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당연히 픽션이니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전혀 아니고, 배경 설정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책 소개글을 읽다가 한국의 현실을 잘 반영한 스릴러 작품이라는 말에 흥미가 일어 읽어보게 되었다.
작품의 주인공인 정하는 서울의 20평대 전세 아파트에 살며 어린 딸과 아들을 둔 젊은 엄마다.
쇼윈도 부부조차도 아닌, 서로에게 무관심할 뿐인 남편과 함께 그저 아이들 엄마로서의 삶에만 충실한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피를 뒤집어쓴 채 부러진 칼을 들고 집에 와 허겁지겁 뒷정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본능적으로 남편이 무언가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안 정하는 다음날 락스로 화장실의 모든 흔적을 제거한다.
하지만 며칠 후 평소와 똑같이 출근한다는 말을 남긴 채 남편이 돌연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3개월 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큰 평수에 사는 한 남자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기까지가 대략 작품의 3분의 1 정도이고 이후에는 이 두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안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는지가 밝혀지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마케팅용으로 쓴 문구들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말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한국인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든 정서를 잘 녹여냈다.
특히 쓸데없는 '오지랖' 문화와 이 때문에 발생하는 '남 눈치 보는' 문화를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이웃들의 온갖 소문을 떠들고 다니는 이웃 아줌마가 매일같이 찾아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기 싫어 내치지 못하는 정하의 모습은 살면서 한 번쯤은 본 듯한 전업주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집사람에게도 비슷한 동네 친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없어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보다도 남들의 손가락질에 아이들과 자신이 받을 상처를 더 걱정하는 모습 역시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선 가정에게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