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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평점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절에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 구절은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의 시작 부분으로, 우리말로 조금 더 풀어쓰자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돕는 반야의 지혜를 담은 경전, 관자재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아주 깊이 실천할때..."라는 뜻이다. 그 뒤로는 세계가 모두 공이라는 것을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반야심경의 메세지가 길게 이어진다. 절에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읊거나, 적혀있는 것을 함께 소리내어 읽기도 하지만 보통 한자음만이 적혀 있기에 그 속뜻은 대부분 알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역시 어렸을때부터 엄마를 따라 절에 가고, 군대에서도 주말에 바람이라도 쐴겸 근처 불교행사를 하는 법당에 다녔지만 뜻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건너가는 자>는 철학자 최진석이 반야심경을 풀이한 책이다. 알 수 없는 한자로 이뤄진 불경의 고루한 이미지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너무 뜬금없다는 느낌을 가지기 쉽지만, 사실 반야심경은 매우 철학적인 내용이며 "깨달은 자, 부처"로 불린 석가모니가 인식하였던 세계관이 매우 압축적으로 간결하게 담겨져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는 설화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흔히 남을 무시하고 나만 잘났다 라는 의미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알고보면 석가모니가 자신이 인간 개체 중 가장 뛰어나거나 인간을 대표함을 자랑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실은 깨달은 존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말로, 보통 잘 모르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문장인 "삼계개고 아당안지"(고통 속의 세상을 이미 깨달은 내가 도와 마땅히 평안하게 해야만 한다라는 의미)와 연결된다. 즉, 부처로서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에 뒤따르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선언인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는 부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아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에서 자신이 이루어야할 소명을 알아야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며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에 다름아니다. 실제로 대중과 함께하는 대승불교에서는 모두가 부처로서의 자격과 성질을 갖고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여 세상에 고통받는 것이며, 그만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전한다. 누구나 부처와 같이 내 내면의 우주안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인 <건너가는 자>의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반야심경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게 돕는 경전"이다. 나를 알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추구함이 곧 게으른 상태를 버리고 부지런히 새로운 곳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에게 종속되어 끌려가고, 낡은 곳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 항상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부지런해야만 한다.
저자는 반야심경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에서 시작하여 개인적 경험과 종교적 지식, 그리고 다양한 철학적 지식들을 두루 곁들이기에 반야심경이 주는 어려운 이미지가 무색하게 흥미롭고 쉬운 책이다. 동양철학을 오래 연구해온 학자의 깊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여 사고를 확장해주었다. 생각보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당분간 여러번 읽으며 곱씹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