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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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서클의 단발머리 후배를 짝사랑하는 '나'는 영 숫기가 없어서 고백은 못하지만, 최대한 검은 단발머리 여학생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 방법(일명 '최눈알')을 쓰고 있다. 덕분에 여기저기를 누비는 그녀의 뒤를 쫓다가 온갖 사건에 함께(그녀가 몰라줄 뿐...) 휘말리게 된다.

'나'의 짝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마주칠 때마다 '아, 선배, 또 만났네요' 인사하는 그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지만 엉뚱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굉장히 독특한 사람들과 엮인다. 그녀는 술고래이기도 하고 꽤나 씩씩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본토초에서 낮에는 고리대금업자지만 밤에는 좋은 할아버지(?)인 이백과 그녀가 술로 대결을 하는 봄의 밤, 그녀가 어린 시절 보았던 동화책을 찾기 위해 헌책 시장을 누비다 책을 걸고 불냄비 먹기 대결에 참가하는 '나'의 여름 이야기, 우연히 그녀와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는 가을 학교 축제, 감기가 돌아 모두가 고생하는 가운데 그녀만이 건강하게 여러 사람들의 병문안을 다니는 겨울의 동짓날 밤.. 이렇게 사계절을 꼬박 이어나간 '나'의 짝사랑의 결말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남편과 내가 별을 다섯 개 주면서 킬킬대고 읽은 청춘 판타지 연애소설이었다. 잔걱정과 잡생각이 많아 차마 그녀에게 직진으로 고백하지 못하면서도, 그녀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온갖 고난(?)에 뛰어드는 '나'가 어찌나 귀엽고 짠한지! 언제나 새로운 일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우정을 쌓아나가는 '그녀'의 사고방식은 어찌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지! 이 소설, 정말 엉망진창으로 재미있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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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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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파이 이야기>로 잘 알려진 작가 얀 마텔이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에게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보낸 101통의 문학 편지를 묶은 것이다. 얀 마텔은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문학 작품을 읽는지 알고 싶어하며 여러 장르의 책을 그 책을 추천하는 편지와 함께 격주로 총리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지도자라면 인간과 세계와 삶에 대해 당연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나는 열렬하게 성공을 바라는 지도자에게 "국민을 효과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책을 광범위하게 읽으십시오!"라고 말해주고 싶다.(p.33)

얀 마텔이 받은 답장은 총 일곱 통(이 책에는 얀이 받은 답장도 첨부되어 있다)이었지만, 이렇게 두 명을 멤버로 하는 북클럽은 블로그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져 규모가 점점 커졌고, 캐나다를 넘어 여러 독자들이 함께하는 북클럽이 되었다. 때로는 다른 작가들이 대신 편지를 쓰기도 하며 북클럽에 재미를 더해준다.

얀 마텔은 편지마다 작가와 책에 대한 소개 외에도 책을 고른 이유(도서 선정 기준도 책에 소개됨), 장르에 대한 소개, 그 책을 읽는 좋은 방법에 대한 안내를 담았다. 사진과 사인이 담긴 편지도 있고, 어떤 편지에는 독자들에게 추천받은 책 목록을 길게 덧붙여 도서 목록을 풍부하게 해주기도 한다.

독서 모임에 나갈 여유가 없거나 나처럼 그럴 성격이 안되는 사람들은 책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나 도서들을 통해 마음 속으로 함께하는 '나만의 독서 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01권의 책을 함께 하며 내가 읽은 책에는 반갑게 표시도 하고, 읽어보고 싶은 책은 장바구니에 담아가며 너무나 즐겁게 독서 모임을 마쳤다. 얀이 책에 대해 남긴 멋진 말로 글을 마무리 해본다.

"책은 우리를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책을 계단의 난간 잡듯 손에 꼭 쥐고 있다.(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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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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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며 많은 호평을 받은 <파친코>의 원작이 인플루엔셜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쓴 가족 대서사로, 일제강점기의 부산에 사는 부부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딸이 일본에 건너가 펼쳐지는 4대에 걸친 가슴 아픈 역사다.

"너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아버지가 있데이."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했고 선자는 어머니와 자신을 아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랑스러워했다. (p.120)

가난한 집의 막내딸로 장애가 있는 훈이에게 시집온 양진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인 선자를 애지중지 키운다. 선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하숙집을 꾸리며 생계를 유지한다. 선자는 일본에 가정을 둔 사업가 한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하숙집에 묵으며 결핵을 치료한 백 목사의 청혼으로 구원받는다. 이들 부부는 형의 집이 있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고,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재일교포로서 가정을 이루며 힘들게 살아간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겠지만 넌 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해. 그 집은 잿더미가 될 거야. 집이 없어져도 일본은 그의 고통에 대한 대가로 1센도 주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전쟁이 곧 끝날 거라 캤십니더."
"전쟁이 곧 끝날 테지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는 아니야." (p.316)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처절한 삶과 이들을 버티게 해주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현대의 후손들인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파친코>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팍팍한 삶,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이니치들의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와 목사 가족의 기독교라는 신앙, 가부장적 사고가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가족에게 한없이 다정한 인물마저도 힘든 삶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운명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된 주인공 일가의 모습에 뜨거운 사랑이 느껴진다.

<파친코>는 총 3부작,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4대의 가족들 중 3대인 백노아, 백모자수까지 만나볼 수 있다. 선자의 두 아들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두 형제의 이야기가 이어질 <파친코 2>가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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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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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저마다 보금자리를 찾아다니는 민들레 홀씨들이 공중 가득 눈송이처럼 소용돌이쳤다. 날개 달린 단풍나무 씨앗 하나가 나무에서 떨어져 내가 읽던 책 위에 내려앉았다. 세상은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문자 그대로 생존과 부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p.18)"

코로나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한 권의 책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 <자연Nature>에서 시작되어, 팬데믹 속에서도 각자 제 할일을 하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스물 한 명의 작가들은 바다에서, 산에서, 숲과 연못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움막 그리고 야생 정원에서, 야간 비행을 하는 새들에게서, 로키산에서 천년을 넘게 살아가는 소나무들에게서 자연의 느낀 자연의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슬콘 소나무를 찾아서: 이 굽힐 줄 모르는 다발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공기가 찢기며 쉭쉭 소리를 낸다. 오랜 세월 눈의 무게와 강풍을 견디면서 억센 잎과 탄력적인 가지를 지닌 나무로 진화한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이 이곳에선 수천 년을 간다.(p.64)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린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 귓속 수압은 한결같은 모노톤으로 울린다. 그리고 사방이 움직임이다. (p.131)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자연을 집 안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꽃이 피고 단풍이 지는 자연을 느끼고 싶어서 간절했던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다. 책에 담긴 스물 한 곳의 자연과 스물 한 가지의 경이로움 속에서 누구나 밑줄 치는 문장과 귀퉁이를 접게 되는 페이지를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자연의 웅장함에 겸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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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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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니키는 우연히 여성들의 글쓰기 수업 강사 자리를 맡는다. 알고보니 학생들은 인도에서 영국으로 넘어왔지만 영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과부들.

죽은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재혼도 안되고 평생을 정숙하게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은 니키의 수업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들의 은밀한(!) 판타지를 글로 옮겨 책을 만드는 것!

"인도에서 우린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에요." 아르빈더가 말했다. "영국에 있다고 해도 다르지 않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우린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p.113)

오랜 시간 억눌려서 가슴 깊숙한 곳에만 간직했던 과부들의 욕망은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글이 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교류하는 그들 사이에서는 단단한 연대가 생겨난다.

"이 스토리텔링 수업은 아주 재미있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게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내가 정확히 원하는 게 뭔지를요." (p.418)

한편, 사람들과 친해진 니키는 쿨빈더의 죽은 딸 마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녀는 '우리 문화권 여성들이 수치스러울 때 선택하는 방법(p.270)'인 분신으로 자살한 것이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인 마야가 그런 사고 방식으로 목숨을 끊은 것은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대학을 중퇴한 이후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던 니키는 글쓰기 수업, 제이슨과의 연애, 마야의 자살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는 일을 해나가며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소설의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길!

여성들의 연대와 욕망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나이의 여성들이 솔직하게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책은 이 소설이 차음이었다. 이렇게나 책 속의 사람들을 응원한 것도 처음! 소설 마지막의 추리 한 스푼,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의 목표를 세우는 니키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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