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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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 은희경


-누구에게나 어떤 식으로든 그 몸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있다. (p.13)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경선이 기다린 건 어떤 한 계절이 아니었다. 계절의 주기와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실험하고 느껴보고 싶었다. (p.113)


-그의 말처럼 낯선 장소는 때로 여행자를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또 그 장소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대의 버튼을 갖고 있다. (p.203)


-삶이란 그처럼 의미가 다른 여러 개의 시간이 겹쳐져 흘러가는 게 아닐까. 몸의 일상은 현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p.284)


-‘우리의 첫’에 대한 기억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최근’과 ‘우리의 다음’이 되기도 한다.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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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빛의 과거」를 잇는 은희경 작가의 시간 3부작 마지막 소설. 작가님의 장편 소설을 기다려 왔던 만큼, 기대하며 책을 집어 들었고 다 읽은 지금은 그저 너무 좋고.. 좋다. 전작들처럼 이번에도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술술 읽히는 문장력 덕분에 단숨에 읽었다.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그리면서도 마치 내 옆에 살고 있는 익숙한 인물들의 모습이라는 데서, 은희경 작가의 통찰력을 느낀다. 안나와 경선의 성격이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로웠다. 나는 안나처럼 살고 싶기도 했고 경선인 부분도 있었고 안나와 비슷하다고도 느꼈기 때문이다.


1월생인 안나와 12월생인 경선은 동갑이자 서로 너무 다른 자매다. 11개월 차이의 두 사람은 어느덧 60대가 되어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이가 멀어졌던 자매는, 암 진단을 받은 경선의 간병을 안나가 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안나가 경선의 손녀인 다니엘을 돌보게 된 후, 세 사람은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인상 깊었던 건 여행지에서 세 사람이 ‘우리의 첫’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한 명이 ‘우리의 첫!’이라고 외치면 나의 ‘첫’〇〇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건 여행, 사랑, 책, 선생님 등 다양한 경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게임을 통해 자매는 서로가 모르던 것을 알아가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한다. 우리의 처음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먼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아직 안 해본 게 너무 많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다고 하던 한 배우의 말도 떠오른다. 삶의 저녁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 역시 더 너그러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조금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자고 생각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침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갑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을 「시간의 감촉」을 읽으며 해소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게 유쾌하지 않았는데, 안나가 다니엘에게 해준 말인 ‘되도록 걱정은 하지 말고 기분 좋은 일을 계속 떠올려 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마법의 주문 같다. 앞으로의 시간은 기분 좋은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시간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몸인데, 몸은 또 각자 개인의 고유한 것이다. 수술한 경선의 고통도 타인이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안나의 남보다 큰 몸도 각자의 개성이며 내가 감각하고 사고하는 것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내 몸 안에 남아 있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은 시간도 내 안에 소중한 기억으로 머무르겠지. 시간에 관한 소설인 만큼 어떤 세대가 읽어도 좋을 소설 같다. 나와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안나와 경선의 나이를 향해 가는 우리 엄마에게도 추천할 생각이다.



#시간의감촉 #은희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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