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분석관K : 미래범죄 수사일지
소현수 지음, 이미솔 기획 / EBS 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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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도 그렇고 분량도 그렇고 청소년들을 위한 가벼운 SF 소설이라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줄거리가 눈길을 끌었다.

두뇌 정보를 업로드한 양자 두뇌와 복제한 더미 신체로 영생을 누리는 사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라는 소개를 보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로드된 데이터가 있어서 '영생'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사회라면 '살인'이라는 범죄가 원칙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다시 만들면 그만이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지가 우선 궁금했다.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뇌 속의 기억은 양자 두뇌로, 신체는 더미로 만들 수 있지만 한 번에 하나의 개체만 만들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이 양자 두뇌가 파괴된다면 그대로 그 개체는 복구될 수 없다는 설정으로 이를 해결하고 있었다. (즉 Ctrl+C가 아닌 Ctrl+X로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배경 설정이야 어찌 됐든 공각기동대를 한 편이라도 봤다면 익숙한 설정이어서 그리 신선할 건 없었지만 나름 그 속에서 생각해 볼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는 점이 좋았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이어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작품의 제목이 곧 화자를 소개하고 있다.

사건분석관은 사법권을 가진 경찰의 일종으로 복잡하고 특수한 강력 범죄들을 조사,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단순한 치안 문제는 순수한 기계인 안드로이드들이 대신하고 있다.)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달리 더 성능이 좋은 더미 신체를 가졌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총 4개 챕터로 4개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알고 보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그런 내용, 전개 자체는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사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꽤 의미가 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두뇌를 복사한 양자 두뇌를 여러 더미에 이식해 복제 인간을 만들었고, 그중의 하나가 다른 복제인간들을 모두 파괴했다면 이는 살인인가? 자신이 자신을 죽인 것이므로 자살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기계 오작동에 지나지 않는가?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법인격은 복제를 진행한 원본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본래의 인격에 이런저런 제약이나 강화를 거친다면 이 역시 인간 본연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작품 속 사건분석관들처럼 뇌 수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아예 범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뇌 수술을 강제했다면 이를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일 텐데, 과연 두뇌의 기억을 복사해 다른 몸에 심는 행위를 우리는 '영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방법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영원을 바라십니까? 그것은 누굴 위한 것입니까?

죽지 않는 인간을 인간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다움이란 삶, 그리고 죽음에 있습니다.

나는 우리 인류가 인간으로서 살다가 죽길 바랍니다.

(pg 78)

물론 작품 자체가 청소년을 위한 SF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가 생각하는 정답도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미리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 인간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독자들 각각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남겨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훌륭했다.

나는 인간이다.

제아무리 강한 힘과 감각, 특별한 양자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한들

몇 마디 말에 고뇌하고 고통받는 것이 그 증거다.

잊자, 잊어버리자.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다.

(pg 108)

결말이 시리즈물의 1권처럼 갑자기 툭 끝나버렸고 주인공과 아치 에너미의 관계도 아직 미완인 채로 남아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책이 인기가 있으면 후속작을 기대해 봄직도 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다음 편이 나와주면 그때도 읽어볼 것 같다.

본 작품이 '공상가들'이라는 TV 프로그램의 결과물로 제작된 책이고, 그 때문에 타겟을 보다 넓게 잡기 위해 청소년들을 위한 수준으로 낮추어 쓴 것이라면 보다 더 세세한 살을 붙여 일반인 대상의 소설로도 충분히 승부해봄직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표지를 이런 식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청소년용 소설이 너무 늘어지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얼마든지 꼬아둘 수 있었던 사건이 금방금방 해결되는데 이 부분을 추리소설 느낌으로 조금만 더 상세히 풀어낸다면 SF와 추리 두 장르의 독자들을 충분히 사로잡을만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공상가들'이라는 프로그램은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SF스러운 주제를 하나 던진 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는 토크쇼 형식인 것 같다.

여러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괜찮은 스토리 줄기가 잡힌 것 같은데 잘만 정리하면 시리즈 소설로 나오거나 한국식 SF 드라마로 제작하기에도 충분히 좋아 보여서 이후의 콘텐츠 확장성이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배우 하석진이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는데 그가 사건분석관K 역할을 맡으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

분량이 적어 금새 읽어버렸지만 최근에 접한 조금은 수준 미달이었던 SF 소설들에 비하면 꽤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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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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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쪽에 조예가 없어 작가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의 단편집이라는 소개에 읽어보고 싶어졌다.

4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두껍지 않은 책인데 열여섯 편이나 되는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앞표지를 넘기면 작가의 서명이 꼭 손으로 쓴 것처럼 인쇄되어 있어 본문을 읽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짧은 이야기가 모여있는 단편집인지라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여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 위주로 감상을 남겨보려 한다.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 같은 것은 없지만 읽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낯섦과의 만남'이다.

작품 속 화자들은 모두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익숙하지 않은 장소나 사람, 사물을 마주하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대상과 마주친다는 것은 때로는 불안함으로, 때로는 반가움으로 다가올 텐데 이 각각의 이야기들에서는 이러한 낯선 만남에 따르는 다양한 감정들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영웅'이라는 작품이었다.

어느 부잣집에 아이 둘을 돌보는 보육교사로 들어가게 된 젊은 여성의 이야기인데, 줄거리와 제목이 그다지 어울리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말까지 읽은 후 제목이 주는 역설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이를 사랑하는 순수한 보육교사와 모든 것을 태우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방화범이 공존하는 이야기가 불과 3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 안에서 '어색함 없이' 펼쳐진다.

여기서 '어색함 없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작품들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진행이나 등장인물들의 심경 변화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위에 언급한 '영웅'처럼 나름 반전 있는 엔딩을 가진 작품들도 더러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물론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로 다소 모호하게 끝나는 작품도 몇 있지만 그런 작품들을 읽을 때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어색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화려한 경력을 가진 작가답게 작품 속 묘사도 좋았다.

특히 무형의 개념을 유형인 것처럼 묘사한 표현들이 좋았는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표현들이다.

그들은 그저 서로 사랑하기를 그쳤다.

먼저 찰스가, 다음에 그녀가.

두 사람을 소진한 건 고요의 부족인지도 모른다.

(pg 153,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

'고요'라는 것은 양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고요가 부족해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타 단편집과는 달리 안에 담긴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 아닌 '레이디스'라는 별도의 제목이 붙어 있는 만큼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화자가 전부 여성인 것은 아니다.)

제목 때문에 혹여 페미니즘의 시각이 강하게 담긴 작품들이 아닐까 우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그쪽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물론 내가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편이기 때문에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두에 저자가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고 했었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 중에서도 그런 인물이 하나 등장해 재미를 더하니 읽으실 분들은 꼭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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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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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르다.

영화는 물론이고 소설도 SF라고 하면 일단 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 SF를 문학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책이 그간 몇 권 접했었던 '서가명강' 시리즈로 나와서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판타지와 SF는 그 시작점이 비슷하다.

하지만 마법이나 악마 등 순수한 상상에서 출발하는 판타지와 달리 SF는 과학적인 사실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전망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SF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저자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개념으로 노붐(novum)과 인지적 낯섦을 꼽는다.

노붐이란 우리의 정신세계가 뒤바뀔 정도로 새로운 개념의 무언가를 말한다.

저자는 '타임머신'이라는 단어가 처음 소설에 등장했을 때를 예로 들고 있다.

이 작품이 나오기 전에 시간 여행이라는 것은 마법 같은 판타지적인 요소에 불과했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어쩌면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다는 것이다.

인지적 낯섦은 독자에게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줘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소설 '듄'의 배경이 되는 아라키스라는 행성은 지구의 사막을 떠올리면 익숙한 곳이지만 그곳에 서식하는 거대한 모래벌레와 그것이 생산하는 스파이스는 굉장히 낯선 것이다.

따라서 좋은 SF라면 노붐과 인지적 낯섦을 잘 갖추어야 한다.

물론 모든 SF가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 역시 존재하는 모든 SF 작품들 중 10% 정도만 이 기준을 충족하는 작품들이 될 것이라 말한다.

노붐과 인지적 낯섦은 SF 작품의 수준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작품이 그 기준이 부합하지 못한다고 그냥 있을 필요는 없다.

작품이나 혹은 작가가 상상하지 못한 것은 독자의 몫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pg 71)

태생이 '현실도피'다 보니 초창기 SF는 과학기술을 활용해 액션 활극을 펼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로 쓰였다.

하지만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자 SF는 '외삽'의 형태를 빌어 현실 세계에 깊숙이 접근하기 시작한다.

외삽이란 현재에 어떤 문제나 상황을 좀 더 논리적으로 발전시켜보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환경 파괴가 지금처럼 심화되기만 한다면 결국 기후 문제로 인류 종말이 온다는 스토리들이 외삽을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당연히 소재도 다양해지고 플롯과 인물도 더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변화했다.

따라서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외삽까지 감안하면 사실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가 과학의 산물이고 과학기술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SF가 우리 시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 말한다.

과학기술의 흔적이 직간접적으로 남아 있지 않은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의식하든 못하든 상상하든 못하든 간에 과학기술은 우리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전부 SF라 할 수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모든 문학과 문화가 SF라고 할 정도다.

(pg 191)

그렇다면 앞으로의 SF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저자는 우리가 과학으로 밝혀낸 것들은 전체 우주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며, 더 크고 중요하지만 우리가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사변적'인 작품들이 더 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지만 사고 실험을 통해 논리의 끝까지 가보는 작품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이 설명하는 어떤 세계 너머의 과학이 있어야만 한다.

아니면 과학 밖 실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칙상으로 이 실험적 과학이 불가능하고

실제로 알려지지도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소설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pg 207)

저자는 SF 작가들 역시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책을 끝맺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21세기 독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특별한 책임이 있다.

지금의 상황과 문제를 작품에 대입해서 고민해야 하는 책임 말이다.

공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잇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상과 비판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동적인 독자가 될 책임이 있다.

(pg 236)

서가명강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 역시 200페이지 정도로 그리 길지 않고 현학적인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스러운 책은 아니다.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은 뒤에는 단순히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 정도의 감상에서 끝나지 않고 노붐, 인지적 낯섦, 외삽, 사변적 사실주의 등의 기준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따져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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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김봉철 지음 / 문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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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서평 쓸 책을 고르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망설여진 책이었다.

제목 자체가 책의 내용을 절반은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인지라 감상을 남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김봉철의 나이가 대략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책을 읽고 난 뒤 '나 정도면 엄청 잘 살고 있구나'하는 싸구려 감상에 젖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앞섰다.

다 읽고 난 직후의 소감은 '굉장히 찝찝하다'라는 것이다.

일단 시종일관 이어지는 비관과 우울의 정서가 읽는 행위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표지만 보면 마치 '백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삽니다'라는 메시지라도 담겨있을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의 학대와 그로 인한 우울증, 이어지는 학교 폭력으로 고등학교도 중퇴하면서 변변한 직업은커녕 원만한 인간관계조차 하나 없이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며 절망에 빠져 지내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스팸 대신 저렴한 햄을 사 왔다며 분노하는 구절에서는 짜증이 일기도 했다.

읽다 보면 진짜 '쓰레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보면 약간의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다행한 점이라면(?) 마치 자서전처럼 쓴 에세이지만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MSG인지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글에서는 고도비만이라고 했다가 어느 글에서는 거식증 때문에 체중이 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100% 저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이런 형태의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기야 독립 출판이지만 이미 책을 여러 권 쓴 저자니 말 그대로 '백수'라고 믿는 것도 우습다.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너무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 그냥 픽션이라고 생각하며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지닌 상당한 수준의 필력이다.

읽기에 부담스러운 감정을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만든 힘은 순전히 그의 필력이었다.

독립 출판으로 책을 여러 권 냈을 정도로 '글빨'이 좋다.

운이 좋게도 학교를 졸업한 뒤로 백수로 살아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던 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이 될만한 구절들이 꽤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힘들다.

일체개고라 하여 인생의 무상함과 무아함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삶은

언제나 고통뿐이다.

이 고통은 오로지 개개인의 고유한 것으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조금 더 살만하다,

내가 그나마 이 사람들 보다는 덜 힘들다고 비교되거나 비교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괴로움은 나만의 것이고 이 괴로움의 무게는

살면서 오로지 나 혼자만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pg 91-92)

권력, 지위의 격차 등의 이유로 사람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기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이 모든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자면 일단 인간이 아니어버리고 싶다.

어쩌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

권력이나 지위의 격차로 사람이 사람 사이에 층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 아득바득 저런 말들을 바보같이 우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pg 109)

사람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사람과 관계로 인한 상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한 철학자는 세상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관계로부터의 상실과 상처 때문에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관계를 갈구하는 모순적인 한 인간의 모습이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굉장히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마쯤은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마음. 내가 가져보고 싶었던, 의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킨다.

차마의 심정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을 말하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가.

(pg 49)

사랑이나 가족, 친구 같은 말들을 목적을 가지고 변명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그 말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이다.

(pg 58)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의 이 고독과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마음을 닫는다.

감정 같은 것은 쓸모가 없으니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pg 196)

정말 독특한 책이었다.

주말을 맞아 거침없이 읽어가긴 했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거나 소위 '힐링'이 되는 책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글과 글 사이에 묘하게 끌리는 구절들이 많아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혹시라도 책을 읽을 예정이거나 책에 관심이 가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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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 우주여행, 태양계의 행성들! 신통방통 과학 탐구 그림책 2
존 디볼 지음, 박서경 옮김 / 상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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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이와 함께 세계지도를 보다가 우리나라가 어디 있는지를 알려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한 아이가 '엄청 쪼그맣구나'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지구도 엄청 커다랗게 느껴지겠지만 태양계만 보더라도 지구보다 큰 행성들이 존재하고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와 같은 은하도 엄청나게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아이에게 우리가 속한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알려주는 책이 있어서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태양계 행성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는 책이다.

'수성, 금성은 너무 뜨겁고 천왕성 해왕성은 너무 춥다' 정도로 간략하게 소개해 주는 책이지만 의외로 지구의 자전 속도가 1,660km라는 것을 구체적인 수치로 알려주는 등 정보가 적은 편은 결코 아니다.

아이에게 1년이 365일인 이유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365일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책을 읽으면서 알려줄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면서 행성의 순서를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어 이 목록에서 제외된 시기가 2006년이라는 것도 나와 있어서 나도 몰랐던 정보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행성들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 같은데 행성들의 모습이 그림으로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아이의 눈 높이에 맞게 화려한 색채로 각 행성들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려져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글씨 부분을 다 읽어준 다음에도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직관적으로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우주는 아직도 인류가 알아내지 못한 비밀들로 가득하다.

아이는 그저 재미난 그림책을 하나 읽었을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하염없이 작은 존재라는 점을 마음에 새기며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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