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올리브 (사인인쇄본) ㅣ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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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올리브 - 김초엽


-이레는 사랑에 빠졌다. 처음으로 여기가 자신이 있을 곳이라고 느꼈다. 잘못된 장소에 잘못 자라난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p.22)


-증명하고 싶지 않았나? 자신에게도 속할 곳이 있다는 것을. 잘못된 곳에 잘못 자라난 올리브가 아니라는 것을. (p.93)


-그러니까, 영혼을 증명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p.103)


-이레가 알 수 있는 건 딱 하나, 자신의 마음뿐이다. 뽑혀나가고 싶지 않다. 설령 자신이 잘못된 올리브라고 해도. (p.114)


-

올리브 나무는 야생에서 홀로 자랄 수 없다고 한다. 이레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란 올리브를 봤다. 마치 그 올리브가 자신 같다고 느끼는 이레는 그동안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헤매다 수녀가 되었다. 이레에게는 오래전 어떤 사건으로 멀어진 친구 솔민이 있다. 어느 날 솔민은 푸른아녜스 수녀회를 조사해 달라는 의문의 의뢰를 받게 된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김초엽 작가님의 장편 소설을 오래 기다려 온 만큼 재미있었다. 성격도 다르고, 믿음과 신앙을 바라보는 태도도 다른 두 사람이 떠난 동남아 로드트립에 살짝 신나기도 했다(두 사람은 도망치는 중이었지만..). 그만큼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처음엔 비교적 현실적인 배경이라 의아했는데, 현실과 밀착된 SF를 잘 쓰시는 분인 만큼 이번 이야기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너무 좋았다. 가제본 서평단 신청 조건이 ‘절대 스포 금지’였던 것처럼, 후반부 반전이 정말 중요한 소설이었다. 


스포하지 않는 선에서 감상을 남기는 게 어렵기도 하다. 우선 이 책은 인간의 본질을 찾는 여정이다. 합성된 뇌에 영혼이 깃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렇게 끊임없이 묻는다. 이레의 뇌는 합성 뇌였고, 인간의 영혼이 깃들지 않은 뇌를 가진 이레는 수녀회에서도 배척당하게 된다. 이레가 태국으로 떠나게 된 건 어릴 적 자신을 가르친 준 이모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라프트라는 조직에 쫓기는 동안에도 이레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독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인간의 영혼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고 어떤 것이 인간다운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이레의 따뜻한 마음씨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기차에서 약자에게 자리를 바꿔주는 이레의 행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다정함을 믿고 싶어지게 만든다.


377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것 같다. 깨달은 올리브처럼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다짐을 주는 소설이라 더욱 이 책이 더 좋았다.


-서평단 도서입니다.


#태양아래올리브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버디물 #로드트립 #김초엽장편소설 #김초엽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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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라이프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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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라이프 - 히가시노 게이고


-설령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자신은 앞으로도 진실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리라고 고스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p.39)


-나오미의 생각에는 형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이 벗겨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형사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는 호텔리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p.131)


-“마음속에 가면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때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가면을 벗고서 살아가죠. 그렇기에 인생이 풍부하고 즐거워지는 거고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p.247)


-

호텔 코르테시아 도쿄.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를 읽어 왔던 독자라면 익숙한 호텔 이름이다. 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인 「매스커레이드 라이프」에서는 전작에서 경찰을 그만두고 호텔 보안과장이 된 닛타와 여전한 나오미 콤비를 만날 수 있다. 미스터리 신인 문학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가 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만약 수상하게 된다면 행방이 묘연한 용의자가 반드시 시상식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경찰은 닛타와 나오미에게 수사 협력을 요청한다. 한편, 닛타의 아버지 가쓰히사도 이 호텔에 묵으면서, 과거 3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미스터리와도 조우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답게 전개도 빠르다. 호텔에 용의자로 추정되는 도키와라는 남자가 나타나고, 피해자의 여동생도 호텔에 묵는다. 딸의 남자 친구를 소개받을 것 같다며 등장한 후쿠나가 모녀도 있다. 닛타의 아버지 역시 삼십 년 만에 여행에서 돌아온 누군가를 만난다고 한다. 출판사 직원들과 심사위원들도 차례로 등장하며 소설에 재미를 더한다. 이렇게 호텔에 저마다 가면을 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야기는 얽히고설키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범인을 계속 추리하면서 읽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누군가의 가면이 벗겨지며 반전이 드러난다. 짐작하지 못한 인물의 가면이 흥미로웠고 짐작하던 것과는 또 다른 결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해와 안타까움, 그리고 괘씸함 등의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용서와 속죄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도 고민해 볼 문제다.


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는 인간의 가면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째서 그런 가면을 쓰게 되었는지, 왜 그런 가면을 써야 했는지 그 인물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조금은 모두를 이해하게 된다. 내가 여타 일본 추리소설 작가보다 유독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여름의 추리소설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언제나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이 게시물은 서평단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매스커레이드라이프 #히가시노게이고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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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재버워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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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재버워크 - 이사카 고타로


-남편은 죽었다. 죽어 있다. 지난달에 서른여섯 살이 되었는데 지금은 죽어서 쓰러져 있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죽였다. (p.10)


-“편의상 우리는 그것을 재버워크라고 부릅니다. (p.76)


-동물 가운데 이토록 온후한 종도 없고, 이토록 잔인한 종도 없다. (p.180)


-

‘재버워크’는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괴물 이름이라고 한다. 재버워크가 인간의 폭력성을 해방하는 바이러스라는 책 소개를 먼저 본 후에 읽기 시작해서, 바이러스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도입부는 전혀 아니었다. 무려 ‘남편을 내가 죽였다’는 료코의 독백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료코가 쇠망치를 휘두른 것이다. 망연자실한 료코 앞에, 가쓰라 고고로라는 대학 후배가 갑자기 나타난다. 가쓰라와 함께 남편의 시체를 묻으러 간 산에서 기절한 료코가 깨어났을 때는 모르는 사람들이 서 있다. 하마야와 에마라는 부부다. 두 사람은 재버워크를 가지고 도망친 가쓰라를 쫓아야 한다며 료코를 데리고 간다. 료코는 아들 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지만, 재버워크를 쫓는 활극에 휘말리고 마는데.


재버워크는 뇌에 붙으면 숙주가 죽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숙주가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재버워크가 떨어져 나오게 만든 다음 거북이에 옮긴다. 거북이에게 옮긴 이유는 아마도 오래 살아서? 또는 느려서 폭력성이 해방돼도 큰 피해가 없을 것 같으니까? 이런 상상들을 해보며 책을 읽었다. 서평단 신청하고 받은 거북이 키링이 이렇게 연결되어 왠지 더 애틋해진 느낌.


이 소설의 다른 축은 20년 전 은퇴한 가수 호쿠사이와 그의 매니저 도마다. 호쿠사이의 딸 우타코가 재버워크에 감염돼서 하마야 부부의 도움을 받았다. 소설은 료코와 도마의 시점으로 교차 전개되며 쉴 틈 없이 달려간다. 촘촘하게 연결된 인물들의 서사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했다. 결과는 스포할 수 없지만, ”입구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출구에 도달한다“는 책 소개 문구 그대로다. 


인상 깊었던 건 인간이 온후한 종이자 잔인한 종이라는 거다. 인간의 잔혹성이 재버워크라는 바이러스를 통해 해방되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그럼에도 인간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시된다. 마침내 나는 출구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 같은 전개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답다. 어둡지 않은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더 재밌게 읽었다.


-이 게시물은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굿바이재버워크 #이사카고타로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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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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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 은희경


-누구에게나 어떤 식으로든 그 몸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있다. (p.13)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경선이 기다린 건 어떤 한 계절이 아니었다. 계절의 주기와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실험하고 느껴보고 싶었다. (p.113)


-그의 말처럼 낯선 장소는 때로 여행자를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또 그 장소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대의 버튼을 갖고 있다. (p.203)


-삶이란 그처럼 의미가 다른 여러 개의 시간이 겹쳐져 흘러가는 게 아닐까. 몸의 일상은 현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p.284)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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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빛의 과거」를 잇는 은희경 작가의 시간 3부작 마지막 소설. 작가님의 장편 소설을 기다려 왔던 만큼, 기대하며 책을 집어 들었고 다 읽은 지금은 그저 너무 좋고.. 좋다. 전작들처럼 이번에도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술술 읽히는 문장력 덕분에 단숨에 읽었다.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그리면서도 마치 내 옆에 살고 있는 익숙한 인물들의 모습이라는 데서, 은희경 작가의 통찰력을 느낀다. 안나와 경선의 성격이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로웠다. 나는 안나처럼 살고 싶기도 했고 경선인 부분도 있었고 안나와 비슷하다고도 느꼈기 때문이다.


1월생인 안나와 12월생인 경선은 동갑이자 서로 너무 다른 자매다. 11개월 차이의 두 사람은 어느덧 60대가 되어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이가 멀어졌던 자매는, 암 진단을 받은 경선의 간병을 안나가 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안나가 경선의 손녀인 다니엘을 돌보게 된 후, 세 사람은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인상 깊었던 건 여행지에서 세 사람이 ‘우리의 첫’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한 명이 ‘우리의 첫!’이라고 외치면 나의 ‘첫’〇〇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건 여행, 사랑, 책, 선생님 등 다양한 경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게임을 통해 자매는 서로가 모르던 것을 알아가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한다. 우리의 처음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먼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다고 하던 한 배우의 말도 떠오른다. 삶의 저녁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 역시 더 너그러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조금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자고 생각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침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갑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을 「시간의 감촉」을 읽으며 해소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게 유쾌하지 않았는데, 안나가 다니엘에게 해준 말인 ‘되도록 걱정은 하지 말고 기분 좋은 일을 계속 떠올려 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마법의 주문 같다. 앞으로의 시간은 기분 좋은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시간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몸인데, 몸은 또 각자 개인의 고유한 것이다. 수술한 경선의 고통도 타인이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안나의 남보다 큰 몸도 각자의 개성이며 내가 감각하고 사고하는 것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내 몸 안에 남아 있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은 시간도 내 안에 소중한 기억으로 머무르겠지. 시간에 관한 소설인 만큼 어떤 세대가 읽어도 좋을 소설 같다. 나와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안나와 경선의 나이를 향해 가는 우리 엄마에게도 추천할 생각이다.



#시간의감촉 #은희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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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 이리가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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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에서 이리가 - 윤강은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진군하지 않고 도망친 자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p.53)


-네가 나를 구원한 이유가 내가 나를 버린 이유이고, 네가 동경하고 시기하는 내 모습을 나는 온 힘을 다해 증오하고. (p.90)


-정말로 인간들은 얼어 죽기 직전까지도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막막함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p.120)


-유안은 누군가 이 생명도감을 집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대단한 사명감도 이타심도 아닌, 그저 잊고 싶지도, 잊히고 싶지도 않은……. (p.133)


-유안은 씨앗을 떠올려 보았다. 눈 속의 씨앗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들. 낯선 욕망에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그런 존재들을 더 알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었다. (p.141)


-저편에서 어느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려왔다.

언제 다다르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저편에서. (p.157)


-

망한 세상에서도 생존과 사랑을 말하는 소설. 대멸종 시대가 된 한반도에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세 개의 구역이 있다. 가장 남쪽의 ‘온실 마을’, 무기를 생산하는 중부 지역인 ‘한강 구역’, 그리고 대륙과 국경을 맞댄 북부의 ‘압록강 기지’다. 설원을 배경으로 개 썰매를 타고 한반도를 질주하는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이기도 하다. 유안은 온실 마을에서 생산한 식량과 물자를 다른 구역으로 나르는 짐꾼이다. 한강 구역에서 같은 짐꾼이자 차기 구역장으로 내정된 화린을 만난 유안은 서서히 친해지게 된다. 화린에게는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군인이 되어 압록강 기지로 간 친구 기주와 태하가 있다. 현재 태하는 대륙으로 건너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고, 기주는 대륙에서 넘어온 백건과 가까워진다.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완전한 멸망을 앞두게 된다. 대륙이 일으킨 전쟁으로 모두는 생존을 위협받는다. 기주와 백건은 전쟁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 아닌 도망을 택한다. 화린과 유안도 각자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설원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먼 미래의 지구가 눈으로 뒤덮인 설정과 배경 설명이 탄탄해서 읽는 동안 몰입감이 컸다. 속도감이 빨라 좋았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대의를 위해 싸우다가 죽지 않고, 생존을 위한 질주를 선택한 것이 인상 깊었다. 소설 속에서뿐만이 아니라 지금이 생존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언제부턴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를 살게 되었다. 한 개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끔 잊고 지내는 게 아닐까 싶은 시대에 이런 소설의 등장은 너무나 반갑다. 


저편에서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는 살아남은 생물이 전해주는 희망 같다. 생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이 좋았다. 서로를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연대가 있기에 삶은 계속될 것이다. 척박한 설원에서도 언젠가는 싹을 틔울 씨앗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주 작은 희망 하나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 곁에 나를 기억하고 너를 기억해 줄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이 게시물은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편에서이리가 #윤강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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