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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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매우 친절한 양자역학 책으로 만나봤던 카를로 로벨리의 대표 저서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시간에 대해 물리학에서 밝혀진 내용을 저자 특유의 친절한 서술로 풀어내고 있다.



사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다른 책들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다.

동물들은 미래를 예측하며 살지 않지만 인류는 내일의 날씨부터 태양과 달의 움직임 등 자연의 순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우리에게 시간이란 반드시 1차원적으로만 움직이는 고정된 그 무언가로 보인다는 점이다.

직관적으로만 보면 시간은 과거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로만 흐르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현재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지금까지 물리학으로 밝혀낸 바와 어떻게 상충되는지를 설명한다고 보면 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는 시간관념 변화의 역사는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다.

일단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고, 질량과 속도에 따라 시공간 역시 변화할 수 있는 값이라는 점까지는 이전에 읽은 다른 과학 교양서들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무리 없이 이해했다.

여기까지의 논의는 하단의 그림으로 종합할 수 있는데, 설명하면 일반적으로는 시간을 좌상단 그림처럼 인지하지만 실제로는 우하단 그림에 가깝다는 것이 핵심이다.

(pg 58-59)

여기까지는 평이한데, 저자의 전문 분야인 양자 중력이론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난이도가 제법 상승한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할 수 없고 공간이 곧 질량을 가진 물질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시간 역시 질량을 가진 그 무언가로부터 파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역시 최소의 입자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할 수 있을 텐데, 이를 플랑크 시간이라 한다.

이 역시 최소의 입자, 즉 양자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저자가 양자역학의 가장 논리적인 설명이라 주장하는 관계론적 설명으로 시간의 정체도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뿐이다.

(pg 127)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굳이 시간의 흐름이라는 변수를 포함하지 않아도 양자역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의 관계가 사건을 만들어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양자역학 역시 관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시간 역시 이러한 관계 속에서만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시간 변수가 없는 세상은 복잡한 세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연결된 사건들의 그물망이며, 여기에 작용하는 변수들은

우리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잘 알고 있는 확률 규칙을 따르고 있다.

(pg 130)

그렇다면 제목처럼 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했던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진짜로 변화하는 것은 엔트로피 뿐이다.

엔트로피는 무조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만 변화하는데, 이 때문에 미래의 흔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거의 흔적 뿐이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흔적이 남으려면 무엇인가 정지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만,

즉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pg 174-175)

저자 역시 책 후미에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 담긴 모든 정보가 실험을 통해 100% 확인된 내용들은 아니라고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 자신이 볼 때에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읽는 난이도 역시 함께 상승하는 구조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분야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쉽게 쓰려고 부단히도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이며 이 책을 선택할 사람들이라면 질겁을 할 수식도 책을 통틀어 단 두 줄 등장할 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생존의 기회를 늘리는데,

진화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뇌 구조를 선택해왔다. 우리가 바로 그 선택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이 선택이 우리 정신 구조의 핵심이다.

이 선택이 우리에게는 시간의 '흐름'인 것이다.

(pg 186)

그러면서도 인류가 지금까지 밝혀온 시간에 대한 지식, 특히 물리학 뿐 아니라 고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이르는 지식을 불과 200여 페이지 정도의 책으로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치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 중략 -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주 단단한 돌의 경우, 우리가 화학과 물리학, 광물학, 지질학, 심리학에서

배운 바로는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이고, 힘들의 순간적인 작용이다.

돌은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의 형상을 유지하고, 다시 먼지로 분해되기 전 자체적으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pg 105-106)

읽을 때는 거짓말처럼 술술 책장이 넘어가지만 다 읽고 나서는 '난 대체 지금까지 뭘 읽은 걸까?'라는 자괴감이 함께 찾아오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론)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론)도 있어' 등등 나열식인 여타 물리학 책들과는 다르게 '내 생각엔 이 이론이 맞는 것 같아'라는 방식으로 쓴 책이라 논리가 일관적이고 혼란의 여지가 적어서 좋았다.

태생적 문과인으로서 물리학 교양서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도전이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쓴 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교양 수준의 지식은 쌓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 기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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