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단 하나의 이유가 기억에 남는데, 바로 '즐거움'을 준다는 이유였다.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라는 말이 나온 지도 한참 되었지만 '읽기'라는 행위가 주는 원초적인 즐거움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뜬금없이 문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 작품이 '읽기'라는 행위 자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가 1980년대였는데, 극한의 개인주의를 향해 치닫는 현대의 우리 사회 모습이 지속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제대로 상상하고 있는 작품이다.
본 작품의 세계에서는 로봇 기술 발달이 극에 달해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로봇까지 제작하기에 이른다.
'메이크'라는 시리즈 이름에 넘버링이 붙어 얼마나 발전된 로봇인지를 모델명으로 알 수 있는데, 그중 '메이크 나인' 모델인 '스포포스'라는 로봇이 작품의 시작을 연다.
그는 설정상 가장 발전된 형태의 로봇이며, 로봇이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되자 자신의 동력을 끊거나 핵심 부속을 파괴하는 일이 발생하여 스스로는 죽을 수도 없게 프로그래밍된 로봇으로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역할을 도맡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로봇이 세상에 등장하자 진짜 인간들은 마약과 안정제를 공급받으며 마치 사육되듯, 그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도 해방되며 심지어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와 사유의 괴로움마저 거세된 채 살아가고 있다.
마약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표현할 수 없는 허기를 느끼는 자들은 심지어 분신이라는 행위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사회에 어느 날 스스로 읽기를 깨친 '벤틀리'라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