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을 쏘다 - 김상옥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3
이성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 투사

 

 

광복절은 우리 민족에게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뜻 깊은 날이다.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 좋은 일이 되었는지 오늘날의 우리는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다. 바로 물질적인 영달을 위해서 같은 민족을 일러 받치고 더 악랄하게 고문하고 죽였던 친일파들이 더욱 더 그 경제적인 부를 유지하게 되었다니,,, 우리나라는 모든 게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비현실적인 나라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는 대체 무엇일까? 이제 어느 누구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 않고, 먹고 살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는 전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전에 안중근 자서전을 읽고 김상옥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이런 독립투사의 얘기는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더욱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왜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죄를 처벌받지 않게 되었을까? 광복 이후 우리나라를 손쉽게 통치하기 위해 친일파들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 바로 미군이다. 그 이후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우리나라는 결국 6.25 전쟁이 터지고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이 된 상황이니,,, 우리나라의 역사적 현실에는 미국의 잘못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수호해 주는 것이 아직도 미군이라고 믿는 대다수의 국민들에 의해 우리의 남북 통일이나 자주적 독립은 아직도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왜 안중근이나 김상옥은 그들의 아까운 목숨을 버렸을까? 친일파들이 잘먹고 잘사는 이런 현실을 보려고 했던 것일까? 그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이 현실을 보고 뭐라고 했을지,,, 어떤 행동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어차피 김상옥이 친일파나 일본 정치인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자신을 밀고한 사람은 결국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애국심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인데, 한민족으로 부를 수 있는 건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한 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들을 처단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목숨은 어찌 그리도 끈질긴지 혀를 내두를 뿐이다.

 

예전 <각시탈>이라는 드라마나 이 책을 보면 이중 스파이가 등장한다. 실제로 이중 스파이가 존재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중 스파이가 오히려 친일파들의 변명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독립 투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하기는 했지만, 그게 없었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뿐 우리는 스스로 독립을 이뤄냈을 것이다.

 

이러한 독립투사들이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많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친일파가 자신들의 죄에 대해 처벌을 받고 독립운동가들의 올바른 행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고 보상이 뒤따르기를 바란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독립투사가 어떤 의지를 갖고 무엇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임했는지 그 삶을 이해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김상옥의 이야기는 안중근 자서전보다는 소설 형식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조금 더 극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상옥이 준비한 테러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마지막은 그 당시 우리 민족에게는 어떤 자부심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일본에게는 한민족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상으로 만들면 더욱 박진감이 넘치고 화려할 것 같아서 영화로 만들어진 <암살>을 보고 싶어졌다.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무슨 무슨 적을 좋아하는 '적'주의자들 있어요. 혼자 고민을 다 짊어진 것처럼 회의하고 번민하죠. 주로 뭘 좀 배웠다 하는 지식인들이 그러죠. 겉으로는 신중론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한 꺼풀만 들춰 보면 사실은 두려운 거예요. 자기를 완전히 비운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요." (77쪽)

 

숙연해졌다. 나 역시 죽음을 두려워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40일간 고문을 받을 때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죽음은 얼마나 편안하고 달콤하게 느껴지던지, 죽음이 그토록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절망의 끝에는 절망이 없었다. 고통의 끝에서는 고통이 사라졌다. 그 끝에 가장 달콤한 안식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것이 가장 큰 위로였다. (133쪽) 

 

 

* 인터파크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