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ㅣ 마로 시리즈 (Maro Series) 9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 에디토리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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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체'를 읽고 감동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을 무렵, '류츠신은 신이었어'라는 생각마저 들 때쯤 그가 추천한 작품이라는 마케팅 문구가 눈에 띄었다.

보통 이런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된 책들의 경우 실망하기 쉬운데, 이 책은 기본적으로 SF로 분류되어 있기도 해서 취향에는 맞지 않겠나 싶어 집어 들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추천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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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붉은 산이 표지에 그려져 있나 싶겠지만 제목을 보면 저게 다 쓰레기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이 작품은 표지처럼 쓰레기 더미 속에서 희귀한 물질을 채취해 재활용하는 중국의 한 쓰레기 섬을 배경으로 한다.

이 섬에서 희귀하고 값비싼 희토류를 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섬을 둘러싸고 세 개의 세력이 서로 견제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여기에 미국의 회사가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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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중반까지는 이 작품이 딱히 SF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작품 속에서는 이들을 '쓰레기인간'이라 부른다)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다큐에서 본 모습과 이 작품의 초반부가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단지 작품 속 사람들이 작업하는 쓰레기가 좀 더 진보된 기술로 만들어진 쓰레기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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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극심한 환경오염과 빈부격차가 뒤따른다.

쓰레기를 분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네트워크 데이터의 속도조차도 제한된다.

이들은 터무니없는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자연히 현실보다는 내세나 정령 등 무속적인 신앙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불공평한 부분을 발견하면 가능한 한 모든 증거를 찾아내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다.

하늘이 그들에게 지위, 부, 미모, 재능, 건강을 주었다면

분명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서 취했을 것 같았다.

그런 증거들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윤회'라는 이론을 발명하여

완벽한 등가를 이루는 시간 단위를 무한대로 늘렸다.

카이종은 과거에 이런 운명의 보존법칙을 비웃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러한 이론이 필요한 건,

그것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제한된 삶에 위안을 주어서일 것이다.

(pg 109)

중반 이후 세력가 중 한 명의 아들이 정체 모를 병으로 쓰러지게 되고 여기에 한 쓰레기인간 소녀가 휘말려 희생될 위기에 처한다.

이 소녀가 굉장히 극적인 능력을 발휘하면서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 능력이 발현된 원인들이 밝혀지면서부터는 SF의 느낌이 물씬 풍기게 된다.

세상은 더 이상 어버이 세대가 지켜 오던 세상이 아니었고,

신은 그들이 믿던 신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정직, 친절, 미덕보다도 힘을 훨씬 더 숭배했다.

그는 이제 무엇이 진리에 더 가까운지 알 수 없었다.

(pg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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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발현된 능력이 뇌에 작용하는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재미난 점은 저자가 이러한 바이러스가 일종의 새로운 슈퍼 자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고, 이 자아가 본래의 자아와 한 육체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설정했다는 점이다.

마치 하나의 뇌를 공유하는 샴쌍둥이처럼 두 인격이 하나의 육체에 존재하는 느낌을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물리적인 뇌는 하나뿐이므로 이 두 인격이 동일인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당연히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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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육체와 정신이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한 점 역시 재미난 지점이다.

물론 그녀 안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자아가 네트워크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육체와 정신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신이 다시 신체로 들어간 이후를 묘사한 구절이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육체와 정신이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보았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추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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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쓰레기인간들에게는 마치 모세를 떠올리게 하는 메시아로 그려진 그 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스러진다.

작품의 스케일이 작지 않음에도 사건의 전개나 봉합 방법이 억지스럽지 않게, 신파스럽지 않게 잘 펼쳐져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

신은 자기 모습 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인류는 세상의 신비를 탐구하고, 이론을 발명하고, 과학과 기술을 창조했다.

인간은 과학기술이 생명을 모방하여 창조주에 더 가깝게 진화하고

피라미드의 정점에 도달하기를 원했지만,

그 후 인간은 자기 미래를 기술에 맡기고 그에 기생하며 정체된 행보를 보였다.

(pg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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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이 후반부에 몰아치는 느낌이라 뒤로 갈수록 더 흥미로워지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접하는 중국의 SF였는데 두 작품 모두 놀라울 만큼 '중국뽕'이 없다는 점도 재미있다.

오히려 중국의 역사나 사회의 경직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니 중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SF를 좋아한다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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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계단 수학여행 1 - 비지니스맨과 돌멩이의 비밀 ㅣ 무한의 계단 수학여행 1
최재훈 지음, 김기수 그림, 장세원.김준 감수, 무한의 계단 원작 / 서울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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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수학적인 뇌는 정말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기야 시간만 투입한다고 성과가 나면 누가 수학 때문에 고민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수학을 아예 손을 놓자니 학업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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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수학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일단은 수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좀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매체와 수학의 접목은 부모 입장에서 반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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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무한의 계단'이어서 수학이라는 주제와 상당히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모바일 게임 이름이라고 하며 세계여행, 추리게임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많은 학습 만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IP였다.

동명의 모바일 게임을 하는 유저라면 이 책 특전으로 추가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등 게임과 연동된 보너스들도 있으므로 게임을 즐기는 아이라면 게임의 흥미를 책으로 돌릴 수 있는 장치들을 활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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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 아이는 아직 모바일 게임에 눈을 뜨지 않았지만 캐릭터들은 책 안에서 소개가 충분히 되고 있고 내용 역시 거부감 없는 만화 형식이기 때문에 읽는데 문제는 없었다.

내용 자체는 만화로 되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지만, 어려운 용어는 해설이 붙어 있고 각종 수학 기호의 유래 등 생각보다 정보량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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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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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두께의 별책으로 워크북이 붙어 있어서 읽은 후 문제풀이 연습도 해볼 수 있다.

워크북은 전체적으로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보기에는 난이도가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오래 읽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모바일 게임 IP이기 때문에 모바일 게임에도 눈을 뜨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훨씬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법한 난이도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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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북 pg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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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가 혼자서 만화를 읽고 연습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 책만 던져주고 읽게 놔두기보다는 문제를 같이 읽어보고 답을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는 정도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만화의 내용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고 그 안에 수학의 개념을 잘 소개해 주고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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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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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델 토로 - 타로카드 & 한글 가이드북
토마스 히조 지음, 송민경 옮김, 기예르모 델 토로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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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점이나 사주를 믿는 편이 아니라서 평소에 타로에도 그다지 관심이 많지는 않았는데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이름이 박힌 타로 카드를 보니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저자는 '판의 미로', '헬보이', '퍼시픽 림' 등의 걸출한 작품들을 만들어낸 감독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그가 타로 카드에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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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들이 대체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나 역시 그중 하나다.

기괴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그만의 연출 스타일을 상당히 좋아하는 터라 그의 스타일이 타로 카드라는 전혀 다른 매체를 통해서는 어떻게 발현되었을지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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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참여한 카드 자체를 소장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크지만 이왕이면 타로 카드를 어떻게 쓰는지도 알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한글 가이드북이 함께 동봉되어 있어서 이 기회에 타로 카드를 제대로 배워서 즐겨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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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구성: 멋진 상자 안에 타로 카드 1벌과 국문 타로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카드 속 그림들은 모두 그가 작업했던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다.

예를 들면 6번 카드인 '연인'에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종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준 그 연인들이 등장한다.

모두 판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어 그림의 질감이 거칠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인지라 그의 영화 속 음울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에 쏙 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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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된 국문 가이드는 얇은 소책자 형태인데 타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본적인 카드 설명에서부터 카드를 읽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타로를 읽는 방법에도 주관이 많이 개입될 수 있는 만큼 설명이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다.

'이 카드는 대체로는 이 정도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이고, 역방향으로 나올 경우 그 속성이 어떻게 변화한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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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점을 치는 용도로 타로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역시 타로를 스토리 구상에 활용한다고 한다.

몇 장의 카드를 뽑아 이런저런 의미들을 부여하다 보면 괜찮은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는 이렇게 창작자들의 브레인스토밍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 더 유용하고 의미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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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카드를 보더니 얼른 공부해서 점을 봐달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외울 것이 많아서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개인적인 성향상 습득하는 데 꽤 오래 걸리기야 하겠지만, 그의 영화와 이야기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꽤나 즐거운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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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픽처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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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듯하면서도 섬뜩한 표지를 가진 호러 소설이다.

넷플릭스와 계약되었다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데 다 읽고 나니 영상화되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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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은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베이비시터로 새 출발을 하고자 하는 '맬러리'라는 젊은 여성이다.

사교적인 부모와 귀여운 아이, 수영장까지 딸린 그림 같은 집에서 머물 수 있고 급여도 좋아서 맬러리는 열정적으로 일하며 재활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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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그 집의 아이가 기묘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애냐'라고 하는 가상 친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친구를 그리는 것이라 말한다.

게다가 맬러리가 기거하는 별채에서 70년 전에 한 사람이 죽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려온다.

아이의 그림 역시 점점 더 기묘하게 변하게 되자 맬러리는 이 그림에 담긴 비밀을 찾고자 하는데, 여기까지가 작품의 초중반 정도 된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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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전에 사람이 죽었던 곳에 살게 된다는 것과 아이가 귀신 그림을 그린다는 다소 고전적인 장치를 활용했는데, 이야기의 전개는 뻔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대충 이렇게 전개되겠구나' 싶은 부분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말이어서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반전을 찾는데 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작품의 진상을 예상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의 분류는 '호러'로 되어 있지만 귀신이 등장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추리 소설로 봐도 좋을 정도로 숨겨진 내막을 찾아가는 재미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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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도 그리 어렵지 않고 번역도 깔끔해서 읽는 몰입감이 상당히 좋아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두께임에도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보통의 문학 작품에서 마약중독자는 대체로 긍정적이지 못한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약물중독자도 착실하게 치료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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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대로 영상화하기에도 아주 좋을 스토리라서 나오면 한번 봐야 될 것 같다.

제목처럼 그림이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책 안에도 그림이 제법 많은데 이를 영상에서 어떻게 구현할지도 궁금해진다.

오랜만에 재밌는 작품을 쓰는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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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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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매우 친절한 양자역학 책으로 만나봤던 카를로 로벨리의 대표 저서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시간에 대해 물리학에서 밝혀진 내용을 저자 특유의 친절한 서술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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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다른 책들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다.

동물들은 미래를 예측하며 살지 않지만 인류는 내일의 날씨부터 태양과 달의 움직임 등 자연의 순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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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에게 시간이란 반드시 1차원적으로만 움직이는 고정된 그 무언가로 보인다는 점이다.

직관적으로만 보면 시간은 과거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로만 흐르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현재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지금까지 물리학으로 밝혀낸 바와 어떻게 상충되는지를 설명한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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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는 시간관념 변화의 역사는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다.

일단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고, 질량과 속도에 따라 시공간 역시 변화할 수 있는 값이라는 점까지는 이전에 읽은 다른 과학 교양서들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무리 없이 이해했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하단의 그림으로 종합할 수 있는데, 설명하면 일반적으로는 시간을 좌상단 그림처럼 인지하지만 실제로는 우하단 그림에 가깝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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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58-59)

여기까지는 평이한데, 저자의 전문 분야인 양자 중력이론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난이도가 제법 상승한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할 수 없고 공간이 곧 질량을 가진 물질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시간 역시 질량을 가진 그 무언가로부터 파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역시 최소의 입자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할 수 있을 텐데, 이를 플랑크 시간이라 한다.

이 역시 최소의 입자, 즉 양자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저자가 양자역학의 가장 논리적인 설명이라 주장하는 관계론적 설명으로 시간의 정체도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뿐이다.

(pg 127)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굳이 시간의 흐름이라는 변수를 포함하지 않아도 양자역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의 관계가 사건을 만들어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양자역학 역시 관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시간 역시 이러한 관계 속에서만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시간 변수가 없는 세상은 복잡한 세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연결된 사건들의 그물망이며, 여기에 작용하는 변수들은

우리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잘 알고 있는 확률 규칙을 따르고 있다.

(pg 130)

그렇다면 제목처럼 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했던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진짜로 변화하는 것은 엔트로피 뿐이다.

엔트로피는 무조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만 변화하는데, 이 때문에 미래의 흔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거의 흔적 뿐이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흔적이 남으려면 무엇인가 정지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만,

즉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pg 174-175)

저자 역시 책 후미에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모든 정보가 실험을 통해 100% 확인된 내용들은 아니라고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 자신이 볼 때에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난이도 역시 함께 상승하는 구조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분야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쉽게 쓰려고 부단히도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이며 이 책을 선택할 사람들이라면 질겁을 할 수식도 책을 통틀어 단 두 줄 등장할 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생존의 기회를 늘리는데,

진화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뇌 구조를 선택해왔다. 우리가 바로 그 선택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이 선택이 우리 정신 구조의 핵심이다.

이 선택이 우리에게는 시간의 '흐름'인 것이다.

(pg 186)

그러면서도 인류가 지금까지 밝혀온 시간에 대한 지식, 특히 물리학 뿐 아니라 고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이르는 지식을 불과 200여 페이지 정도의 책으로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치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 중략 -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주 단단한 돌의 경우, 우리가 화학과 물리학, 광물학, 지질학, 심리학에서

배운 바로는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이고, 힘들의 순간적인 작용이다.

돌은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의 형상을 유지하고, 다시 먼지로 분해되기 전 자체적으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pg 105-106)

읽을 때는 거짓말처럼 술술 책장이 넘어가지만 다 읽고 나서는 '난 대체 지금까지 뭘 읽은 걸까?'라는 자괴감이 함께 찾아오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론)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론)도 있어' 등등 나열식인 여타 물리학 책들과는 다르게 '내 생각엔 이 이론이 맞는 것 같아'라는 방식으로 쓴 책이라 논리가 일관적이고 혼란의 여지가 적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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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문과인으로서 물리학 교양서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도전이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쓴 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교양 수준의 지식은 쌓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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