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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여성은 구여성과 다른 삶을 살았을까? - 구효부 vs 신문물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5
손경희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역사공화국 / 왜 신여성은 구여성과 다른 삶을 살았을까? / 한국사법정
1920년대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할 즘 나타난 신여성은
짧은 단발머리와 뾰족구두, 종아리가 드러난 통치마로 대표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기존의 구여성들과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서구 문물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오면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여식이나 배움의 의지가 있는 여성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삶을 떠나 신식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관례였던 조혼의 나이를 훨씬 넘어 결혼 적령기를 놓치게 되고
유학에서 공부를 하며 함께 한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되지요.
가족들을 어린 아내에게 떠맡기고 유학길을 떠난 남자들은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신여성들과 함께 공유하고 거기서 사랑을 키워 가는데요,
이러다 보니 유학 후 돌아온 남편은 조강지처에게 이혼을 요구하게 되었답니다.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은 남녀평등, 자유연애, 자유결혼을 주장하고
그와는 상대적으로 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구여성들은 신여성들의 삶이 좋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댁에 시집와서 아이를 키우고 시댁 어른들을 모셨던 구여성들..
이들은 유학파인 남편과 사랑이 전제가 아닌 호적상으로만 부부인체 생활을 하게 되고
교육을 받은 신여성 역시 본처보다는 첩이나 후처, 독신으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신여성들이 제2부인,
즉 남의 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했음에도
현실적으로 일제 식민지하에서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신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밥이나 하고, 남편의 등 뒤에서나 사는 것이 전부라는 식으로 왜곡되었던 구여성들의 삶 역시
그들이 한 가정을 굳건하게 지켜 주었기에 남자들이 공부를 하고
그 공부가 바탕이 되어 사회를 변화 시킬 수 있었음을 한국사 법정이 밝혀 주었습니다.
이번 법정을 통해 그동안 구여성들에 대해 잘 못 알려져 있던 오명을 씻어내고
신여성과 구여성의 삶이 비록 확연하게 다르기는 했지만
그 시대에 맞게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