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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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상당한 수상 기록을 가진 작가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SNS에서 광고를 많이 해서 제목이 눈에 익었던 터라 전자 도서관에서 제목을 보는 순간 대여를 누르게 되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내 딸이 아내를 죽였다'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마케팅 포인트인데, 당연히 어그로를 끌기 위함이고 실제 일어난 일은 우연의 연속이 만들어 낸 불행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베란다에서 혼자 놀던 4살짜리 딸이 화분을 햇볕이 잘 드는 난간에 올려놓는데, 이것이 아래로 떨어져 운전 중이던 차에 떨어지고 놀란 운전자는 그만 아내를 치어 사망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딸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비밀을 숨기며 딸을 대학생까지 키워내는데 어느 날 한 남자에게서 모든 일을 알고 있으니 돈을 준비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딸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는 협박 전화가 온다.

이 협박을 피할 겸 딸과 누나와 함께 30년 전에 살던 자신의 고향으로 가게 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의문을 남긴 채 사망한 31년 전의 사건과 그 후 1년 뒤 마을의 부잣집 네 명이 버섯 중독으로 생사를 오갔던 사건이 회상된다.

그 30여 년 전에 일어났던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진실과 협박범의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버섯 산지로 유명한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이 지역에 벼락이 자주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버섯과 벼락이 작품에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시골 특유의 폐쇄성 또한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의 시점은 현재지만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버린 사건을 역추적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서 주요 서사가 모두 회상과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벼락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았던 터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단편적인 정보들을 흘린 뒤 후반에서 결말을 풀어헤치는 구성이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지만 작품의 중심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는 점도 좋았다.

단순히 치정이나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해 하게 된 선택들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결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늘 의도와 결과를 어떻게든 연관 짓고 싶어 하지만 사실 살다 보면 의도와 결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더 많지 않던가.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했던 시간에 견주어 비교할 시간만 늘어나고,

이미 현재와 단절돼버린 그 행복했던 시간들은 멀어질 뿐이다.

그만큼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절하게 느낀다.

일어났던 사건들의 진실에 비하면 전개 속도가 다소 느리게 느껴졌고, 결말 또한 반전이라면 반전이었지만 정말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진상이 밝혀지기 때문에 읽는 과정이 꽤 오래 걸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요소는 작가의 문장이 추리와 미스터리를 주로 쓰는 작가답지 않게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추리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전개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장르에서는 보통 사건과 관계가 없는 문장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배경 묘사나 심경 묘사, 등장인물들이 추론을 하는 과정에서도 꽤 인상적인 문장들이 자주 보였던 것 같다.

누나는 바닷가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그때 누나는 대체 뭘 보고 있었을까.

어딘가에 있는, 부조리함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존재할 수 있었던 자신의 과거였을까.

추리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작품에서 죽은 것치고는 꽤 많은 사상자가 나온(?) 작품인데 처벌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런데도 인과응보가 미비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데, 스토리 전반에 걸쳐 빌드업을 잘 해두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충분히 공감이 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의는 분명, 언제나 수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겁니다.

그 대부분이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그저 운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과도하게 자극적인 마케팅 문구들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그 덕에 재미있는 작품 하나 읽었다고 생각하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작가였지만 첫인상이 좋게 남은 작가가 된 느낌이다.

이미 발표된 작품들이 꽤 되서 다음에 읽을 작품을 고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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