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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고슴도치들을 위한 정의론>이다. 여기서 '고슴도치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가 쓴 시구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저자의 다른 책,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진정한 논쟁이 없는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논했던 그의 주장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법철학의 대가로서 평생을 '잘 사는 삶'의 문제와 '정의로운 사회'의 문제에 매진하다 2013년 작고한 로널드 드워킨의 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펼쳐볼 가치는 충분하다. 








신영복 교수의 성공회대학 강의록을 바탕으로 출간됐던 책 <강의>에 이어 <담론>이 나왔다!


'동양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과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 두 가지 주제를 담았다.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주제를 다양한 일화, 소소한 일상들과 함께 들려줌으로써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술술 읽힌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자, 신영복 교수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도 그 깊이를 쉬이 가늠할 수 없다는 나의 생각이다. 








고전의 원전을 읽을 때, 해제본을 읽을 때와는 다른 고전읽기의 즐거움이 있다. 이번에 팽귄클레식 코리아에서 <세상을 읽는 4가지 방법>이라는 부제 아래,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고전 시리즈를 애장하는 나로써는 두고 두고 소장하며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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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베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김진희 감수 / 윌컴퍼니(윌스타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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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란 결국 무엇인가? 남들이 소장하고 있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자기도 갖고 싶어서 직접 그려 소장하는 사람 아니겠는가. 시작은 그러한데 거기서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피카소, 1934년)"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의 저자, 카롤린 라로슈가 책의 서문에서 인용한 피카소의 말이다. 여기에서 착안한 저자의 기획은 수십 년 혹은 수 세기의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온 명작들간의 '혈연관계'를 밝혀낸다.

 

"서양 미술사는 르네상스 이후 신기원을 이루는 형식적 혁신들의 도움으로 계속 발전해오긴 했지만 시대와 양식의 차이를 제외하면 결국은 반복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p.7)"

 

따라서 그가 골라 밝힌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한 장르가 미술사에 있어 여러 세기를 가로질러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술사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작품들에 대한 현대 작가들의 재해석이나 도전을 다루기도 하는데, 미술사의 계승, 경의 재해석, 패러디 등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화하는 미술사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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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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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생겨남으로 인해 인류는 완전히 새롭고 전면적인 보존 형식을 확보하게 됐고, 이를 통해 기억과 대화, 사유를 몸 밖에 둘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p.22)."


때문에 [한자의 탄생]은 인간의 기억과, 대화, 사유를 통해 탄생한 문화,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의 결정체로서 구성된 중국문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대만 최고의 전방위 학자이자 작자'로서 '직업 독자(professional reader)'를 자처한 '탕누어'의 자유로운 사유와 상상력이 빚어낸 갑골문, 육서(상형, 회의, 지사, 형성, 전주, 가차) 등 다양한 방법의 조자를 통해 확장되고 정련된 한자에 투영된 중국 문화의 긴 흐름은 중국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거의없는 나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저자는 문자에 대한 사유의 자유로움이 문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자 은혜라고 설명한다.


"정확하고 당일한 의미의 추구 및 표현이 문자의 유일한 임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은 문자가 갖는 일상의 일부일 뿐이었다. 사유가 계속 진행되고 발전하는 세계에서, 시의 세계에서, 모든 문학의 세계에서 문자는 사람들의 모험 여행에 동행하며, 충성스럽게 모든 위험과 노동을 전담하고, 심지어 온갖 비난까지 떠안는 훌륭한 반려자다(p.331)."


이같은 문자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문자에 대한 풍성한 스토리로 가득한 [한자의 탄생]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문자를 비롯한 사회 현상은 개인의 해석을 통해 재창조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여러 매체를 통해 거론되고 강조되고 있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한 모범사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초등학생과 그 학부모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마법천자문'의 인문학 버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여러 한자를 두고 펼쳐지는 그의 해석과 중국 문명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다만 번역의 과정에서 한자의 음과 함께 뜻을 적어주었다면 독자의 이해가 좀더 쉬웠으리라 본다. 물론, 나처럼 학창시절을 지나서는 단 한번도 한자를 써보거나 공부해 본 일이 없는, 그래서 한자 앞에 서면 까막눈이 되고 마는 독자를 위함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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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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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시간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면, 이런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할까(p.17)?"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철학적 사유의 방식이 아닌 사학, 물리학, 천문학 같은 인류 문명을 구성하고 발달시켜 온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서술된다. 특히, 문화적 시간이 변화할 때 우주론의 시간 개념은 어떤 변화를 겼었는지, 반대로 우주론은 문화적 시간 개념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각 시대적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한 작가의 책은 최근까지 화두가 되고 있는 '통섭'의 한 방식, 경계를 허물고 각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학문적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시간 개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달라졌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한 것은 시간 경험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아울러 인간이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 우주론적 상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보려면, 물리학과 천문학의 연구 경로와 아주 유사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p.23)."
 
저자의 서술처럼 인간의 역사는 커다란 변화를 겼었다. 다시 말해, '5만 년 전 탄생한 정치적인 도시제국에서 2세기 전 구축된 공장 중심의 상업 제국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문화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재창조되었다(p.462).' 정보통신 혁명을 통해 실시간으로 세계가 연결되는 오늘날, 이를 두고 사회학자 존 어리(J. Urry)는 '이동사회'의 재등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호모 노마드(Homo Nomad)로 대표되는 신유목사회에서 시간은 최적의 효율화를 목표로 늘 가속화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저자는 갈수록 가속화되는 시간의 배경 뒤에 에너지 자원과 자연 자원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지난 세기 전 세계 산업생산의 급격한 증가는 단순히 과학과 기술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석유화학이라는 값싼 에너지가 무한히 공급될 수 있었기에 과학과 기술이 가능했던 것이다(p.470)."

그리고 아다시피 무한히 공급될 것만 같았던 에너지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은 더이상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다. 에너지의 한계 문제와 더불어 끊임없는 과학 기술 산업의 속도 경쟁 속에 환경오염의 총량 역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 단계의 인류 역사가 기후를 중심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고 평한다. 어쩌면 기후 변화로 대표되는 온 지구가 신음하고 있는 환경의 문제는 인류의 다음 역사를 전망하기에 중요한 기착점이 될 수 있다. 1992년 세계 환경 회의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이 합의된 이래로, 현 인류는 미래 세대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다. 가속화의 정점에서 과연 이대로 가도 좋은가에 대한 반성이리라. 하지만 이 개념에도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미래 세대가 의미하는 '미래'란 언제를 의미하는가. 현 세대를 기준으로 미래 세대를 정의할 때, 역시 시간의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정의되고 예견될 수 있는가. 태초에 시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다시 우리 미래의 문제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는 않고 있지만, 우주의 탄생과 함께 시간은 발생했다. 그리고 점점 가속화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 미래를 내다보는 일. 어쩌면 저자는 시간 연대기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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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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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에서 말하는 젊은이는 누구일까? 흔히 요즘 젊은이들은 안돼.” 혹은 요즘 젊은이는 발칙하다.”라고 누구나 쉽게 지적하지만, 단순히 젊은이라는 집단을 ‘20대부터 30세 정도인 남녀로 정의할 수 없는 까닭이 저자의 젊은이 담론에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젊은이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일본에서 논의된 젊은이론과 젊은이 담론(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젊은이에 대한 정의를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사회학자로서 젊음또는 젊은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해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이니 하는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아주 일상적인 대상에 대해 해체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그의 젊은이 담론은 사회학자로서 혹은 연구자로서 지녀야 할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의 치밀함은 젊음이론의 변천을 도표로 정리한 젊은이론의 계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데, 사회적인 흐름을 떠나서 단지 연령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지역, 빈부, 성별 차이 등을 모두 무시하고 젊은이로 간주해 버리는 논의가 현실성을 가질 수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사회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이 현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그 삶이 예전과 얼마만큼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두고 젊은이에 대해 논한다.

저자가 조작적으로 정의한 일본의 젊은이는 끝없는 불황, 비좁은 취업문, 부조리한 사회제도에도 저항하지 않는 행복한 젊은이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1억 명 모두가 젊은이가 되는 시대, 우리는 그 과도기에 살고 있기에 이제 젊은이가 연령에 관계없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1991년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이를테면 모두가 주택을 보유하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정년 때까지 일을 하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서 자녀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중산층의 꿈이 무너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 시류와 더불어 젊은이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p.309).”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젊은이론은 비단 일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1991년의 사건을 1997년의 우리나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이후로 바꾸면,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젊은이론이 적용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도쿄에서 서울까지 2시가 30분이라는 짧은 비행시간 만큼이나 두 나라는 사회적으로도 가깝다. 때문에 이 책의 해제를 쓴 오찬호 박사는 일본과 한국이 상당히 유사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가 말한 행복한 젊은이들일본에만 존재하는 결정적 차이를 논하며 부럽다고 논한다.

그렇다. 이 책을 덮는 시점에서 나 또한 부러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복잡하게 느껴지는 사회학을 치밀하게 하지만 위트있게 서술한 저자의 역량이, 다른 하나는 비슷한 절망의 시대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공동의 인식이 부러웠다.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한 시대’. 멋진 논리로 치장하지 않아도 그 문장 하나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의 진단이 더 아파하라거나 인문학으로 돌아가라거나 하는 메시지가 만연한 우리나라에 진정한 젊은이에 대한 응원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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