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지막 습관 -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하는 글


다산처럼 산다는 것

"점차 하던 일을 거둬들여 마음 다스림(치심心) 공부에 힘을 쏟고자 합니다. 하물며 풍병은 뿌리가 이미 깊어 입가에 항상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는 늘 마비 증세를 느낍니다. 머리에는 잉어 낚시하는 늙은이들이 쓰는 털모자를 쓰고 지냅니다. 근래 들어서는 또 혀마저 굳어 말이 어눌합니다.
스스로 살날이 길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꾸 바깥으로 마음을 내달리니,
이것은 주자께서도 만년에 뉘우치신 바입니다. 어찌 염려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려면 세간의 잡념이 천갈래만갈래로 어지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리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저술만 못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때문에 문득 그만두지 못하는것입니다." - P20

다산이 둘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다. 같은 시기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형이 건강을 생각해 저술을 당분간 자제하라고 권하자 다산은 이렇게답했다. 학문과 수양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다산조차 마음 다스림에는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다산은 스스로 쓴 묘비명에서 "어릴 때는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20년 동안이나 세속의 길에 빠져 다시 선왕의훌륭한 정치가 있는 줄 알지 못했는데 이제야 여가를 얻게 되었다"라고고백했다. 그리고 마음공부를 마지막 공부로 삼겠다고 다짐했지만, 역시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고뇌했다.
험난한 귀양 생활에 몸은 점차 쇠약해졌다. 중풍이 심해지고 오한을 견디기도 힘들었다. 마음도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고난의 극한상황, 절망에 처한 상태였다.
다산은 이러한 순간, 집필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복숭아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그 어떤 마음공부에서도 찾지 못했던 마음의 안정을 집필에몰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마음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림으로써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공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집필에 집중할수 있는 것은 수신의 힘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고난에서 자신을지켜낼 수 있는 힘이라면, 몸을 지키는 공부는 고난 속에서 큰일을 이룰수 있게 한다. 그 결실이 바로 《여유당전서》다. - P21

수신, 잃어버린 나를 찾아단단히 몸에 새기는 공부

다산은 마흔이 될 때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탁월한 문제로 천재 소리를 들었고, 성균관에 들어가서도 뛰어난 재주로 정조의 눈에 들었으며 이후 과거에 급제하면서 일찌감치 관직의 길로나섰다. 그리고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그는 마흔이채 못 된 나이에 형조참의의 자리에 오르며 정점을 찍었다. 심지어 나이든형조판서의 대행을 명받아서 지금의 장관 직책을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산은 이처럼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가리켜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고 했다.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해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화가 겁을 주어도 떠나가며, 새까만 눈썹에 흰 이를 가진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들어 만류할 수 없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지키지 않는가.

큰형인 정약현이 당호를 수오로 짓자 느낀 바를 쓴 <수오재기菩 - P22

>에 실린 글이다. ‘수오‘는 ‘나를 지킨다‘는 뜻으로, 화를 입었던 다산의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켰던 큰형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그런 형을 부러워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안타까움을담아 이 글을 지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 자다. 어렸을 때 과거가 좋게 보여서 과거 공부에 빠져 지낸 세월이 10년이었다. 마침내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검은 사모에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큰길을 뛰어다닌 세월이 2년이었다.
또 처지가 바뀌어 한강을 건너고 조령을 넘어, 친척과 분묘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는 나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나의 발꿈치를 따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 끌려서 온 것인가? 아니면 해신이 부른 것인가? 자네의 가정과 고향이 모두 초천에 있는데, 어찌 본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물었다. 끝끝내 나라는 것은 멍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얽매인 곳이 있어서 돌아가고자 하나 가지 못하는 듯했다. 마침내 붙잡아서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다산의 고백이 처절하다. 다산은 누명을 쓰고 머나먼 땅으로 귀양을 떠났을 때뿐 아니라 과거를 준비하고 성공을 구가했던 20여 년까지도 ‘나‘
를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다산은 ‘나‘를 찾았다. 의외로 머나먼 바닷가 귀양지에서였다. 그의 삶에서 가장 길고 큰 비극의 시간 - P23

이었지만 다산은 그곳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최악의 절망에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던 극단적인 고난의 시간에서다산이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무엇이 잃어버린 ‘나‘를 찾게 했을까? 그것은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가 학문에 있고, 오직 집필을 통해서만이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학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힘이 된 것은 바로《소학》에서 얻은 수신이었다.

"나는 《심경》으로 마음을 다스렸고《소학》을 통해 몸으로 실천했다"

《소학》은 남송 시기 사람인 주자와 그의 제자 유청지2가 함께 만든책이다. 주자는 우리가 잘 아는 성리학을 집대성했던 대학자다. 그는 아이들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논어훈몽구의》, 《팔조언행명신록》 등의 책을펴냈는데, 《소학》은 그가 쉰이 넘은 나이에 펴낸 아동교육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는 《논어》, 《맹자>, <예기> 등 백여 권의 고전에서 아이들에게 꼭필요한 내용을 추려낸 다음 교육(입교), 인간의 길(명륜), 수양(경신*), 고대의 도(계고), 아름다운 말(가), 선행의 여섯 편으로 묶었다. 주자는 책의 서문인 <소학서제>에서 책의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 P24

옛날 아동 교육에서는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고 대답하고, 나아가고 물러가는예절과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를 가르쳤다. 이것은 모두 《대학》에서 가르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근본이 된다. 어릴 적에 배우고 익히도록 한 까닭은 배움이란 지혜와 함께 자라고, 가르침은 마음과 함께 이뤄지게 해서 그 배운 것과 실천이 서로어그러져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근심을 없게 하고자 함이다.

주자는 어른의 공부인 《대학》을 배우기 전에 반드시 《소학》을 배워야한다고 했다. 《대학》은 나라와 천하를 평안히 다스리는 큰뜻을 이뤄가는공부다. 하지만 큰일은 반드시 일상의 도리를 지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일상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큰 이상을 외치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근본이 바로 《소학》의 가르침, 수신의 공부다. 근본이란 단순한지식이 아니라 사람의 올바른 도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몸에 익혀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식을 채우기만 하고 근본이 없다면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헛똑똑이가 될 수밖에 없다. 축적한 지식 또한실천할 수 없는 반쪽짜리 지식이 될 뿐이다.
조선의 대학자들도 이러한 《소학》의 가르침에 공감했다. 율곡 이이는《소학집주》를 써서 소학 공부의 표준을 제시했다. 퇴계 이황 역시 《성학십도》에서 <소학도>를 그렸고, 조강(임금에게 올리는 아침 강의)에서 "어린 사람들뿐 아니라 장성한 사람도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라며 《소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산도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소학》의 주해서에서 잘 - P25

못된 것과 부족한 것을 보완해 《소학보전》을 썼고, 당시 어린이 교쓰기도》을육이 천자문에만 치우친 폐해를 바로 잡고자 《소학관했다.
하지만 다산이 《소학》에 집중한 데는 또 하나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소학》을 통해 귀양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큰일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수신을 깨달았다. 다산은 귀양지에서 쓴 《심경밀험>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실하게 실천할 방법을 찾아보니 오직 《소학》과 《심경》만이 특출하게 빼어났다. 진실로 이 두 책에 침잠해 힘써 행하되 《소학》으로 외면을다스리고, 《심경》으로 내면을 다스린다면 현인의 길에 이르지 않을까?"

일상에 중독되지 않고,
내가 매일 성장한다는 것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라도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만날 때가 있다. 스스로초래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혹은 환경 때문에 전혀 뜻하지 않게 맞닥뜨릴 때도 없지 않다.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하기도 어려운 재해도뜻하지 않은 순간에 다가온다. 누구나 이런 힘든 상황이 닥치면 마음의 고통을 겪고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이때 마음을 바르게 잡을 수 있으면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끝내 마음을 잡지 못하면 휩쓸려 무너진다.
다산 또한 귀양지에서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다산은 고난을 - P26

"맞아 마음을 다스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바로 고난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그 힘이 된 것이 근본을 바로 세우는 수신이었다. 다산은 고난을 통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몸을 바로 세우고 자신이 해야 할일, 이루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스스로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수신을 행하는 사람은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성찰한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그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하고자 하는 일을 어긋나게 함으로써 그가 더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고난의 의미를 설파했다. 다산은 몸소 그것을 증명했다.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인생초유의, 최악의 고난에서 다산은 그 의미를 성찰하며 자신을 바로 세웠다.끝을 모르는 고통의 시간에서 포기와 절망이 아닌, 희망과 소명을 붙잡은것이다.

고난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수신의 힘이다.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에 안주하며 자신이 가졌던 꿈과 이상을 잊고 산다. 큰성공을 구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미혹되고 취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린다. 다산은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다산은 뒤늦게나마 그것을 깨달았지만, 우리 대부분은 평생 자신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지낸다.
어린 시절부터 지녔던 꿈, 하고 싶었던 일, 내가 설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나를 이루는 정체성이 된다. 일상은 비범하지 않은 경험들을 반복해서 살아내는 삶의 과정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욕심과 미혹에 빠지게 되고, 이윽고 나를 잊어버린다. - P27

그때 일상으로부터 본래의 나를 찾아주는 것이 바로 근본으로 돌아가는《소학》의 가르침이다. 다산은 머나먼 귀양지에서 《소학》을 자신의 마지막공부로 삼았고,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진정한 자신을 되찾았다.

마지막으로, 뜻을 이루게 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수신의 힘이다.다산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집필에 열중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집필에 애를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필에 마음을 쏟음으로써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었다.

인간의 마음은 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지만 반대로 몸을 바로잡음으로써 마음을 잡을 수도 있다. 다산은 이것을 분명히알았다. 다산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몸을 바로잡았고, 몸이 흐트러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일생의 꿈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마음을 다잡고 몸을 바로잡는 수신을 이룰 때 꾸준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다면 이윽고 품었던 꿈도 이룰수 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에 이어서 쓴 이 책으로 다산이 꿈을 이루기 위해어떻게 《소학》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깨닫고 자기 삶에 적용했는지를 알리고자 했다. 다산의 깨달음을 미흡한 내가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일 것이다. 다만 그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치열한 노력과실천의 과정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며, 힘이 닿는 대로 책에 다산의 마음을 담고자 했다. - P28

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글을 쓰는 순간마다 절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힘이 된 것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책상에 앉아글을 썼다"는 다산의 가르침이다. 비록 부족하지만 다산의 그 절박함을조금이나마 배워 글을 쓰고자 했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이 평온하고 안일한 삶에서 각성을 고난의 시기에 성찰을, 고난을 뚫고 자기 정체성을 이루어가는 큰 힘을 얻는 데 보탬이되기를 바란다.
책을 쓰면서 《다산 정약용 시문집》(1~9권, 한국학술정보), 《소학지언》(사암), 《소학집주》(전통문화연구회), 《소학》(홍익출판사)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감사드린다.

다시 새해를 기다리며
조윤제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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