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김봉철 지음 / 문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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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서평 쓸 책을 고르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망설여진 책이었다.

제목 자체가 책의 내용을 절반은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인지라 감상을 남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김봉철의 나이가 대략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책을 읽고 난 뒤 '나 정도면 엄청 잘 살고 있구나'하는 싸구려 감상에 젖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앞섰다.

다 읽고 난 직후의 소감은 '굉장히 찝찝하다'라는 것이다.

일단 시종일관 이어지는 비관과 우울의 정서가 읽는 행위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표지만 보면 마치 '백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삽니다'라는 메시지라도 담겨있을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의 학대와 그로 인한 우울증, 이어지는 학교 폭력으로 고등학교도 중퇴하면서 변변한 직업은커녕 원만한 인간관계조차 하나 없이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며 절망에 빠져 지내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스팸 대신 저렴한 햄을 사 왔다며 분노하는 구절에서는 짜증이 일기도 했다.

읽다 보면 진짜 '쓰레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었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보면 약간의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다행한 점이라면(?) 마치 자서전처럼 쓴 에세이지만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MSG인지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글에서는 고도비만이라고 했다가 어느 글에서는 거식증 때문에 체중이 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100% 저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이런 형태의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기야 독립 출판이지만 이미 책을 여러 권 쓴 저자니 말 그대로 '백수'라고 믿는 것도 우습다.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너무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 그냥 픽션이라고 생각하며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지닌 상당한 수준의 필력이다.

읽기에 부담스러운 감정을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만든 힘은 순전히 그의 필력이었다.

독립 출판으로 책을 여러 권 냈을 정도로 '글빨'이 좋다.

운이 좋게도 학교를 졸업한 뒤로 백수로 살아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던 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이 될만한 구절들이 꽤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힘들다.

일체개고라 하여 인생의 무상함과 무아함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삶은

언제나 고통뿐이다.

이 고통은 오로지 개개인의 고유한 것으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조금 더 살만하다,

내가 그나마 이 사람들 보다는 덜 힘들다고 비교되거나 비교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괴로움은 나만의 것이고 이 괴로움의 무게는

살면서 오로지 나 혼자만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pg 91-92)

권력, 지위의 격차 등의 이유로 사람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기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이 모든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자면 일단 인간이 아니어버리고 싶다.

어쩌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

권력이나 지위의 격차로 사람이 사람 사이에 층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 아득바득 저런 말들을 바보같이 우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pg 109)

사람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사람과 관계로 인한 상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한 철학자는 세상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관계로부터의 상실과 상처 때문에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관계를 갈구하는 모순적인 한 인간의 모습이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굉장히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마쯤은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마음. 내가 가져보고 싶었던, 의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킨다.

차마의 심정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을 말하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가.

(pg 49)

사랑이나 가족, 친구 같은 말들을 목적을 가지고 변명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그 말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이다.

(pg 58)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의 이 고독과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마음을 닫는다.

감정 같은 것은 쓸모가 없으니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pg 196)

정말 독특한 책이었다.

주말을 맞아 거침없이 읽어가긴 했지만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거나 소위 '힐링'이 되는 책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글과 글 사이에 묘하게 끌리는 구절들이 많아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혹시라도 책을 읽을 예정이거나 책에 관심이 가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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