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떨어진 남자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이미 넷플릭스 드라마로 유명한 '퀸즈 갬빗'의 저자라고 한다.

그 인기에 힘입어서인지 시리즈로 그의 저작이 몇 권 출간되어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SF 작품들만 골라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조차 너무도 SF스러운 '지구에 떨어진 남자', 말 그대로 지구에 도착한 한 외계인의 이야기다.

작품의 화자는 '안테아'라는 행성에서 온 '뉴턴'이라는 남성 외계인이다.

그의 모행성은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지만 거듭되는 전쟁으로 행성은 황폐화되고 급기야 그의 종족은 생존자 300명 수준으로 멸종 직전에 이른다.

단 한 명 만을 외부에 보낼 수 있는 연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뉴턴'을 지구로 보내 자신들을 한 명이라도 더 지구로 데려올 수 있도록 지구의 기술력을 발달시키는 임무를 부여한다.

이 작품이 1960년대 초반에 나왔으므로 배경 설정 자체는 꽤나 상투적인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개는 꽤 참신한 편인데, 일단 과학의 발전이 더 월등한 외계 종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한 대규모 침략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점부터가 특이하다.

그가 선택한 가명처럼 지구에 도착한 뉴턴은 높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발명품들을 만드는데, 이 물건들은 지구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만한 것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발명이 곧 그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다 주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의 종족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지만 그의 의도는 꽤 평화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이 넓은 행성에 본인이 곧 종족의 유일한 개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인류의 예술, 사회, 경제, 과학, 문화 등을 공부하며 인류를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개와 오래 살아서 개처럼 4족으로 뛰는 여성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여성이 진짜 '개처럼'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역시 술에 의존하면서까지 인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치 수학에서 1과 무한히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결코 1은 될 수 없는 무한소수를 보는 것처럼 그의 노력이 인간에게 와닿지는 못한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그가 물었다.

뉴턴의 술잔이 반쯤 비었다. "그건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가 내뱉었다.

"어쨌든 지금 전 충분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pg 221)

그의 변장이 언제까지고 밝혀지지 않을 수는 없었고, 일부 인간들이 그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종종 관찰할 수 있었듯 우리는 합의된 의견을 가질 수 없고 때문에 그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두고 각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계산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행정적 실수로 그는 급기야 실명에 이르고 만다.

화자가 선인이었던 만큼 꽤 씁쓸함이 맴도는 결말을 보여준다.

외계인마저도 알코올 중독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무서운 사실도 곁가지로 전해주면서 말이다.

사실 착한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결말 역시 착하게 끝나면 결코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술에 찌든 채 넋두리를 내뱉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배타적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당신들이 지구의 문명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인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 거란 말을 이제 알아듣겠습니까?

강의 물고기들과 나무의 다람쥐들, 수많은 새와 토양, 물까지 전부를요.

가끔 당신들을 보면, 박물관에서 풀려난 유인원이 칼을 들고서

캔버스를 쫙쫙 그어 버리고 망치로 조각상을 부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pg 238)

총 300페이지가 살짝 넘는 두께로 금방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상상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데이빗 보위'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고, 최근에 미드로 새롭게 제작된 적도 있다고 한다.

전자는 70년대에 나온 작품이어서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보면 원작의 감동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후자는 소재만 차용했을 뿐 내용은 전혀 다른 것 같아 별 기대가 안된다.

좋은 소재와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어서 원작 내용에 충실한 영상으로 리메이크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