이 무너지면서 고통에 시달리다 환자로서 그 침구사를 만난 작가, 이 책은 그 둘이 나눈 대화에서 출발했다. 28년 동안 침구사로 일하며 환자들의 신체 증상 완화를 돕고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온 야마자키 아쓰코, 그녀가 그동안 만난 7만 명의 환자 중에는 여성 비중이 월등히 높았고 아쓰코 자신도 여성인 만큼 그들의 증상, 생활, 생각 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여자들이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마음도 힘들어 찾은 병원에서 갖은 검사를 해도 특별한 질병은 없고 그저 '갱년기'라 겪는 증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자율신경실조증'이란 진단을 받는단다.

저자는 늘 무리하고, 나보다 남을 더 신경 쓰고, 너무 열심히 사는 이들이 자율신경계 이상을 겪기 쉽고 그래서 몸이 아프고 힘들어진다고, 약물치료보다는 사고방식이나 생활 습관 개선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하며 증상 개선을 위한 방법들과 개선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젊은 여성과 갱년기 여성에게 특히 많이 나타난다는 '자율신경실조증', 나를 포함해 떨어지는 기력으로 몸과 마음이 힘든 많은 여성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마인드빌딩)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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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김희숙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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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사는 것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쉽지 않다.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나보다 먼저 인생을 출발한 이들의 이야기들이 와닿지 않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좀 살아 본 이제는 잘 안다. 평범과 보통이 얼마나 엄격한 기준인지, 무난하고 무탈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커다란 이벤트성의 기쁨보다 자잘한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더 궁극적인 행복이라고들 한다. 책의 초반에는 불평도 불만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섞인 이 평범한 일기가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 한 편 한 편 글을 마저 읽어가며 깨닫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평범함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행복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어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두고 둘러앉은 저녁 시간, 정성으로 농사지은 싱싱한 채소를 잔뜩 안겨준 이웃집 할머니 덕에 계획에도 없던 김치를 남편과 오손도손 한밤중까지 담근 일, 그 밤에 전화해 김치 레시피를 물을 엄마가 계신다는 것, 내가 가치를 부여하고 행복이라 느끼면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젊은이(4, 50대도 물론 충분히 젊지만!)가 같은 내용으로 행복을 말했다면 크게 공감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직장생활도 가사도 열심히, 남편과 두 자녀, 부모를 챙기며 열심히 살아온,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년 여성의 글이기에 글에서 나의 엄마가 보이고, 미래의 내가 보이기도 했다. 행복을 말하면서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후회, 불안, 걱정, 허무 등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차 내고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려다가 길에서 남편에게 '발견 당한' 일, 시장에서 마지막 족발 세 팩을 사버려 뒤에 서 있던 임산부가 아쉬워하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그 집 첫째 아이에게 족발 한 팩을 건네고 엄마랑 맛있게 먹으라던 것, 귀엽고 정 넘치는 에피소드들에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책을 읽은 누구나 생각해 보게 되겠지. '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출판사(클북)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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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자본론 - 풍요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친 모든 것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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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자본론》을 펼쳐본 적은 있었다. 얼마 읽지 못하고 덮었지만. 책에 '오십에 읽는' 《자본론》 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해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이면 그 어렵던 책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었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출강한다는 작가는 자신의 사회주의, 마르크스 강의를 듣고 의대를 지망하던 우수한 학생이 갑자기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어 진로까지 바꾸겠다고 한다면 그 부모들이 화가 나서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 밝힌다.

소설로 풀어내는 자본론. 어느 날,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이 '의대 바라보며 공부하던 내 딸이 당신 강의를 듣고 사회학과에 가겠다고 한다' 씩씩거리며 작가를 찾아와 따진다. 딸은 마치 마르크스주의가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게 지금 세상에 가당키나 하냐고 오늘 아버지인 자신이 작가의 주장을 들어 보고 말도 안 되는 그 생각들을 바로잡아 주겠다며 논쟁을 시작한다.

사회주의가 세상을 바르게 움직인다면 노동자를 고용해 기업을 운영하고 이윤을 남기는 자본가인 자신은 악당이냐 묻는 이와 사회주의는 단순히 자본가를 악당으로 보는 정도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념의 진정한 의미와 지향점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작가.

책을 읽다 보면 자본가의 입장에 크게 공감하는 순간과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찾아온다. 그 어려웠던 자본론을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오십대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젊은 시절 마르크스를 접했던 세대. IMF, 사회에서의 치열한 경쟁,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한 분투, 그 모든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도 여전히 도태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매일의 삶은 이상적이지 않고 그저 부를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다. 젊은 날 아직 때 묻지 않은 맑은 마음으로 만나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마르크스를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 다시 만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이 들까.



출판사(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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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기윤슬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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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좋은 직장, 나만 바라보는 완벽한 조건의 연인... 나도 드디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구나 생각하던 현주. 연인 석현에게서 프러포즈를 받고 설레는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받은 편지 한 통에 현주의 삶은 휘청인다. '동생을 죽인 살인자' 라니. 이 편지는 도대체 누가 보낸 거지? 그때 그 일을 누가 알고 있는 거지?

어린 현주는 엄마의 재혼으로 무능력한 새아버지와 그 새아버지가 데려온 딸 유미와 함께 살게 된다. 그동안 숱하게 바뀐 엄마의 애인들은 그래도 돈은 많았던 것 같은데, 유미의 아버지는 가진 돈도 능력도 없고 현주는 그 부녀에게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다.

가난과 결핍 속에서 인정과 애정, 부를 갈망하는 현주는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유미 부녀를 대놓고 무시하며 살아간다.

엄마가 훌쩍 사라져 버린 뒤에도 현주는 꿋꿋하게 공부해 수능까지 무사히 치러낸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새아버지가 의붓동생 유미의 학원 등록을 부탁하며 건넨 돈을 손에 쥔 현주는 친구 생일파티에 가기를 망설이는 유미를 파티 장소인 호프집으로 가도록 유도하고, 자신은 돈을 훔쳐 달아난다. 불법 개조된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미는 사망한다. 주인이 돈 아끼느라 호프집에 소방설비를 갖추지 않았다는 걸 현주는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유미를 죽인 것이 아니다,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달래며 오직 더 나은 삶을 위해 질주해 온 현주. 가난하고 불행했던 과거는 뒤로하고 돈 많고 집안 좋은 석현과 결혼해 상류사회, 화목한 집안으로의 편입을 목전에 두었다 생각한 그때, 낯선 이의 메시지는 '위험한 장소인 것을 알고도 동생 유미를 그곳에 보냈다면, 유미가 그곳에서 죽었다면 그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 이야기한다.

현주의 독백, 오래전 죽었다고 알고 있던 유미가 현주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 현주의 연인 석현의 본모습, 오래도록 현주를 짝사랑해 온 종욱의 속내가 모여 이루어진 소설.

사실이라 믿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전혀 의심하지도 않았던 일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

여러 반전을 가진 이야기. 저렇게 악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또 어디에나 있을법한 현주의 모습, 말투, 생각, 태도 모든 것이 참 밉다. 자신을 조건 없이 아끼고 동경한 의붓동생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고, 그 동생의 죽음에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그저 자신만 행복하게 살고자 발버둥 친 현주. 남에게 준 고통, 그만큼 돌려받았겠지. 시간 때우기 좋은, 잘 읽히는 소설. 그 정도.


출판사(한끼)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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