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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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유령 콘텐츠가 필요한 편집자, 유령 스팟 순례 영상들로 채널을 운영하지만 유령을 믿지 않는 유튜버, 유명 신사 집안의 딸로 원하지 않아도 유령을 보는 여자. 이들 셋은 돈이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뭉친다. 변태 오두막, 천국 병원, 윤회 러브호텔이라 불리는 버려진 장소들에 얽혀있는 소문을 각색해 마치 그것이 그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들에게는 각자 타인을 저주했거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타인을 죽게 만들었던 과거가 있다. 그 사연을 서로에게 털어놓지는 않지만 인물들의 과거를 모두 알고 책을 읽어나가는 우리에게는 그들이 드러내지 않는 생각과 내면의 공포 역시 버려진 장소들의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일본에는 '로쿠부 살해' 이야기가 있단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자식으로 환생해 결국 자신을 해한 자를 단죄하고 복수한다는 이야기. 카르마, 윤회와 업보는 나라와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지역에서 민담 형태로 내려오고 있을 듯한데, 설화 속 큰 구조는 작품 속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 그들이 탐방하는 버려진 장소에 대한 소문과 이질감 없이 이어진다.

 

탐욕, 질투와 집착 등으로 남을 해롭게 하고 그 죄를 돌려받는 것, 완벽하게 나 아닌 타인의 이야기 같지만 저주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괴롭게 하는 타인을 미워하고 때로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일은 모두에게 흔하지 않은가.

장소에 대한 공포로 시작해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말, 행동의 무게에 더 공포를 느끼게 한 책.

 

범죄 스릴러는 즐겨도 진짜 호러는 무섭다. 당분간은 멀리하겠지만 작가의 다음 책이 나오면 또 한 번 기웃거려볼 듯.



출판사(반타, 오팬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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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쓴 아빠의 일기 - 상처를 품은 아빠, 남극에서 희망을 말하다
오영식 지음 / 하움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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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젊은 의사의 남극 에세이 <서른셋, 지구의 끝으로 가다>를 정말 여러 번 읽었다. 찾아보니 20091월 신간이었네. 17년 전이라... 방황하던 젊은 의사는 서울아산병원 교수님으로 열심히 살고 계시네. 여전히 글을 쓰면서.

어려서나 지금에나 나는 확실한 안정추구형 인간이지만 그래도 푸르던 그때는, 도전과 변화에 대한 갈망도 있었나 보다. 남극과 펭귄, 해표와 빙하에 꽤 오래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추위를 남들보다 훨씬 더 타고 모든 동물을, 특히 새를 엄청나게 무서워 하면서.

 

가보지 못한, 가보지 못할, 이제는 의지로도 절대 가지 않을 곳의 풍경과 삶과 그곳에서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아들에 대한 사랑 정도를 기대하고 가볍게 펴든 책인데, 어렵거나 두꺼운 책이 아닌데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기상 공무원으로 일하다 40대 초반 젊은 나이에 퇴직한 이야기도, 남극 세종과학기지 연구대원으로 10년 전에 1, 10년이 흘러 또 1년 활동한 이야기도, 하나뿐인 아들과의 세계여행 이야기도 다 흥미로운 것은 분명한데 그 사이사이에 비치는 저자의 너무나 외롭고 고달팠던 삶이 참 아프다. 그래서 멈추고 피하다 다시 읽고 멈추고, 이렇게 천천히 읽은 책도 오랜만이다.

 

성인이 되어 군대에서도 조직에서도 주위에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일에 번아웃을 겪고 힘들어한 것이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니 차치하고라도, 어려서 부모의 사랑에도, 먹고 사는 것에도 결핍투성이로 살았던 저자가 인간적으로 참 안됐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가족의 품 안에서 마냥 편하게 뛰어놀 수 있어야 하는데, 가난과 외로움 속에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다 해내며 살아왔으면서 세상을 여전히 예쁘게 보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좋은 어른이 되었다니,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사랑을 배워 사랑 주는 어른이 되었다니, 대단하다.

 

생판 남인 나도 저자의 고난이 안쓰러운데 그의 어린 아들이 아빠의 이 일기를 읽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의 아들이 아빠가 겪었던 고독과 슬픔보다 자신에 대한 아빠의 애틋함, 아빠가 자신을 두고 한 굳은 다짐, 그리움과 사랑의 깊이에만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하움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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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깨알 재미
손유미(요우메이) 지음 / 파랑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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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특히 청소년과 대학생, 사회 초년생까지의 어리고 젊은 세대의 문해력 수준 저하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명일', '익월' 등 일상보다 업무 중에 주로 많이 쓰는 어휘들을 낯설어하는 건 그렇다 치고 사흘을 4일(사일)로, 금일을 금요일로 짐작하며 쉬운 말 두고 왜 어렵게 말하냐는 반응도 흔하단다. 

잘못을 인정하며 내놓았던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기사에 놀란 적도 있다.

이모티콘과 줄임말이 난무하는 스마트폰 중심의 언어 환경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휘력, 문해력 저하는 당연할 수도 있겠지.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순우리말 사용을 강조하는 이들도 한자어를 다른 우리말 표현으로 백 퍼센트 바꿔 쓰기란 쉽지 않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자와 한자어를 좀 더 탐구해 보는 것은 어휘력 확장, 하는 말의 맛을 살리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일이 될 수 있다. <한자의 깨알 재미>는 중국어와 한자를 모두 공부한 저자의 이력을 믿고 읽어볼 만한 책. 

대화 중에 의미를 어울리게 쓰는 데에는 아무 무리가 없는 단어들도, 책을 통해 단어를 이루는 정확한 한자와 말의 유래를 알고 나니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나듯 온화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넘쳐흐르는 상황을 뜻하니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에 '아지랑이 애(靄)'자를 쓰고, '일상탈출(日常脫出)' 인가 했던 '일탈(逸脫)'에는 '달아날 일(逸)'자를 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말 속담의 의미와 유래, 용례를 풀어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난다. 그 독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단어의 유래와 쓰임을 전하는이 책 역시 작고 가볍지만 꽤 유용한 교양서인 듯하다.



출판사(파랑새)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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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피플
차현진 지음 / 한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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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건영과의 결혼을 코앞에 둔 정원. 그녀는 결혼 전 퇴사를 결정하고, 스튜어디스로서의 마지막 비행지 암스테르담에서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미 오래 아파 온 엄마, 엄마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려면 서둘러 귀국해야 하지만 화산 폭발로 모든 길이 막혀버린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으로 우회해서라도 얼른 한국행 비행기를 찾아야 하는 상황, 정원은 겨우 빌린 렌터카가 중복 예약된 탓에 어쩔 수 없이 같은 차를 빌린 해든과 함께 항구로 향한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해든은 한국에서는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에서는 한국인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존재에 여전히 혼란을 겪는다. 기자로서의 삶은 쓰고 싶은 글을 써내는 일보다 윗사람들의 지시를 따르고 회사에서 필요한 글은 쓰는 일에 더 치우쳐 있는 것만 같다.

 

아빠가 떠나버린 뒤 가난 위에 발버둥 치며 오로지 안정과 평온을 좇아온 정원, 그녀는 모난 데 없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건영이 자신에게 평생 안정된 삶, 평범한 삶을 보장해 줄 거라는 기대로 그와의 결혼을 선택했다.

 

입양되어 밟은 나라에의 완벽한 정착에도, 온 마음을 줬던 X와의 관계에도 실패했다는 상처를 안고 미래에 큰 기대 없이 살아가던 해든과 안온한 생활만이 답이라며 스스로의 진짜 행복을 그려보지 않았던 정원. 공통점 하나 없는 듯한 그들은 함께한 드라이브와 쉼 없이 나눈 이야기 속에서 서로에게 깊게 스며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오래도록 서로를 잊지 못하고 각자 다른 모양으로 서로를 그리워한다.

 

8부작 16부작이 아니라 한 편으로 끝나는, 영화보다 짧은 드라마 같은 소설. 짧은 만남, 긴 여운의 이야기. 뻔하지만, 한편으론 뻔하지 않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시간도, 공간도 이리저리 넘나든다. (... 마지막엔 좀 쓰기 싫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은 경로를 이탈한다면, 이탈해 닿은 곳이 진짜 내가 머물 곳일까 아니면 잠시 벗어났다가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머무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일까.


오랜만에 비포 시리즈 Ethan Hawke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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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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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플북 읽는 건 피하고 싶었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해 출간 전 서평단에 지원한 <얼굴들>.

 

십 대 초반 어린 나이에, 아동 연쇄살인범에게 끌려간 동생도 구해 내고 자신 역시 무탈히 살아남았던 오광심. 그는 현재 경찰로 일하고 있다.

광심은 단순히 경찰로서 능력 있는 것과는 별개로 피 냄새를 맡는 게 아니냐, 그가 오히려 사건을 키우거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냐는 평까지 듣는다. 사실 광심 스스로도 자신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어려서부터 인지하고 있으며 경찰로서의 역할과 사이코패스의 본능 사이에서 늘 혼란을 겪는다.

 

흉악범이 자신의 총을 빼앗아 자살해 버린 사건에 휘말린 광심은 수사 일선에서 벗어나 홍보 업무를 맡게 되고, 선배 경찰이자 유능하고 유명한 프로파일러 옥호의 소개로 베스트셀러 소설가 주해환을 만난다. 오래전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최고급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옥호와 친형 외에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은둔해 살아가는 해환. 한눈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본 해환과 광심, 그들은 비밀리에 스타 강사 고보경의 딸 실종사건 수사를 함께 맡게 된다.

 

마음이 꽃밭에 있던 때에는 성선설을 굳게 믿었고, 누가 뭐래도 인간은 악하고 그 근간이 끝내 바뀌지 않으며 착한 척도 못하는 사회화 덜 된 인간들이 수두룩하니 성악설이 맞다 여기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세상을 좀 살아 본 지금은 성무선악설에 생각이 기운다.

악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도 악으로 살지 않으려 분투하는 광심의 다음이 특히 궁금하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결국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더 굳건히 하게 되지 않을까. 읽으러 간다.


출판사(라곰)로부터 도서(샘플북)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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