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이해한 유인원 - 인류는 어떻게 문화적 동물이 되었을까
스티브 스튜어트 윌리엄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데이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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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SF 소설이나 우주과학 관련 책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진화에 관한 책이다.

좌측 상단에 적힌 '인류는 어떻게 문화적 동물이 되었나'라는 부제목이 책 내용을 훨씬 더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담긴 표지 사진에 책 내용도 '뭔가 근엄하고 진지해서 지루할 것만 같다'라는 편견을 줄 수 있는데, 완독한 소감으로 먼저 말하자면 이 책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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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인 진화적인 부분과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특성인 문화적인 부분이 모두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다.

특히 인류가 보여주는 정신적인 특징 중 상당수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문화적인 것에 기인한다는 주류 (사회) 심리학적 분석에 반기를 들고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들이 진화를 좀 더 공부한다면 그런 결론에 다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책 전반에 걸쳐(심리학자들을 까면서) 진화적인 부분이 현재의 인류의 육체적, 정신적 모습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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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유전자 기계인가 밈 기계인가?

이와 관련하여 가장 정확한 표현은 철학자 대니얼 데닛에게서 나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와 밈의 혼종이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유전자와 밈의 의제가 서로 상충하는 변종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외계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이 책의 여정에서 우리가 채택할 관점이다.

(pg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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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라는 대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저자는 "태양계 밖에서 온 성별 구분이 없는 외계 생물학자가 지구와 인류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사고실험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역시나 우리를 계속 번성하게 하는 불멸의 주체이자 이기적인 주체인 '유전자'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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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라는 개념을 '개체' 중심이 아닌 '유전자' 중심으로 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초반의 논지를 잘 파악하고 넘어가야 이후의 설명이 매끄럽게 이해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유전자' 중심의 진화가 익숙해서인지 이어지는 성 선택과 육아 방식, 그리고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에 이르기까지 현재 인류를 형성해온 인간 진화의 경과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인류가 보여주는 부분적인 특징들을 공유하는 (유인원조차도 아닌)동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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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언제부턴가 남성과 여성의 단순한 기호 차이(남아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여아는 인형을 좋아하는 등)조차도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가 사회과학 분야의 주류 시각이 되었다.

하지만 진화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선택압들의 작용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축적된 결과물인 것이다.

​

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가?

이는 과거 수렵채집 시절부터 더 큰 사냥감을 사냥하고, 더 위험한 적들로부터 공동체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공격적인 남성이 성적으로 더 선택받을 확률이 높았고, 때문에 그러한 유전자가 온순한 남성의 유전자보다 더 널리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부터 "남자아이들은 좀 과격해도 돼"라는 식으로 주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

공작의 꼬리에서 확인했듯 배우자 선호는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진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배우자 선호가 우리의 신체를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 또한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심리적 특성은 신체적 특성과 마찬가지로 십중팔구 부분 유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pg 87)

​

물론 저자도 문화적인 측면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하거나(문화가 내재된 특성을 강화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공격적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방향으로 엄청난 반박을 받아왔던 것인지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의 논지를 매우 일관적으로 논리정연하게 펼치고 있으므로 쭉 정독하다 보면 저자의 주장에 꽤나 수긍하게 될 것이다.

특히 6장은 이러한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문화를 통해 전수되는 요소들 역시 마치 유전자처럼 기능하며 전수된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특정 성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성향들이 해악을 유발한다면

모든 권리와 근거를 동원해 근절해야 한다.

가령 남성이 선천적으로 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 남성 전형적 행위의

억제를 추구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폭력을 둘러싼 성 차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 조치가 정당한 것은 폭력이 유해하기 때문이지,

성 차이가 본질적으로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성 차이들에 있어서는 - 그 누구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

차이들의 경우에는 -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일 수 있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나?

(pg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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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얻은 지식도 많은 것 같아서 소개가 길었는데, 그만큼 최근에 본 과학 교양서 중에서는 손꼽히게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후미의 참고 목록을 제외해도 500페이지 정도로 두꺼운 편인지라 담긴 정보의 양도 꽤 많은데 저자의 설명이 꽤나 친절한데다 툭툭 던지는 농담도 많아서 읽는 과정이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처럼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새로운 시각도 많이 담긴 책을 만나서 기분 좋게 읽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문화의 진화는 우리 종의 궁극적인 '게임 체인저'였다.

어느 중립적 관찰자가 유인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준을 훨씬 넘어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우리의 바람과 변덕에 맞춰 세계의 개조를 시작하게 해주고 우리 종의 진화뿐

아니라 지구상 다른 모든 생명의 진화를 관장할 힘 또한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굉장한 책임이며, 우리가 수행하기에 적합할 수도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 책임이다.

(pg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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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소년 탐정단 ㅣ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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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작품을 좀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작품들이 대체로 재미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읽고 나서 조금만 지나도 곧 까먹어버리는 작품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이 작품은 후자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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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그렇게 계획성 있게 하는 편은 아닌지라 가끔 읽는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시노부 선생님, 안녕!'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지는데 그 작품을 먼저 읽는 바람에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특성상 책 읽는 순서가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

작품의 주인공은 '시노부'라는 초등학교 6학년 교사다.

마치 만화 '명탐정 코난'처럼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인데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뻥뻥 터진다.

이 책에서도 350페이지가 채 못 되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총 다섯 건의 사건이 발생한다.

각 사건들마다 아주 조금씩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들이 있고 이를 추적하는 형사들이 '시노부'라는 걸출한 여장부의 도움으로 해결해 가는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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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는 소동이 벌어진 다음이 아니라 벌어지기 전에 연락을 주실 수 없을까요.

그래 주시면 참 도움이 되겠는데요."

"언제 어디서 무슨 소동이 벌어질지 제가 어떻게 안다고 그러세요."

"그게 정말인가요? 저는 선생님이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미리 알고 끼어드는 줄 알았는데."

(pg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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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섯이나 죽어나가는 이야기를 두고 '가볍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다소 어폐가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꽤 가볍다고 표현하고 싶다.

특히 저자의 작품들이 그다지 무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더 가볍게 읽힌다.

저자 특유의 가독성 좋은 문체에 적당한 유머가 곁들여져 책장이 금방 넘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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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한 사건의 호흡이 그리 길지 않으니 아무래도 오래도록 고민하는 맛이라거나 사건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경험을 해보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짧은 이야기 안에 어리지만 걸출한 활약을 펼치는 그녀의 제자들과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성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등장인물들까지 녹여 넣으려니 아무래도 이야기가 얕을 수밖에 없다.

후반부에 실린 작품 해설에서 오사카 출신의 '시노부'가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데 번역본으로 즐기는 입장에서는 오사카 사투리를 느껴볼 수도 없으니 그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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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의 작품답게 킬링타임으로는 꽤나 적합한 작품이고, 책을 꽤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한나절 정도면 완독할 수 있을 작품인지라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추리소설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해도 좋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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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킹버드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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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던 중 불현듯 학창 시절에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를 배웠던 기억이 났다.

다른 이유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단 하나의 이유가 기억에 남는데, 바로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였다.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라는 말이 나온 지도 한참 되었지만 '읽기'라는 행위가 주는 원초적인 즐거움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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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문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 작품이 '읽기'라는 행위 자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가 1980년대였는데, 극한의 개인주의를 향해 치닫는 현대의 우리 사회 모습이 지속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제대로 상상하고 있는 작품이다.

​

본 작품의 세계에서는 로봇 기술 발달이 극에 달해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로봇까지 제작하기에 이른다.

'메이크'라는 시리즈 이름에 넘버링이 붙어 얼마나 발전된 로봇인지를 모델명으로 알 수 있는데, 그중 '메이크 나인' 모델인 '스포포스'라는 로봇이 작품의 시작을 연다.

그는 설정상 가장 발전된 형태의 로봇이며, 로봇이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되자 자신의 동력을 끊거나 핵심 부속을 파괴하는 일이 발생하여 스스로는 죽을 수도 없게 프로그래밍된 로봇으로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역할을 도맡아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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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로봇이 세상에 등장하자 진짜 인간들은 마약과 안정제를 공급받으며 마치 사육되듯, 그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도 해방되며 심지어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와 사유의 괴로움마저 거세된 채 살아가고 있다.

마약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표현할 수 없는 허기를 느끼는 자들은 심지어 분신이라는 행위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사회에 어느 날 스스로 읽기를 깨친 '벤틀리'라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아내고 있다.

나는 읽기 위해서 글을 쓴다.

읽기는 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기묘하고 신이 나는 어떤 감정을 일깨운다.

(pg 128)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끊임없이 언어를 흡수하듯 그는 글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세뇌된 사회에 저항하며 한 동물원에서 노숙자처럼 살아가던 여인을 만나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 둘은 끝없는 읽기의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읽기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교묘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철두철미하게 공유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심각한 개인 영역 침범에 해당되며 3세대와 4세대, 5세대 헌법을 직접 위반합니다.

읽기 교육도 마찬가지로 개인 영역과 인격 보호에 반하는 범죄입니다.

(pg 158)

​

무언가 계속 고장 나기만 하는 세상을 끝없이 고쳐야만 하는 '스포포스'는 죽음을 꿈꾸지만 그 스스로는 결코 그 꿈에 다다를 수 없다.

제목인 '모킹버드'는 다른 동물의 울음을 따라 하는 '흉내지빠귀'라는 새인데, 제목처럼 그는 능력 면에서는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었을지 모르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인간 대체품에 지나지 않는다.

즉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이 영원한 사유의 고통에 시달리는 로봇과 이제 막 사유의 즐거움을 깨달아버린 인간이 보여주는 갈등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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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라는 작품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에서 쇠퇴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이 작품 속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즉 인간은 사유를 포기하고 로봇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게 되자, 그 로봇이 고장 났을 때 고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인간이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로봇을 고치는 로봇이 필요해지고, 그 로봇을 고치는 로봇을 고칠 또 다른 로봇이 필요해지는 무한궤도의 사회가 이어지다가 결국엔 그 궤도가 어디서부턴가 끊기기 시작한 사회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모든 것이 로봇이지만 뭐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없다.

​

그런 사회에서 오직 인간이 살아갈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포포스'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곧 인간을 천천히 절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

하지만 글을 배운 유일한 인류인 두 사람이 그 길에 반기를 든다는 이야기다.

"이 하늘 아래에서 대체 나는 뭘까?" 목소리가 대답하기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그냥 당신 자신입니다." 목소리가 기분 좋게 말했다.

"당신은 성인 남자고 인간입니다. 사랑에 빠졌고, 행복해지길 원하고 있죠.

당신은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pg 413-414)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읽은 저자의 작품인데, 먼저 읽었던 '지구에 떨어진 남자'가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라면 이 작품에는 꿈과 희망이 모두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400페이지 중반 정도의 길이로 이 작품이 더 긴 편인데 오히려 읽는 데에는 시간이 덜 걸린 것 같고 읽고 나서 느껴지는 감정도 훨씬 긍정적이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재미의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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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된 작품임에도 그가 보여주는 미래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와 꽤 가까운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태여 약물 따위를 이용하지 않아도 점점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하는 대신 영상이 사유를 집어넣어 주기를 바라며,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에서는 스스로 출산을 통제하며 절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단편적인 사실들만 들여다보아도 그렇다.

​

물론 조금만 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류와 비슷한 AI가 탄생할 시점은 아직도 멀었고, 또 그런 AI를 구태여 인간형 로봇에 탑재할 이유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가 그렇게까지 어두워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주제를 던져 주기에는 충분했으며, 또한 그저 '재미'를 위한 '읽기'를 위해서는 매우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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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떨어진 남자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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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이미 넷플릭스 드라마로 유명한 '퀸즈 갬빗'의 저자라고 한다.

그 인기에 힘입어서인지 시리즈로 그의 저작이 몇 권 출간되어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SF 작품들만 골라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조차 너무도 SF스러운 '지구에 떨어진 남자', 말 그대로 지구에 도착한 한 외계인의 이야기다.

​

작품의 화자는 '안테아'라는 행성에서 온 '뉴턴'이라는 남성 외계인이다.

그의 모행성은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지만 거듭되는 전쟁으로 행성은 황폐화되고 급기야 그의 종족은 생존자 300명 수준으로 멸종 직전에 이른다.

단 한 명 만을 외부에 보낼 수 있는 연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뉴턴'을 지구로 보내 자신들을 한 명이라도 더 지구로 데려올 수 있도록 지구의 기술력을 발달시키는 임무를 부여한다.

이 작품이 1960년대 초반에 나왔으므로 배경 설정 자체는 꽤나 상투적인 느낌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개는 꽤 참신한 편인데, 일단 과학의 발전이 더 월등한 외계 종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한 대규모 침략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부터가 특이하다.

그가 선택한 가명처럼 지구에 도착한 뉴턴은 높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발명품들을 만드는데, 이 물건들은 지구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만한 것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발명이 곧 그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다 주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의 종족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지만 그의 의도는 꽤 평화적인 편이었다.

​

하지만 이 넓은 행성에 본인이 곧 종족의 유일한 개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인류의 예술, 사회, 경제, 과학, 문화 등을 공부하며 인류를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개와 오래 살아서 개처럼 4족으로 뛰는 여성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여성이 진짜 '개처럼'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역시 술에 의존하면서까지 인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치 수학에서 1과 무한히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결코 1은 될 수 없는 무한소수를 보는 것처럼 그의 노력이 인간에게 와닿지는 못한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그가 물었다.

뉴턴의 술잔이 반쯤 비었다. "그건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가 내뱉었다.

"어쨌든 지금 전 충분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pg 221)

​

그의 변장이 언제까지고 밝혀지지 않을 수는 없었고, 일부 인간들이 그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종종 관찰할 수 있었듯 우리는 합의된 의견을 가질 수 없고 때문에 그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두고 각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계산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행정적 실수로 그는 급기야 실명에 이르고 만다.

​

화자가 선인이었던 만큼 꽤 씁쓸함이 맴도는 결말을 보여준다.

외계인마저도 알코올 중독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무서운 사실도 곁가지로 전해주면서 말이다.

사실 착한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결말 역시 착하게 끝나면 결코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술에 찌든 채 넋두리를 내뱉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배타적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당신들이 지구의 문명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인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 거란 말을 이제 알아듣겠습니까?

강의 물고기들과 나무의 다람쥐들, 수많은 새와 토양, 물까지 전부를요.

가끔 당신들을 보면, 박물관에서 풀려난 유인원이 칼을 들고서

캔버스를 쫙쫙 그어 버리고 망치로 조각상을 부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pg 238)

​

총 300페이지가 살짝 넘는 두께로 금방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상상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데이빗 보위'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고, 최근에 미드로 새롭게 제작된 적도 있다고 한다.

전자는 70년대에 나온 작품이어서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보면 원작의 감동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후자는 소재만 차용했을 뿐 내용은 전혀 다른 것 같아 별 기대가 안된다.

좋은 소재와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어서 원작 내용에 충실한 영상으로 리메이크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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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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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필생의 역작이자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예전에 영화로 봤던 기억이 있어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었는데, 우연찮게 책을 입수하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영화로 봤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옛날 일이라 당시 한참 전성기였던 '히로스에 료코'의 눈부신 미모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어서 처음부터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

스토리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한 어머니의 영혼이 딸의 육체로 들어가게 되는 신비한 현상을 상상한 작품이다.

화자는 '헤이스케'라는 남성으로 그의 아내와 초등학생 딸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내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모든 상처를 뒤집어쓰고, 딸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불가사의하게도 눈을 뜬 딸의 몸에는 아내의 영혼이 들어가 있었다.

초등학생의 몸에 들어간 삼십 대 여성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자 딸인 기묘한 상태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간다.

​

저자는 작품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 개인을 영혼과 육체로 분리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정신적인 측면이 사랑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라면 그들은 딸을 잃었다는 슬픔 외에는 평범한 부부처럼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정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측면에서도 서로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맺어져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에 몸에 들어간 아내를 탐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힘들어한다.

또한 고등학생이 되어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고자 노력하는 아내에게 불같은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고, 그 때문에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그래서 더 괴로워한다.

​

후반부로 가면서 딸의 의식이 돌아오고 딸과 아내가 번갈아 한 육체를 오가다 마지막에는 그 유명한 반전으로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스포를 싫어하기도 하고 이 반전에 대한 부분은 나무위키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궁금하면 그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제목이 '비밀'인 이유도 물론 이 기묘한 관계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기도 하겠으나, 이 반전이야말로 진짜 비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손을 잡자 그녀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여보, 그동안 고마웠어요. 나를 잊지 마세요."

나오코. 그는 다시 한번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pg 462)

​

저자 스스로도 자신이 쓴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수작이라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작품인데, 읽고 나니 과연 그러할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을 일이기는 하나, 만약 그런 일이 나에게 발생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가만히 고민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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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물론적인 입장에서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없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육체와는 별개로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적어도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바람은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것 같다.

유부남이면서 딸을 키우는 아버지이기도 하기에 작품에 상당히 몰입할 수 있었는데, 가족을 잃는다는 상상 따윈 하고 싶지 않기에 그들이 온전한 육체와 정신으로 오늘도 건강하게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러운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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