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이해한 유인원 - 인류는 어떻게 문화적 동물이 되었을까
스티브 스튜어트 윌리엄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데이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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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SF 소설이나 우주과학 관련 책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진화에 관한 책이다.

좌측 상단에 적힌 '인류는 어떻게 문화적 동물이 되었나'라는 부제목이 책 내용을 훨씬 더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담긴 표지 사진에 책 내용도 '뭔가 근엄하고 진지해서 지루할 것만 같다'라는 편견을 줄 수 있는데, 완독한 소감으로 먼저 말하자면 이 책 정말 재미있었다.

저자는 인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특성인 진화적인 부분과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특성인 문화적인 부분이 모두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다.

특히 인류가 보여주는 정신적인 특징 중 상당수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문화적인 것에 기인한다는 주류 (사회) 심리학적 분석에 반기를 들고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들이 진화를 좀 더 공부한다면 그런 결론에 다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책 전반에 걸쳐(심리학자들을 까면서) 진화적인 부분이 현재의 인류의 육체적, 정신적 모습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전자 기계인가 밈 기계인가?

이와 관련하여 가장 정확한 표현은 철학자 대니얼 데닛에게서 나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와 밈의 혼종이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유전자와 밈의 의제가 서로 상충하는 변종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외계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이 책의 여정에서 우리가 채택할 관점이다.

(pg 40)

인류라는 대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저자는 "태양계 밖에서 온 성별 구분이 없는 외계 생물학자가 지구와 인류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사고실험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역시나 우리를 계속 번성하게 하는 불멸의 주체이자 이기적인 주체인 '유전자'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진화라는 개념을 '개체' 중심이 아닌 '유전자' 중심으로 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초반의 논지를 잘 파악하고 넘어가야 이후의 설명이 매끄럽게 이해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유전자' 중심의 진화가 익숙해서인지 이어지는 성 선택과 육아 방식, 그리고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에 이르기까지 현재 인류를 형성해온 인간 진화의 경과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인류가 보여주는 부분적인 특징들을 공유하는 (유인원조차도 아닌)동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언제부턴가 남성과 여성의 단순한 기호 차이(남아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여아는 인형을 좋아하는 등)조차도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가 사회과학 분야의 주류 시각이 되었다.

하지만 진화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선택압들의 작용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축적된 결과물인 것이다.

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가?

이는 과거 수렵채집 시절부터 더 큰 사냥감을 사냥하고, 더 위험한 적들로부터 공동체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공격적인 남성이 성적으로 더 선택받을 확률이 높았고, 때문에 그러한 유전자가 온순한 남성의 유전자보다 더 널리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부터 "남자아이들은 좀 과격해도 돼"라는 식으로 주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공작의 꼬리에서 확인했듯 배우자 선호는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진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배우자 선호가 우리의 신체를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 또한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심리적 특성은 신체적 특성과 마찬가지로 십중팔구 부분 유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pg 87)

물론 저자도 문화적인 측면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하거나(문화가 내재된 특성을 강화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공격적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방향으로 엄청난 반박을 받아왔던 것인지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의 논지를 매우 일관적으로 논리정연하게 펼치고 있으므로 쭉 정독하다 보면 저자의 주장에 꽤나 수긍하게 될 것이다.

특히 6장은 이러한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문화를 통해 전수되는 요소들 역시 마치 유전자처럼 기능하며 전수된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특정 성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성향들이 해악을 유발한다면

모든 권리와 근거를 동원해 근절해야 한다.

가령 남성이 선천적으로 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 남성 전형적 행위의

억제를 추구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폭력을 둘러싼 성 차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 조치가 정당한 것은 폭력이 유해하기 때문이지,

성 차이가 본질적으로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성 차이들에 있어서는 - 그 누구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

차이들의 경우에는 -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일 수 있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나?

(pg 202)

굉장히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얻은 지식도 많은 것 같아서 소개가 길었는데, 그만큼 최근에 본 과학 교양서 중에서는 손꼽히게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후미의 참고 목록을 제외해도 500페이지 정도로 두꺼운 편인지라 담긴 정보의 양도 꽤 많은데 저자의 설명이 꽤나 친절한데다 툭툭 던지는 농담도 많아서 읽는 과정이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처럼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새로운 시각도 많이 담긴 책을 만나서 기분 좋게 읽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문화의 진화는 우리 종의 궁극적인 '게임 체인저'였다.

어느 중립적 관찰자가 유인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준을 훨씬 넘어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우리의 바람과 변덕에 맞춰 세계의 개조를 시작하게 해주고 우리 종의 진화뿐

아니라 지구상 다른 모든 생명의 진화를 관장할 힘 또한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굉장한 책임이며, 우리가 수행하기에 적합할 수도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 책임이다.

(pg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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