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뜬구름
찬쉐 지음, 김태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웃한 두 부부 겅산우와 무란, 쉬루화와 라오쾅은 서로를 은밀하게 훔쳐보고 감시합니다. 집밖에는 무거운 닥나무 꽃송이들이 비를 맞고 떨어져 바닥을 가득 메워요. 꽃향기에 취한 사람들은 밤새 꿈을 꾸고, 집안에는 축축한 버섯이 피어올라요. 소설 속에는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 관계,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이웃들, 금붕어가 죽어나가고 쥐와 거미가 기어다니는 음울한 동네가 그려집니다.

찬쉐의 소설을 좋아하시나요? 몽환적이고 섹시한 분위기가 나는 동시에 불쾌하고 더럽기도 해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인물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내뱉어 서로 대화도 되지 않고요. 그런데 이렇게 환상적이고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추한 욕망을 드러내는 게 찬쉐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뚜렷한 서사보다는 감각으로 읽어내려가는 매혹적인 소설, 꼭 만나보세요!

“누군가 뭔가를 잃어버리고는 떨어진 꽃들 사이로 찾으러 다녔던 것이 분명해. 내가 다 셀 수도 없는 발자국들을 발견했다고….” (p.20)

“내가 꿈을 꾸다가 깨서 몸을 뒤척이다 보면 당신도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마 당신도 바로 그 순간 꿈에서 깼을 거예요. 그 꿈이 공교롭게도 내 꿈과 똑같았을지도 모르지요.” (p.48)

‘황혼 무렵에는 항상 무수히 많은 작은 소리가 울려 무척이나 소란스럽고 불안했다. 이 모든 것의 뒤에 거대하고 저항할 수 없는 파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p.138)

•열린책들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공의 빛을 따라 암실문고
나탈리 레제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 협찬]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나탈리 레제가 죽음과 살아남음에 대해 쓰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그 진리, 사랑의 진리, 그것만큼은 알고 있다.” (p.13)

작가 나탈리 레제가 남편 장-루 리베이르를 잃고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 그리움을 써낸 글입니다. 그는 ‘마침표는 사랑이야(p.20)’라며 결코 끝나지 않는 사랑을 고백하고, ‘죽은 사람을 현재형으로 말하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p.49)’ 새로운 문법과 동사변화의 필요를 느낍니다.

홀로 돌아온 집에서 그는 애도를 넘어 공포에 잠깁니다. 책과 영화, 집안 구석구석에서 남편의 존재를 계속 느끼고요. 이는 담담한 글 속에서 남편에게 전하고 싶은 외침, 그를 붙잡으려고 자꾸만 뒤돌아보고 싶은 열망으로 표현되어 독자의 마음을 울립니다. 짧지만 순간순간 강렬한 감정을 느낀 독서였어요.

“들어줘. 너를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어줘.” (p.21)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조각들
연여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유일한 바깥이거든요. 꿈은.” (p.69)

SF가 이렇게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울 수가 있나요? 여기는 신체를 강화하고 우주 곳곳을 다니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의 세상. 신체 강화 수술을 받지 않은 ‘오가닉’의 작품만을 인정하는 예술계 때문에 천재 화가 ‘소카’는 폐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고로 인해 ‘흑백증’을 앓는 화자 ‘뤽셀레’는 신체 강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카의 저택에 청소부로 고용됩니다. 색을 잃은 뤽셀레와 예민한 예술가 소카는 질문을 통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결핍과 진실을 마주합니다.

“저 아득한 시간 속에서 하필 우리가 지금 함께 있는 건, 사실 엄청난 확률인 거지. 당신은 운이 좋아.” (p.45)

‘그 풍경을 꼼짝없이 오래 응시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또 나를 하필 지금 이곳에 있게 한 모든 확률을.’ (p.227)

따스하고 아름다워서 다가오는 겨울에 읽기 좋은 뤽셀레와 소카의 쌍방 구원 서사는,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결핍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요.

<빛의 조각들>은 밀리의서재 별점 4.7의 믿고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옥토 작가의 아름다운 표지에다, 종이책에만 ‘외전’인 <물거품 씨에 대하여>가 실려있답니다. 그러니 꼭 실물 종이책으로 만나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과학의 가장 역동적인 주제 '식물지능'의 놀라음을 전하는 책입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전기 신호를 주고 받는 식물 감각 체계의 최신 연구 결과를 모두 모아 경이로운 식물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식물은 서로 소통하고, 주변 동식물을 이용하고 흉내냅니다. 기억을 가지고 자신이 터득한 기술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요. 식물들이 이동 없이 한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인하고 똑똑하다는 증거죠.

“시계꽃passionflower의 몇몇 종은 작고 노란 공들로 장식한 것처럼 보이는 잎을 내는데, 이 둥근 구들은 나비의 알과 상당히 닮았다. 나비들은 자기 알들이 부화했을 때 경쟁이 심한 환경에 처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미 다른 알들이 있는 잎에는 자기 알을 잘 낳지 않는다. 시계꽃은 굶주린 수십 마리 애벌레의 첫 식사가 되는 시련을 모면한 셈이다.” (p.294)

“노란 물꽈리아재비는 포식자들에게 노출되면, 잎에 가느다란 방어용 가시가 돋아선 자식들을 만든다. 파괴적인 애벌레들의 대대적 공격을 뚫고 살아 같은 서양무아재비는 잎에 유난히 억센 털이 무성한 아기 서양무아재비를 만드는데, 이에 더해 이 아기들은 적의 위협을 더 잘 막아내도록 방어용 화학물질까지 미리 장전하고 있다.” (p.369)

식물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식물의 생태에도 관심을 갖게 될텐데요. <빛을 먹는 존재들>은 페이지마다 최신 연구 성과들로 가득 차있어 놀라움의 연속이랍니다. 인간, 인간과 유사한 동물만이 지적이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이제 벗어나 볼까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애나 펀더는 권력에 관해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한 조지 오웰에 대해 찾아보다가 그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를 알게 됩니다. 심리학 교육을 받은 옥스퍼드 졸업생이었던 아일린은 오웰에게 <동물농장>을 '우화'로 쓰기를 권유하고 <세기말, 1984>라는 시를 써서 이후 오웰에게 소설 <1984>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하죠. 그런데, 우리는 아일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저자는 오웰과 그의 전기 작가들이 ‘아일린 오쇼네시’를 의도적으로 지웠음을 주장합니다. 오웰이 스페인 전쟁에 참전하고 부상을 입은 동안 아일린은 정보부 검열과에 들어가서 아픈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오웰에게 정보부(이후 <1984> ‘진리부’의 모티프) 일을 알아봐 주었고요. 그럼에도 오웰은 아일린을 서른일곱 번의 ‘내 아내’라고만 언급할 뿐입니다.

가장 노릇을 하고, 작품의 아이디어를 주고, 전쟁 속에서 자신과 동료들을 구해냈던 아일린을 두고 오웰은 오히려 다른 여성들을 갈망(+수차례 강간미수)합니다. 아일린은 아들을 입양하는 법적 절차를 밟는 날에도, 암 수술을 받는 날에도 혼자였다가 서른 아홉에 사망합니다. 아일린의 인생을 바쳐 조지 오웰은 역사에 위대한 작가로 기록되고요. 이 책은 그런 아일린의 이름을 되살리는 책입니다.

“이 세상은 여성들의 무급 노동 위에서 굴러갑니다.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돌봄노동이 여성 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분리되는 것, 그래서 남성 동반자와 좀 더 공평하게 노동을 분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p.574, 한국 독자들을 위한 짧은 해설)

“여성의 행위를 누락하는 가장 교묘한 방법은 수동태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고는 타자 치는 사람 없이 타자로 쳐지고, 목가적인 환경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 없이 존재하고, (중략)” (p.101)

“가부장제야말로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도록 허용해 주는 이중사고다.”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