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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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관심이 간 책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언론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편향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던 시기여서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의 언론은 객관성은커녕 보도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가결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짜 뉴스'를 다루고 있다.

사실을 살짝 왜곡한 것이나 특정 입장의 주장만을 인용하는 등의 편파성은 물론이고 근거 자체가 희박하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 등 100% 거짓말로 이뤄진 보도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각종 매체에 쏟아져 나오는 저질 기사들을 통틀어 '개소리(bullshit)'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지은 책이라 사례가 모두 영국과 미국의 사례로 채워져 있지만 다행한(?) 점이라면 사례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만큼 우리의 현실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볼의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한국의 사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국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너무 똑같아서 피식 웃음이 날 정도인 것도 있습니다.

한국의 개소리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잘 따르고 있는 셈이죠.

(추천 및 감수의 글 중)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개소리 문화가 정치적 당파와 무관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상대방 진영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 세력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가짜 뉴스를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이야기를 놓고

해석에서 의견 차를 보였다면, 지금은 상대 진영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보고,

그들의 이야기가 편향됐으며 사실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여긴다.

또 서로가 유난히 가짜뉴스에 휩쓸린다고 본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언론 기관에 있다.

뉴스가 전달되는 통로가 인쇄 매체에서 인터넷 매체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언론사들은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사람들이 더 이상 뉴스를 유료로 접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는 수익을 낼 수단이 필요했고, 이 지점을 광고 회사들이 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클릭과 조회로 먹고살아야 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극적인 문구나 이미지를 단 가짜 뉴스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이런 기사들이 기존의 언론사 사이트에도 링크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여기에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가 탄생하면서 이 기사들을 독자들이 직접 퍼나르는 구조까지 더해지자 이제는 클릭 수 그 자체를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기사의 형태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홍보 수단으로 SNS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마치 사실처럼 퍼져나가게 되어 일반적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넘쳐나는 뉴스 정보를 알고리즘이 선택해 이용자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필터 버블(내가 원래 관심 있는 주제의 기사만 접하게 되는) 현상도 점점 심해져 사람들은 점차 더 극단적인 정보에 노출되고 이는 곧 확증 편향의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양극화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쉽게 발견될 만큼 보편적이며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기사를 제대로 된 기사와 나란히 배치하고, 두 기사를 전혀 구분하지 않으며,

큰 실수를 해놓고도 공지 없이 넘어가면서 매체들은 개소리 문화를 퍼뜨린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언론에서도 이를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팩트체크 활동들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팩트체크에서 확인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속도와 범위는 매우 미미한 반면, 개소리가 확산되는 속도와 범위는 너무도 빠르고 넓다.

게다가 인터넷에 퍼진 정보는 세월이 지나도 검색이 되기 때문에 생명력 또한 길다.

인터넷의 허위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과녁에 총을 겨누는 것과 같다.

문제의 원인이 미디어와 독자 모두에게 있는 만큼 해결책 또한 양쪽 모두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독자 또한 필터 버블에서 스스로 나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뉴스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가 주로 등장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가짜 뉴스로 인한 혼란은 비슷하기 때문에 얻을 것이 많았던 책이다.

어느 정도로 비슷한가 하면, 아래의 구절은 현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지난해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을 정도다.

(책 속에서는 트럼프 측근들의 행보를 설명하기 위한 구절이었다.)

냉소주의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투표율이 낮아지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떨어진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치인은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과 부동층에게 호소하기보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쪽으로 선거 유세를 한다.

지지층을 향해 상태 후보가 우리의 핵심 이슈를 위협한다고,

이를테면 '당신의 총기를 빼앗아'가고, '여성의 결정권을 없앤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선거가 우리의 권리를 지킬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험자보다는 아웃사이더가,

과거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공약이 더 유리하다.

그 결과 예상 밖의 후보가 갑자기 부상한다.

가짜 뉴스의 폐해는 고스란히 일반 대중들에게 돌아온다.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언론을 멀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이 인지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정부를 견제할 수단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나라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없다.

언론 내부에서 스스로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이 이러한 언론의 행태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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