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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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상당한 수상 기록을 가진 작가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SNS에서 광고를 많이 해서 제목이 눈에 익었던 터라 전자 도서관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대여를 누르게 되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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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아내를 죽였다'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마케팅 포인트인데, 당연히 어그로를 끌기 위함이고 실제 일어난 일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불행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베란다에서 혼자 놀던 4살짜리 딸이 화분을 햇볕이 잘 드는 난간에 올려놓는데, 이것이 아래로 떨어져 운전 중이던 차에 떨어지고 놀란 운전자는 그만 아내를 치어 사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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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딸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비밀을 숨기며 딸을 대학생까지 키워내는데 어느 날 한 남자에게서 모든 일을 알고 있으니 돈을 준비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딸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는 협박 전화가 온다.

이 협박을 피할 겸 딸과 누나와 함께 30년 전에 살던 자신의 고향으로 가게 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의문을 남긴 채 사망한 31년 전의 사건과 그 후 1년 뒤 마을의 부잣집 네 명이 버섯 중독으로 생사를 오갔던 사건이 회상된다.

그 30여 년 전에 일어났던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진실과 협박범의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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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산지로 유명한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이 지역에 벼락이 자주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버섯과 벼락이 작품에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시골 특유의 폐쇄성 또한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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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시점은 현재지만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버린 사건을 역추적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서 주요 서사가 모두 회상과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벼락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았던 터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단편적인 정보들을 흘린 뒤 후반에서 결말을 풀어헤치는 구성이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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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지만 작품의 중심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는 점도 좋았다.

단순히 치정이나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해 하게 된 선택들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결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늘 의도와 결과를 어떻게든 연관 짓고 싶어 하지만 사실 살다 보면 의도와 결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더 많지 않던가.

​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했던 시간에 견주어 비교할 시간만 늘어나고,

이미 현재와 단절돼버린 그 행복했던 시간들은 멀어질 뿐이다.

그만큼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절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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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던 사건들의 진실에 비하면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리게 느껴졌고, 결말 또한 반전이라면 반전이었지만 정말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진상이 밝혀지기 때문에 읽는 과정이 꽤 오래 걸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요소는 작가의 문장이 추리와 미스터리를 주로 쓰는 작가답지 않게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추리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전개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장르에서는 보통 사건과 관계가 없는 문장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배경 묘사나 심경 묘사, 등장인물들이 추론을 하는 과정에서도 꽤 인상적인 문장들이 자주 보였던 것 같다.

누나는 바닷가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그때 누나는 대체 뭘 보고 있었을까.

어딘가에 있는, 부조리함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존재할 수 있었던 자신의 과거였을까.

​

추리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작품에서 죽은 것치고는 꽤 많은 사상자가 나온(?) 작품인데 처벌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런데도 인과응보가 미비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데, 스토리 전반에 걸쳐 빌드업을 잘 해두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충분히 공감이 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의는 분명, 언제나 수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겁니다.

그 대부분이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그저 운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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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하게 자극적인 마케팅 문구들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그 덕에 재미있는 작품 하나 읽었다고 생각하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작가였지만 첫인상이 좋게 남은 작가가 된 느낌이다.

이미 발표된 작품들이 꽤 되서 다음에 읽을 작품을 고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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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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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읽을 것이 없다 싶을 때 검색하게 되는 이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작품이다.

비장해 보이는 두 어절의 단어 아래 이번에는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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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2020년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 같은데 작품이 지어진 해는 1990년이다.

그래서 경찰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아 전화를 할 때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등 배경이 현재와는 다르다는 점은 읽기 전에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추리가 많이 필요한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배경이 그리 거슬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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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번에도 누군가가 죽고 범인을 찾기 위한 경찰이 주인공이다.

도입 부분에서 한 지체장애인 여성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등장한 뒤 오랜 시간이 흘러 꽤 규모가 있는 기업의 차기 대표이사가 전 대표이사의 유물이었던 석궁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두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한 경찰의 시각으로 작품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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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사건 훨씬 전부터 이미 아는 사이였다는 것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이 학창 시절 숙명의 라이벌이었고 그의 아내가 주인공의 첫사랑인 상황.

살인사건의 조사로 만나게 된 세 사람의 과거 이야기가 사건에 흥미를 더해준다.

어쩌면, 하고 미사코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실이 아닐까.

그 실이 아직 존재하고 있어서 지금도 내 인생을 조종하는 게 아닐까...

특이하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형사가 살인사건 자체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의 해결은 주변 경찰들의 활약으로 해결되지만 세 사람의 관계가 이 사건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에 가깝고, 따라서 작품의 주인공은 이 부분을 밝혀내는 데에 더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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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떤 피가 흐르는지는 관계없어. 중요한 건 내게 어떤 숙명이 주어졌는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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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에 얽힌 트릭은 메인 이야기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지만 그 트릭도 식상하지 않고 메인 이야기에 담긴 스토리라인은 더욱 재미있다.

단순히 살인사건만 있거나 출생의 비밀만을 밝혀내는 작품이었다면 그리 인상 깊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둘이 합쳐지니 상당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결말이어서 개인적으로 저자의 작품을 꽤 읽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재미있었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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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여서 내가 작가의 작품을 읽어내는 속도보다 작가가 신작을 내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직 읽을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그의 책을 꽤 읽은 편인데 읽었던 모든 작품들이 재미 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앞으로도 책장이 허전하다 싶으면 그의 작품들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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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 지음, 박세형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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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대여한 책인데 본인 취향이 아니라며 반납한다길래 반납 전에 후다닥 읽어본 책이다.

정직한 제목 그대로 리빙스턴 씨가 운영하는 한 서점에서 일어나는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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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남 코스프레를 잘하는 달빛서점 주인 리빙스턴 씨와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런던으로 온 고고학자로 정식 직장을 찾을 때까지 달빛서점에서 임시 직원으로 일하게 되는 아그네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둘이 커플이 되는 지나치게 식상한 전개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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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책과 출판에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아그네스의 친구가 즐겨 읽는다는 '필굿 소설'이라는 장르가 등장한다.

'필굿 소설'이란 등장인물들이 골치 아픈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정의하며 리빙스턴 씨가 그런 책만 읽는 사람들을 약간 무시하는 느낌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재미난 점은 이 소설이 '필굿 소설'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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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사건'이라 부를만한 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도난 사건이 슬쩍 등장하나 싶더니 그저 등장인물들 간의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되며,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K-드라마처럼 '제3자가 얽히고 오해가 쌓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울고 짜고...' 이런 부분이 거의 없거나 아주 짧게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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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실 재미가 없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또 끝까지 읽게 되는 매력은 있었다.

솔직히 문학과 그리 친하지 않고 이런 장르와는 특히 더 거리가 먼 편이라 읽으면서도 '왜 계속 읽고 있지?'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 원동력은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와 영미 문학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해에서 오는 인용구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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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주인'이라는 설정에 걸맞게 리빙스턴 씨의 대사에는 영미 문학에서 인용한 문구들이 많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에서부터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꽤 범위가 넓어서 영미 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작품을 즐길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나처럼 영미 문학을 잘 모르는 독자라 하더라도 내용이 워낙 심플해서 걱정할 부분은 전혀 없으며 역자의 주석도 중간중간 잘 달려 있어서 그 정도만 숙지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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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그리 복잡하지 않은 영국의 변두리 지역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사랑 이야기들인지라 따뜻한 감성으로 힐링이 되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수많은 영향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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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서점이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안식처가 되어주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물론 지금 세상에서 '달빛서점'처럼 감성적인 공간은 현실적인 이유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야.

언제부터 삶이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주었지?"

하지만 책에서 안식을 얻는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기에 많은 이들이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힐링이 될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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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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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관심이 간 책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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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언론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편향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던 시기여서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의 언론은 객관성은커녕 보도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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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가결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짜 뉴스'를 다루고 있다.

사실을 살짝 왜곡한 것이나 특정 입장의 주장만을 인용하는 등의 편파성은 물론이고 근거 자체가 희박하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 등 100% 거짓말로 이뤄진 보도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각종 매체에 쏟아져 나오는 저질 기사들을 통틀어 '개소리(bullshit)'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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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지은 책이라 사례가 모두 영국과 미국의 사례로 채워져 있지만 다행한(?) 점이라면 사례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만큼 우리의 현실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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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볼의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한국의 사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국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너무 똑같아서 피식 웃음이 날 정도인 것도 있습니다.

한국의 개소리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잘 따르고 있는 셈이죠.

(추천 및 감수의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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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개소리 문화가 정치적 당파와 무관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상대방 진영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 세력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가짜 뉴스를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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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이야기를 놓고

해석에서 의견 차를 보였다면, 지금은 상대 진영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보고,

그들의 이야기가 편향됐으며 사실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여긴다.

또 서로가 유난히 가짜뉴스에 휩쓸린다고 본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언론 기관에 있다.

뉴스가 전달되는 통로가 인쇄 매체에서 인터넷 매체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언론사들은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사람들이 더 이상 뉴스를 유료로 접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는 수익을 낼 수단이 필요했고, 이 지점을 광고 회사들이 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클릭과 조회로 먹고살아야 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극적인 문구나 이미지를 단 가짜 뉴스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이런 기사들이 기존의 언론사 사이트에도 링크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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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가 탄생하면서 이 기사들을 독자들이 직접 퍼나르는 구조까지 더해지자 이제는 클릭 수 그 자체를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기사의 형태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홍보 수단으로 SNS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마치 사실처럼 퍼져나가게 되어 일반적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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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넘쳐나는 뉴스 정보를 알고리즘이 선택해 이용자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필터 버블(내가 원래 관심 있는 주제의 기사만 접하게 되는) 현상도 점점 심해져 사람들은 점차 더 극단적인 정보에 노출되고 이는 곧 확증 편향의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양극화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쉽게 발견될 만큼 보편적이며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기사를 제대로 된 기사와 나란히 배치하고, 두 기사를 전혀 구분하지 않으며,

큰 실수를 해놓고도 공지 없이 넘어가면서 매체들은 개소리 문화를 퍼뜨린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언론에서도 이를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팩트체크 활동들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팩트체크에서 확인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속도와 범위는 매우 미미한 반면, 개소리가 확산되는 속도와 범위는 너무도 빠르고 넓다.

게다가 인터넷에 퍼진 정보는 세월이 지나도 검색이 되기 때문에 생명력 또한 길다.

​

인터넷의 허위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과녁에 총을 겨누는 것과 같다.

​

문제의 원인이 미디어와 독자 모두에게 있는 만큼 해결책 또한 양쪽 모두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독자 또한 필터 버블에서 스스로 나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뉴스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영국과 미국의 사례가 주로 등장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가짜 뉴스로 인한 혼란은 비슷하기 때문에 얻을 것이 많았던 책이다.

어느 정도로 비슷한가 하면, 아래의 구절은 현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지난해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을 정도다.

(책 속에서는 트럼프 측근들의 행보를 설명하기 위한 구절이었다.)

냉소주의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투표율이 낮아지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떨어진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치인은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과 부동층에게 호소하기보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쪽으로 선거 유세를 한다.

지지층을 향해 상태 후보가 우리의 핵심 이슈를 위협한다고,

이를테면 '당신의 총기를 빼앗아'가고, '여성의 결정권을 없앤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선거가 우리의 권리를 지킬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험자보다는 아웃사이더가,

과거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공약이 더 유리하다.

그 결과 예상 밖의 후보가 갑자기 부상한다.

​

가짜 뉴스의 폐해는 고스란히 일반 대중들에게 돌아온다.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언론을 멀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이 인지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정부를 견제할 수단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

물론 우리나라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없다.

언론 내부에서 스스로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이 이러한 언론의 행태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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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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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당연히 픽션이니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전혀 아니고, 배경 설정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책 소개글을 읽다가 한국의 현실을 잘 반영한 스릴러 작품이라는 말에 흥미가 일어 읽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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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인 정하는 서울의 20평대 전세 아파트에 살며 어린 딸과 아들을 둔 젊은 엄마다.

쇼윈도 부부조차도 아닌, 서로에게 무관심할 뿐인 남편과 함께 그저 아이들 엄마로서의 삶에만 충실한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피를 뒤집어쓴 채 부러진 칼을 들고 집에 와 허겁지겁 뒷정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본능적으로 남편이 무언가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안 정하는 다음날 락스로 화장실의 모든 흔적을 제거한다.

하지만 며칠 후 평소와 똑같이 출근한다는 말을 남긴 채 남편이 돌연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3개월 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큰 평수에 사는 한 남자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기까지가 대략 작품의 3분의 1 정도이고 이후에는 이 두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안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는지가 밝혀지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마케팅용으로 쓴 문구들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말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한국인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든 정서를 잘 녹여냈다.

특히 쓸데없는 '오지랖' 문화와 이 때문에 발생하는 '남 눈치 보는' 문화를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이웃들의 온갖 소문을 떠들고 다니는 이웃 아줌마가 매일같이 찾아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기 싫어 내치지 못하는 정하의 모습은 살면서 한 번쯤은 본 듯한 전업주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집사람에게도 비슷한 동네 친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

남편이 없어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보다도 남들의 손가락질에 아이들과 자신이 받을 상처를 더 걱정하는 모습 역시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선 가정에게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내가 그리던 그림 속에는 남편이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그림 속에 애들 아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자리에 실루엣이 있긴 했지만

그건 다른 남자가 남편이 되었어도 상관없는 역할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 역할을 채우고 있던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없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중략 -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라니. 공동주택촌의 뒷담화 소재로 전락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pg 173)

초반의 긴장감과 뛰어난 현실 묘사, 그리고 빠른 사건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400페이지가 살짝 넘는 약간 두꺼운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놀랍게 느껴질 정도로 문장도 읽는 맛이 좋아서 읽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름만으로는 작가의 성별이 짐작되지 않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세상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기만 하는 한 여성의 시각을 매우 잘 풀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 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여기까지만 읽기를 권한다.)

좋은 의도가 깔려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배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노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저어서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데

나에게만 노가 없다.

그들이 저으면 젓는 대로 나는 어딘가로 실려 간다.

(pg 249)

​

하지만 결말이 결국 신데렐라 스토리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물론 내 주제에 더 좋은 결말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내 상식에서는 돈 많은 남자가 애 둘 딸린 과부에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극정성을 쏟는 일이 과연 얼마나 일어날까 싶다.

하기야 이 넓은 세상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할 테니 내 시각이 편협하다면 편협한 것이라 생각한다.

쓰레기 같은 전 남편에게 제대로 된 정의 구현이 없었다는 점도 못내 아쉬운데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의 현실감을 주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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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착한 날 전부 읽었을 정도로 상당히 즐겁게 읽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영화 '기생충'처럼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이로 인해 생겨난 기묘한 인간관계를 잘 표현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정 문제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은 소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 동 아파트 남자는 꼭 이선균이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문장들이 꽤 좋았고 스토리도 흥미로워서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속 시원한 결말과 함께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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